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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ADHD

가짜 휴식의 함정에 빠진 ADHD를 위한 6가지 재충전 방법

by 마인드리프

가짜 휴식의 함정

우리 뇌는 전체 체중의 약 2%밖에 되지 않지만, 기초대사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모할 정도로 에너지 소비량이 높은 기관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ADHD의 뇌의 에너지 효율이 보통 사람들 보다 더 낮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 엔진이 공회전을 하는 것과 같죠.


뇌가 쉬지 못하면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감정조절도 더 어려워집니다. 게다가 피곤한 뇌는 같은 환경에서 더 쉽게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긍정회로보다 부정회로를 돌릴 때 에너지가 덜 드니까요.

인지기능도 떨어지고 부정적인 편향까지 더해지면 작은 실수에도 과도하게 자책하고, 별일 아닌 일에도 더 짜증 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을 더 위험하게 해석하고,

타인을 더 차갑게 느끼게 하고,

자신은 더 믿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잘 쉰다’는 것은 ADHD에게 단순한 여유나 사치가 아니라 사고력, 감정조절력, 인간관계, 자기 신뢰를 지키는 생존 전략입니다. 회복되지 않은 뇌로는 잘 생각할 수도, 느낄 수도 없으니까요.


쉬어도 괜찮아요. 아니, 반드시 쉬어야만 합니다. 그것도 아주 잘. 특히 ADHD라면 더더욱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쉬는지인데 ADHD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아요."

“주로 어떻게 쉬나요?”

“그냥 누워서 핸드폰 보거나 게임하거나 잠을 몰아서 자기도 해요. 근데 문제는 그러면 안 되는 시간에 그러고 있다는 거예요. 쉬는데 충전되는 기분이 아니라 오히려 방전되면서 무기력해져요"

“가짜 휴식의 함정에 빠지신 거네요.”


제 경험도 그렇고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ADHD 뇌는 멈추는데 서툴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조절이 서툰 종족이니까요. 그래서 쉬는 동안에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놓지 못하고 끝내지 못한 일, 시작하지 못한 일들을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리며 쉼마저 불편한 상태로 만들어버리죠. 결국, 몸은 멈춰 있는데 뇌는 계속 과열된 상태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방전되어 버립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신체적인 쉼이 아니라 ‘인지와 감정의 휴식’입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상황마다 소진되는 영역과 이유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쉬기 위해서는 피로의 정체를 구분하고 그에 맞는 충전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에너지를 유지하는데 중요합니다.

몸도 어디 아픈지에 따라 찾아가는 병원이 다르고 복용하는 약이 달라지듯 말이죠. 그래서 오늘은 ADHD를 위한 6가지 충전 방법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1. 신체적 충전: 선택적으로 힘 빼기

쉬지 않고 몸을 많이 움직이거나 격한 활동을 해서 피곤하다면 우선은 충분한 수면이나 신체 회복을 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ADHD 관리에서 수면은 언제나 최우선이니까요.

하지만 때로는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충전에 더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조금만 누워있어야지' 했다가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린 경험 있죠?

도파민 결핍 상태에서 외부 자극이 없는 완전한 무동력 상태는 오히려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결국 회피로 인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럴 땐 모든 걸 멈추는 대신, 속도를 늦추되 흐름을 유지하는 형태의 휴식이 필요할 수 있어요.


오늘 해야 할 일 중 한두 가지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시간을 줄이는 선택을 하는 거죠. 어쩔 수 없이 못하는 것과 의도적으로 계획을 수정하는 것의 차이는 바로 ‘선택적 조절’입니다. 1시간 운동 계획을 30분으로 줄이거나, 완료하지 못한 일을 1/4만 해두기처럼요. 우리는 종종 100%와 0% 중에서 선택하려고 하지만 사실 그 사이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자주 잊는 것 같습니다. 몸이 피곤할 때 신호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몰아붙이거나 아예 회피하는 대신 ‘오늘 몇 퍼센트를 할 수 있을까’는 ADHD에게 흔한 ‘모 아니면 도’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2. 멘탈 충전: 빼곡한 머릿속 쉼표 찍기

ADHD가 있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종종 머릿속에 볼륨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여러 채널이 동시에 켜져 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럴 땐 생각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잠시 멈추거나 밖으로 꺼내어 정리하는 방식의 충전이 필요합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쿨링 타임'인데요. 특히 과도한 몰입 후에 뜨거워진 머릿속 CPU를 식히는 시간을 가집니다. 일부러 타이머를 5분~10분 정도 맞추고 하늘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깊게 호흡하면서 멍 때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고급스럽게 표현하면 ‘명상'이라고도 하죠.


