나는 ADHD가 있는 자신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ADHD를 단순히 집중력 부족이나 충동성의 문제로 여깁니다. 하지만 ADHD의 진짜 영향력은 훨씬 더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있어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자기 인식, 바로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경험을 쌓아갑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크고 작은 경험들, 부모님의 한마디,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나름대로의 '틀'을 만들어갑니다. 이 핵심 신념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결정하고,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ADHD가 있다면 일반적인 사회적 기대와 다른 뇌 구조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중에는 부정적인 경험들도 있는데 산만하다는 지적, 끝까지 해내지 못해서 받은 질책,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진다는 느낌과 평가들이 쌓이다 보면 특별한 형태의 핵심 신념들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신념들은 부정적인 것을 넘어서 파괴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ADHD의 영향으로 인해 보이지 않게 우리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선택과 행동을 끊임없이 흔들며, 틀이 아닌 자신을 가두는 굴레가 되는 흔한 파괴적인 신념 3가지를 살펴볼까요?
ADHD로 인해 반복되는 실패 경험들은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예측을 만들어냅니다. 이 믿음이 뿌리내리면, 새로운 도전 앞에서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거나, 조금만 어려워도 쉽게 손을 놓게 됩니다.
‘굳이 뭐 하러 노력해? 어차피 실패할 텐데’
이런 신념은 스스로 기회의 문을 닫게 만들고, 해야 할 일들을 계속 미루거나 쉽게 포기하는 패턴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전전두엽의 기능이 약한 ADHD의 특성상 감정 조절과 행동 통제가 어려운 경우가 많죠. 계획을 세워도 지키지 못하고,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일들이 반복됩니다. 그로 인해 관계에서는 오해와 불신이 생기고 이런 경험들이 쌓이게 되면 ‘나를 믿을 수 없어"라는 신념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믿음은 작은 실패에도 스스로를 과도하게 비난하거나, 설사 성과를 거두어도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라며 자신의 능력을 축소시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은 모든 영역에서 자신감을 잃게 만들죠.
제가 생각하는 가장 깊고 아픈 신념인데요.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와 주변의 실망스러운 반응들, 특히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쌓이면 ‘이런 나를 누가 좋아하겠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 결국 ‘나는 결함 투성이라 사랑받을 수 없어'라는 신념으로 이어집니다. 이 믿음은 인간관계에서 특히 영향을 많이 끼치는데 과도하게 타인에게 맞춰주거나 또는 과하게 경계하는 행동 패턴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조금만 차갑게 대해도 "나를 싫어하나 봐"라고 확대해석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하죠.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거나,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도하게 맞추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이 많아서 최근에는 ADHD와 거절민감성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의견과 연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죠.
비뚤어진 핵심 신념들로 인해 미루고, 쉽게 포기하고, 자신을 깎아내리고, 회피하는 패턴이 반복되면, 주변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나를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더 깊은 수치심과 비효능감, 그리고 낮은 자존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우리의 대처 방식은 더욱 적극적으로 미루고 회피하는 것입니다. 마치 상처받은 동물이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듯이요. 하지만 그 동굴은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라 스스로를 가두는 수렁일 뿐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ADHD의 증상 관리만으로는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도구나 전략도 어떤 사람이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진짜 변화는 자기개념을 제대로 점검하고 변화시키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단순히 긍정적인 생각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ADHD라는 특성을 가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스스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다른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부족하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개념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만드는 선택권과 주도권을 ADHD에게 주지 않는다면 비로소 ADHD와 함께 하면서도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길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기를 만나고, 잠재력을 펼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