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도 되지 않은 퍼피의 극열한 서러움
민우를 임시 보호하는 동안 회사에 데리고 다녔다. 대중교통용 이동장으로 백팩을 구매해 민우를 둘러업고 매일 출퇴근했다. 작은 민우의 몸집에 비해 가방이 넓어 이리저리 구르다 보니 도착해 꺼내놓고 나면 늘 토 범벅이었다. 얌전한 민우는 내가 걷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회사 계단을 오를 때까지도 늘 아무 불평이 없었고 그런 민우에게 미안해 틈틈이 민우를 쓰다듬고 배낭을 양손으로 받치고 조심히 걸었다. 하지만 서로의 배려에도 민우의 멀미 증상은 나아지질 않았고 나의 피로감은 끊임없이 늘어갔다. 그러다 민우가 가방만해 지면서 더 이상 이동장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 커지자 나도 민우도 나가떨어졌다.
직장인이라면 응당 그렇겠지만 퇴사는 입사 때부터 생각해오던 일이었다. 입양을 확정 지어 식구가 하나 늘다 보니 남편에겐 더욱 미안했지만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원래도 24시간 붙어있던 민우는 내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계속해서 짖었다.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간 사이에도, 우유 하나를 사러 마트에 갔다 와도 서럽게 하울링을 하고 시끄럽게 짖었다. 좁디좁은 집안은 물론이고 건물 밖에서도 민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임에도 우리의 가계사정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직장을 아예 다니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우렁차게 짖고 빠르게 커가는 민우는, 입맛이 까다로워 비싼 밥만 골라먹는 주제에 참 많이도 먹었다.
이때부터 분리불안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울다 짖다 지쳐서 잠들겠지 생각했지만 3시간이고 4시간이고 8시간이고, 쉬지 않고 짖었다. 주변 민원도 걱정이었지만 무섭고 힘들 아이가 더 걱정이었다. 개도 목이 쉰다. 나는 그걸 처음 알았다. 하도 울어 피곤한 민우가 집에 들어온 나에게 안겨 서럽게 울며 꾸벅 졸 때, 나는 괴로웠다.
할 수 있는 모든 훈련을 했다.
1. 켄넬 교육
아이에게 자기만의 편안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바로 켄넬을 주문해 딱딱한 바닥 안에 쿠션을 깔았다. 간식으로 "하우스"하면 켄넬 안으로 들어가도록 교육했더니 민우는 제법 잘했다. 이젠 하우스를 쳐다만 봐도 들어간다. 천재라며 좋아했지만 우리가 없을 땐 켄넬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실패
2. 홈 CCTV 설치
음성 소통이 가능한 홈캠을 설치했다. 민우가 맹렬히 짖는 소리가 내 핸드폰에 진동을 동반하며 전달됐다. 내쪽에서 마이크를 켜고 민우를 불러보았지만 오히려 불안만 증폭시키는 것 같았다. 유명한 수의사는 형체가 없이 목소리만 들리면 더 불안해 할 수 있으니 음성기능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10년 전쯤 한 TV 프로그램에서 요양병원에 들어가면서 강아지와 헤어진 할아버지의 사연을 보았다. 별안간 할아버지를 잃은 강아지는 밥도 거부하며 오직 보호자만 기다렸다. 그 강아지는 제작진에 의해 구조되어 병원으로 옮겨졌고, 병원에서도 모든 손길과 밥을 거부했다. 그때 할아버지와 전화 연결을 하였고 할아버지는 강아지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보호자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는 그제야 밥을 먹었다. 모든 생명체는 일반화시킬 수 없다.
말이 길었지만, 무튼 음성전달도 민우에겐 소용없었다. 실패
3. 10초 동안 문밖에 나갔다 돌아오기 하루 10번 시행
5초에서, 10초로. 10초에서 30초로. 30초에서 서서히 5분까지 시간을 늘렸다.