이때 중요한 것은 외부의 불필요한 자극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자극에도 주의를 잘 빼앗기는 특성이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어렵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머릿속이 청소되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분들은 아무 생각 없이 숏츠나 릴스를 본다고 하는데 사실은 생각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자극을 무판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머릿속 엉켜있는 생각들을 종이에 쏟아내는 ‘브레인 덤프(Brain Dump)’를 통해 눈으로 생각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ADHD를 위한 진정한 멘탈 휴식과 충전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잠시 외부 자극의 입력을 멈추고 머릿속에 쉼표를 찍는 시간을 가지거나 정보를 정리하고 출력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3. 감정 충전: 마음의 날씨 돌보기

ADHD가 있으면 감정조절 역할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이 약하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격한 감정을 느끼거나 작은 감정에 압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다루기 어려운 감정은 역시 불안감과 우울감이겠죠. 이런 불편한 감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억누르거나 폭발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다 보면 감정적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감정적으로 소진되었을 때는 나를 소모시키는 활동 또는 사람으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불편한 감정을 천천히 소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어떤 감정 때문에 힘든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도 많은데 저는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해 벽에 여러 가지 감정이 적혀있는 ‘감정휠'을 붙여놨습니다. 혼자 가만히 앉아 감정휠을 보면서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과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이름을 붙여보며 그 감정과 거리를 둡니다.


그리고 때로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는 마음으로 연민을 담아서 일기를 쓰기도 해요.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자책하는 글을 쓰게 되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보면 펜 끝이 마르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몇 마디 쓰지도 않았는데 울컥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4. 감각 충전: 내가 좋아하는 감각 자극하기

ADHD 뇌는 외부 감각 정보의 필터링 기능이 약해서 시각적, 청각적 자극에도 쉽게 피로해질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터 소리에 굉장히 예민한 편인데 여름철 에어컨이나 선풍기 소리도 거슬러 집안의 모든 전자제품은 무소음 기능이 있는 것으로 사용할 정도랍니다.

피로해진 감각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극을 차단하는 방법도 있지만 좋아하는 감각을 자극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저는 좋아하는 향기로 후각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좋아하는 향을 알아야겠죠? 저는 화려한 향보다는 소박하고 자연 그대로의 향을 좋아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기분 전환을 위해 오일버너에 아로마 오일과 함께 로즈마리를 넣고 태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볕이 좋은 날에는 ‘오감 산책'도 하는데 잠시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가서 산책하며 보이는 풍경, 소리, 냄새, 촉감 5가지를 찾고 기록하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좋아하는 조명을 켜고,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로 샤워를 한 뒤에 좋아하는 아로마 오일을 몸에 바르고 셀프 마사지를 하는 것은 제가 누리는 최고의 감각 충전입니다.


5. 사회성 충전: 꾸밈없는 나와 만나는 시간 가지기

ADHD가 있다면 대인관계에서 긴장감이나 피로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거절에 대한 높은 민감성으로 인해 지나치게 타인에게 맞춰주기도 하고 때로는 ‘나는 다르다'는 느낌으로 고립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대인관계로 인한 피로감이 높다면 혹시 과도한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인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저는 가끔 달력을 보면서 이 달에 약속한 일정들을 한눈에 살펴봅니다. 그리고 외부 일정이 많이 차 있다고 여겨지면 그 사이에 ‘Me Time’을 끼워 넣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충전 시간을 약속 잡듯이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리고 그날엔 가능하다면 가까운 곳에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는데 그게 여유치 않다면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합니다. 그것도 어렵다면 집에서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스스로를 위해 근사한 한 끼를 만들어 먹고, 보고 싶었던 영화나 책을 보며 하루를 보냅니다.


6. 영감 충전: 창조적 에너지 보충하기

ADHD 뇌는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갈망합니다. 하지만 모든 자극이 좋은 것은 아니죠. 우리는 의도치 않게 무분별한 외부 자극에 스스로를 노출시킬 때가 많죠. 그럴 땐 마치 자극적인 인스턴트 음식을 먹은 것처럼 머릿속이 더부룩하고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몸 건강을 챙기기 위해 좋은 음식을 찾아 먹듯이 좋은 영감을 충전하는 시간은 우리의 창조적 에너지를 보충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얻은 에너지는 동기부여와 실천의 힘을 주죠.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도 저만의 방식으로 영감을 충전했기 때문이랍니다.


영감을 얻는 방법은 다양한데 먼저 무엇에 영감을 받는지를 알고 있어야겠죠. 제 영감의 원천은 바로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양질의 대화를 나눌 때 영감을 얻거든요. 그래서 제가 영감을 충전하는 방법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북클럽이나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내향적인 성격이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꼭 면대면으로 만나거나 직접 대화하지 않아도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작가나 뮤지션을 발굴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서점에 가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유튜브에서 인터뷰 영상을 보며 다른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보며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최근 즐겨보는 인터뷰 채널은 ‘최성운의 사고실험실’과 ‘민음사TV’입니다.


충전의 기술, 일상의 예술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충전 방식을 일상에 적용하려면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미리 각 영역별로 할 수 있는 활동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캘린더에 충전 시간을 의도적으로 계획해야 합니다. 제대로 충전을 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진정한 에너지를 나눌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코칭과 상담을 통해 에너지를 나누고 있어요. 충전된 에너지는 누군가를 위한 공감과 영감, 때로는 위로와 응원이라는 에너지가 되어 쓰이게 됩니다. 생각만 해도 너무 값지고 의미 있는 에너지죠?


그래서 제게 6가지 충전은 정말 중요하고 상담이나 코칭을 할 때마다 강조하고 내담자분들과 충전 계획을 함께 세우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영감을 받았다면 오늘부터 여러분만의 충전 레시피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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