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달력을 마무리하며-
2022년 새로운 달력은 2021년 12월로 시작된다. 한 달 전부터 미리 새해를 준비하라는 뜻인가? 12월의 일정을 정리하다 문뜩 달력의 첫 장이 궁금해진다. 난 올해 어떤 시간을 꿈꾸고 계획했을까?
달력의 첫 장은 생각보다 많이 어지러웠다. 학교 수업부터 도서관, 독서회 활동, 낭독 활동, 문화예술재단 접수까지. 시간을 바꾸기도 하고, 있는 스케줄에 또 다른 약속이 잡히고, 한 해를 준비하기 위한 병원 시간표까지. 깨알 같이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약속과 부모님과 함께 가기로 한 나무시장 일정과 주위해야 할 일까지. 내 한해 달력엔 온갖 자질구레한 계획과 일정들이 담겨 있다.
저 시간들을 보내며 난 설렜을까, 짜증 났을까, 지쳐했을까? 작은 한 칸 속 하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달력으로 보는 하루는 작은 네모 세상이지만 그 하루를 견디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나에겐 조금은 크고 넓어 버거운 때도 분명 있었으리라. 좋은 사람을 만날 때와 부담감으로 참석했어야 하는 일정이 있었고,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하루도 존재했고, 기억하기 싫어 도리질 치는 그런 사건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럴 때마다 다짐하고 삭이고 위로하며 견뎠던 그때의 내가 그 속에서 얼굴을 맞댔던 이들의 말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가 속시원히 하지 못했던 변명도 해 보고 분풀이도 하면 좋으련만 다시 갈 수 없으니 아쉬움이고 돌이킬 수 없으니 안타까움이다.
한 해를 보내고 끝에 와보니 토닥토닥 마음을 다잡게 된다. 조금만 더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나에게 손짓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실망스러웠던 마음을 부여잡고 새로움을 리셋하기가 버겁기도 했다. 그래서 그 복잡한 틈을 비집고 싹을 틔운 행복과 기쁨이 너무도 소중했다. 뇌경색으로 입원하신 어머님이 건강을 되찾으셔서 안도했고,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빠가 열심히 병원을 다녀 주어서 고맙고, 마스크를 끼고도 씩씩하게 학교에 입학해 준 조카가 대견스럽고, 선생님 덕분에 책 읽는 것이 너무 좋아졌다는 학생의 고백이 비타민이 되어 주기도 했다. 징검다리를 건너듯 한 달 한 달 내딛는 발걸음의 보폭이 조심스러웠지만 앞을 보며 가다 보니 이젠 걸어온 길이 가야 할 길보다 더 멀어졌다.
내년, 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달력을 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내년엔 좀 더 성숙해지고 편안해지며 욕심으로 눈이 먼 그런 시간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치졸한 경쟁으로 질투심 가득한 그런 어리석음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 위주로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좀 더 겸손하고 고개 숙일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내년 11월 말쯤, 나의 시간을 책임져 준 소중한 공간과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을 떠올릴 때 그날을 데자뷔 해 본다. 여전히 바쁜 강사로, 무심하지만 츤데레 딸로 며느리로, 좋은 아내로, 선배로, 동료로 그렇게 살고 있는 내가 있다. 여전히 수다스럽지만 게으르며 커피엔 관대하고 병원엔 인색한 내가 있다. 바람을 산을 텃밭을 좋아하지만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 소심한 내가 있을 것이다.
한 장 한 장 걷히는 달력 속에 내가 거쳐간 길과 지나친 시간들이 내년을 준비하는 거름이 되었을 거라 믿고 다가오는 2022년은 첫 데이트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