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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Feb 22. 2022

마스크의 위력

-바이러스뿐이랴~~ 우리 사이는? -

 처음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온통 마스크로 가려진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서 어쩌다 이런 교실 풍경이 되었을까 생각했었다. 첫인사를 나누면서 학생들에게 절대 나는 마스크를 벗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내가 마스크를 벗게 되면 깜짝 놀랄 거라고. 여러분이 상상도 못 한 일이 생길 거라고. 처음엔 내가 하는 말에 어리둥절해서 눈만 동그랗게 뜨던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너무 예뻐서요?"

"미인처럼 아름다워서요?"

맞다고. 뻔뻔스럽게 구는 내 행동에도 학생들은 엉뚱한 선생 하나 왔나 보다며 신기해하는 듯했다. 그렇게 삼 개월. 겨울 학기를 끝내고 나니 조금 허한 마음이다. 

12월, 수업을 시작했을 땐 원격 수업을 할 정도는 아니니 교실 안에서는 마스크를 벗지 말고, 물을 마시거나 할 때는 나가서 마시고, 쉬는 시간마다 환기를 하고. 이런 규칙들로 이렇게 저렇게 잘 버틴다 싶었는데 갑자기 1월 중순이 지나가면서 오미크론의 확산은 결국 비대면 수업으로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우습게도 난 비대면 수업의 불편함도 불편함이지만 학생들 앞에서 이번엔 진짜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 쑥스럽고 이상했다. 가끔 쉬는 시간에 마스크를 내린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상력이라는 것이 물론 예측불허이고 자기 마음대로라고 하지만 내 멋대로 상상해 버린 얼굴과 너무도 딴판인 얼굴을 보면서 아! 했던 건 상상 이상이라기보다는 조금은 실망스런(?) 면이 더 많았기 때문에(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과연 학생들은 내 얼굴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했다고 해서 지인을 몰라보거나 인사를 못할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마스크는 대단했다. 기대 이상으로 마스크의 위력은 바이러스도 차단하지만 우리의 예측도 보기 좋게 빗나가게 만들었다. 코와 입 모양과 얼굴형이 이렇게 인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예쁘고 쌍꺼풀이 짙은 눈을 보면서 야리야리한 얼굴을 떠올렸다가 갑자기 낯선 굵은 얼굴선을 만나면 그 비율과 조합의 어리둥절함에 당황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눈이 주는 자상함을 기억했다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하관은 매번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아, 나는 그동안 눈과 코와 입모양의 조합을 내 마음대로 조정하고 상상하고 계획까지 해 버린 모양이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인지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고 학생들을 기다리면서 마치 소개팅을 하는 곳인 양 두근두근 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마스크 품귀현상으로 약국에 줄을 서서 기다리며 받아야 했던 그 중요한 마스크는 이제는 다양한 색깔과 기능을 추구하여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이젠 강의용 마스크로 입모양이 보이게 하는 것부터 편히 숨을 쉴 수 있게 하고 끈 조절을 할 수 있게 하여 점점 마스크는 이미 내 얼굴이 되어 버린 듯하다. 

 하지만 마스크는 이제 내가 누구를 가르쳤는지, 누가 내 친구인지를 모르게 만들어 버렸다. 마스크를 방패 막아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사이를 은근슬쩍 지나치게 만들고, 산에 가서도 바다에 가서도 폐까지 시원하게 전해 주는 공기도 비릿한 바다내음도 차단해 버렸다. 마스크를 끼고선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조금 불편해질 뿐이다. 

얼마 전에도 공연을 보러 갔는데 마스크를 낀 사람만 코로나를 피했다더라. 모두 양성인데 마스크를 낀 사람만 음성이더라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마스크를 더 잘 끼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종강하는 날, 시국이 시국인지라 특별한 수료식도 없이 시험을 보면 수료증만 나눠주면서 한 명씩 보냈다. 모두 다 보냈구나 싶었던 그 순간, 학생들이 앞 문을 열면서 작은 선물을 건네주며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며 작별 인사를 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그네들을 돌려보낸 게 너무 아쉽다. 선물은 우리 반 학생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넣은 액자와 초콜릿이었다. 요즘 생각하지도 못하는 서프라이즈에 감동, 감동이었다. 

액자 속에 모두들 마스크를 하고 있다. 몇몇은 가끔 커피숍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해서 얼굴이 낯익지만 또 바쁜 몇몇은 눈으로만 인사하고 목소리로만 만났었다. 몇 년이 흐르고, 다시 만나다면 우린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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