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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Mar 28. 2022

내 손 안에 길이 있소이다

-손에 난 손금을 보며-

 길이 나 있다. 깊게 패인 세 갈래를 중심으로 잔 길들이 진하게 혹은 연하게, 굵게 또는 가늘게 이리 저리 뒤엉켜 촘촘한 거미줄이 쳐졌다. 밑에서 뻗어나 엄지와 검지 사이로 사라져가는 길을 생명줄이라 했고 손목 가운데에서 위로 이어진 길은 중지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재복을 타고 났다 여겨지며, 손마디 간격이 크면 클수록 잘생긴 사람을 만나 사랑도 가득하다고 한다. 여태껏 내 손 안에 나도 모르는 세상이 길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뜩 깨닫는다.

 사랑도, 재산도, 생명도 내가 마음먹기로 한 번 움켜쥐기만 하면 내 손 안에 이렇게 쉽게 품을 수 있을 것을, 사랑이 먼 곳에 있으리라, 내 운이 언제쯤 찾아오려나, 내 생명이 제 목숨줄대로 살지 못하려나 아등바등 거린 마음이 한순간 초라해진다.


 작은 손. 내 손 안에 그렇게 길이 나 있다. 정해진 길대로만 가면 인생이, 삶이 평탄대로일까? 이미 누군가의 손아귀에 우리의 운명이 쥐어진 거라면 그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내 삶을 쥐락펴락하는 그에 대한 복수일 것이다. 샛길로 빠지지 않는 것만이 올바르다 한다면 한 호흡 길게 쉬고 발걸음을 되돌리면 되지 않을까?


 새로 시작한 모임의 첫만남에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 것 같은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네들의 눈을 보는 것이 부담스럽고, 눈치를 보게 된다. 그렇다고 난 그런 사람이 아니오, 이런 사람이요 하며 설득하고 싶지도 않고, 가까이 하며 속내를 털어놓고 싶지도 않다. 이런 저런 인간 관계에 이번에도 외면하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관계도 있고 해서 모임을 나가기는 하지만 뭔가 망설여지고, 그 시간이 점점 재미없어지고, 무거워진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보니, 나는 글로 나를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내 가까운 사람들이 내 일을 아는 데에 부담스러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만나지 않고 글로 소통하며 조언을 하고 칭찬해 주는 것엔 매력을 느끼지만 얼굴을 맞대고 '그랬군요', '어떡해요'하는 말을 듣는 것이 버겁다. 그건 내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으면서 '맞아요' '공감이 돼요'하며 추임새를 잘 맞추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느낀다. 혹시 내가 치료를 받아야 할만큼 방어기제가 너무 강한 건 아닌가? 왜 무난한 성격이라고 성격 좋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정작 내 일이 되면 솔직하게 터놓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다른 사람들은 울컥하다고 하고, 동감한다고 하는데 남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볶음 요리 속 섞이지 못하는 양념처럼 둥둥 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는 길을 의심하게 되고, 몇 발짝 가지 않았으니 더 늦기 전에 되돌려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길이라도 걷는 내가 불편하고 힘들다면 내가 가서는 안 되는 길이기에.  


 가고 싶은 길도 있다. 가시덤불이 있어 찔리고 아프더라도 내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부분이 있다면 두렵지만 먼저 발자국을 내 볼 심산도 있다. 그래서 가끔 내 분에 맞지 않는 수업이 들어올 때도 부담스러우면서도 나도 모르겠다 배짱이다 하는 마음으로 덜컥 시작하기도 한다. 매번 그 부담감에 좌절하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 부담감 속엔 그래도 뭔가는 해냈어라는 성취감도 일부 들어 있고 이번엔 이걸 배웠네 하며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주저하기보다는 '도전'이라는 명목하에 벽돌깨기 하듯 그렇게 하나씩 해치워 나간다.

 글을 쓴다는 것이 자신을 성찰하고 느끼고 알아가면서 타인도 이해하는 영역이라면 난 그 중간 어느 정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글에서처럼 반성하고 좋은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옳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이기적이고, 여전히 계산적이고, 여전히 온전히 나를 내려놓지 못한다. 글을 쓰고 있는 길을 돌아 나를 향해 난 길이 있다면 적당히 게으로고, 적당히 이기적이고, 또 적당히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다. 내가 내 손을 쥐는 순간을 내가 정하듯이 내 길도 내가 정하고 내가 만들고 내가 평평하게 닦는 것처럼 말이다.  


 희미하게 길인 듯 아닌 듯 그리다만 그림처럼 새겨진 길을 바라본다. 저 잔 길을 따라가면 어떤 시간을 마주하게 될까? 가다가 끊어진들 결국 내 손바닥, 내 손안인 것이라면 그렇게 아득바득 걸지 않으리라. 때론 찬찬히 걷고 때론 먼 풍경을 바라보며 쉬기도 하고, 때론 처음부터 가는 것을 과감히 포기할 수도 있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상처입지 않으려고 말이다.


길이 움직인다. 잡으려 하면 짙어지고 놓으려 하면 옅어지는 많은 길들이 내 손 안에서 태어나고 구겨지고 완성되고 사라지고 있다. 손을 쥐었을 때 보이는 길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나의 하찮은 욕심이라면  손을 폈을 때 희미해지는 길은 나에게 더 갈고 닦으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말하고 싶다.

'내 길은 내 손 안에 있소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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