처음엔 효과가 있나 싶었다. 아이는 짧은 외출을 잘 기다려주었다.(여기서 잘.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문 앞 차갑고 더러운 신발장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지만 딱 15분이 지나자 다시 짖고, 울고, 문을 긁으며 서럽게 울어댔다. 다시 짧은 시간부터 15분이 넘는 시간까지 시도해보았지만 민우는 15분 이상은 견뎌주지 않았다. 세 달 간 15분을 넘기지 못했다. 실패
4. 분리 수면
자립심을 키워준다는 이유로 잠을 따로 자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침대 옆에 쿠션을 두고 계단을 치웠다. 침대 정도야 도움 닫기 없이도 뛰어오를 수 있는 아이였지만 우리의 의도를 알만큼 똑똑했다. 민우는 한참 엎어진 계단을 쳐다보다 침대 옆 쿠션에 자리를 잡았다. 따로 잠드는 데 익숙해졌지만 분리불안은 아주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실패
5. 외출 전 충분한 산책
기운을 쏙 빼놓고 외출하면 잠을 자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했다. 외출 전에 30분, 혹은 그 이상 산책을 해주었다. 신나게 뛰어놀다 온 민우는 눈에 피곤함이 그득했지만 야속한 현관문 소리에 어김없이 반응했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또 짖었다. 실패
6. 노즈 워크
보호자가 없을 때 혼자서 놀면서 간식도 먹을 수 있고, 노즈 워크는 아이의 자존감 역시 올려준다고 했다. 노즈워크 장난감을 단계별로 거의 20개 넘게 준비했다. 파괴를 좋아하는 민우를 위해 종이컵 안에도 간식을 넣었고 오래 먹을 수 있는 커다란 개껌도 주었다. 시간이 되면 스스로 움직이며 간식을 톡톡 뱉어내는 로봇 장난감도.
사람이 있을 땐 신나게 하나씩 해치워갔지만 집을 비우자 잘 먹던 개껌도 뱉어놓고, 노즈워크는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로봇장난감에겐 더 맹렬히 짖어댔다. 실패
7. 투명 개
일명 애정 줄이기라는데, 평생 지켜주고 사랑해주고자 데려온 아이에게 애정을 줄이라니. 제일 고문이었던 훈련이다.
강아지를 쳐다도 보지 않고, 앵기면 툭 쳐서 떨어트리고, 내가 있는 장소로 따라오면 일어나서 자리를 옮겨버리는 아주 잔혹한 훈련법이다. 아이에게 독립심을 키워주는 법이라는데 민우는 물론 나에게 너무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 아이는 조금 외롭고 서러워 보였지만 내가 화장실을 가도, 거실에 나와있어도 따라오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효과가 있나? 했지만 집 밖으로 사라져 버리면 다시 짖어댔다.
내가 집을 나서도 돌아온다는 믿음과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이 방법은 추천하지 않는다. 함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자. 내가 아무리 사랑한들, 이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보단 작을 게 분명하니까. 대실패
8. 이웃에 양해 구하기
이 부분은 사실 1번에 썼어야 했는데 숫자 바꾸기 귀찮으니 순서무관 하게 써보자면, 낮시간 내내 울고 짖는 민우의 목소리는 정말 우렁찼다. 흉통이 큰 것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민우는 분리불안으로 짖을 때 가슴께가 탕- 탕- 울렸다. 나는 주전부리를 몇 가지 사서 쇼핑백에 담아 쪽지를 썼다.
'겁이 많은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분리불안 훈련 중입니다.
한 달만 기다려주시면 어떻게든 해결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가장자리에는 '죄송해요 멍'을 적고 강아지 발바닥 그림까지 그려 넣었다. 귀엽게 봐달라는 의미로.
이런 소박한 뇌물로 시끄러운 강아지 이웃을 너그럽게 용서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분노 게이지를 1/3 정도로 낮출 수 있길 바랐다.
9. 유치원
집 근처 유치원에 하루 맡겨본 적이 있다. 직원이 두 차례 아이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구석에 웅크린 사진 한 장, 사진을 찍는 직원을 피해 달아나는 사진 한 장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퇴근한 남편이 민우를 데리러 갔을 때 유치원 안에 아이가 없어 직원도, 남편도 많이 당황했다. 알고 보니 카페 팔걸이 안쪽 구석, 전혀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있었고 남편을 보자 민우는 비명을 질렀다. 남편은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고, 그 얘기를 들은 나도 눈물을 쏟았다. 우리를 기다리던 민우는 더 많은 눈물을 흘렸을 생각에 마음이 무너졌다. 실패
10. 작은 사이즈 옷 입히기
외출 전 꼭 옷을 입혔다. 한치수~반치수 정도 작은 내복을 입혀 안정감을 주었다. 그 옷이 매개체가 되어 '저거 입으면 보호자가 나간다!'를 인식해버렸다. 실패
11. 소음 만들어주기
우리 집 TV는 잠자는 밤을 제외하곤 절대 꺼지지 않는다. 볼륨 13으로 맞춰진 EBS를 항상 틀어둔다. 집안이 너무 조용하면 작은 소음에도 크게 반응할 수 있고, 불안감이 더 높아질 것 같아서였다. 처음엔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틀어두었는데 소리가 나오는 반경이 좁고 반복적인 소리이다 보니 소용이 없어 보여 변칙적인 TV로 시행 중이다.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도 꾸준히 하고 있다.
12. 방문 훈련사
훈련소를 보내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내가 없는 곳에서 아이가 어떤 훈련을 겪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게다가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에서도 두려워하는 아이를 새로운 환경으로 보내고 싶진 않았다. 방문 훈련사 중 평점이 가장 좋은 사람에게 연락을 했고 1회 훈련에 130,000원이었다.
'훈련받고 바로 다음 날 3시간 동안 짖지도 않고 잠만 잤어요.'
'신기하게 딱 2시간 받으니까 분리불안이 사라졌어요.'
심장이 뛰었다. 그래. 괜히 전문가겠어?
선생님은 우리가 다 해봤던 방법들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아이와 보호자를 함께 교육시켰다. 과정 중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가 있는 동안 거실 지정된 자리(소파)에 혼자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훈련이 있었다. 3초, 5초, 10초. 천천히 늘려갔다. 처음엔 방 문 앞까지 따라오던 아이가 제법 잘 견뎌주었는데, 훈련이 끝나고 보니 소파에 설사를 지려놨다.
방문 훈련은 두 가지의 이유로 실패했는데, 첫 번째는 민우에겐 보호자를 대체할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1순위가 보호자면 2순위가 산책, 간식, 밥, 장난감 같은 대체 순위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민우는 간식도 싫고, 밥도 싫고, 산책도 필요 없고, 장난감도 재미없고 그냥 보호자가 전부였다. 그러니 우리가 사라지면 간식도, 노즈 워크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었다. 훈련사가 준비한 훈련은 1순위에서 2순위로 관심을 옮기는 훈련들이었지만 민우에겐 2순위가 없었다.
두 번째는 훈련사가 당황했다는 것이다. 시행한 어떠한 훈련도 통하지 않았고, 우리가 지금까지 한 훈련을 듣고 보니 본인이 가르치려 했던 모든 훈련들이었고 우린 이미 전부 해 본 상태였던 것이다.
훈련사는 우리에게 항불안제나 둘째 아이를 고려해보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진짜.. 미치겠다. 실패
13. 개훌륭에 제보하기
믿을 건 강아지 대통령님뿐이었다. 강아지 강 씨를 가진 그분께 우리는 사연을 보냈다. 보통의 문제견들은 분리불안+@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분리불안 가지고는 채택이 되지 않았다.
아, 우리 민우는 분리불안 끝판왕이라 강아지 대장님께도 챌린지가 될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까지 닿진 않은 모양이다. 당연히 실패
이쯤 되니 정말 아찔했다.
나는 민우의 밥값을 벌어야 했고 얼굴모를 이웃들에게 약속한 한 달도 이미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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