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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화 비밀노트 #1] 결국 잘 팔리는 제품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명절 선물세트, 제가 만들었습니다. 하하하!

딱. 뼈를 맞았다. 나PD님이 유퀴즈에 나와서 한 말이 날 때렸다. 후벼 팠다.

"사실 프로그램은 '무조건 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능 PD는 결국 시청률이 높아야 하고,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마케터는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 ; _ ; 



때는 바야흐로 2015년.

길에서 캐롤도 잘 안들려 '크리스마스'가 온지도 모르는 시대. 하지만 기가 막히게도 '설과 추석'이 다가오는 것은 무조건 안다. 길에서도, 마트에서도 눈에 보이니까. 저 SPAM이 잔뜩 들어간 선물세트들이.

설과 추석이 다가오는 건 'SPAM'이 들어간 선물세트로 알 수 있다


선물세트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다 똑같이 생긴 저 선물세트들 안에 그렇게 많은 전략과 전술이 숨어있는지는 상상도 못했다. 선물세트 제품 하나하나 맡은 역할이 있고, 계급이 있고, 수명이 있고, 희노애락이 숨어 있을 줄이야!



잘 팔리는 제품 만들기 전략 ① : 다른 카테고리 트렌드 접목하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대한민국 통틀어 3번째로 잘나가던 이 선물세트. 내가 만들었다. (풍성한 1호)


선물세트를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부서로 발령받은 나는, '어떻게하면 저 똑같이 생긴 선물세트들 중에서 잘 나가는 신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하루종일 저 SPAM이 꽂힌 선물세트만 보면서 일을 했다. (우리팀은 특별히 명절에 업무를 하는 별도의 TF실이 있었는데, 그 곳에 선물세트를 진열할 수 있는 장을 짰고 그 덕분에 눈만 들면 종류별 선물세트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선물세트 진열장이 TV들을 진열해둔 것처럼 보였다. 어? 그럼 옆으로 와이드하면 제품이 크다고 생각하겠네 소비자들이!


사실 이런 생각의 흐름. 그 중심에는 '문제 의식'이 있었다.

명절 선물은 본디 내가 먹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허례허식을 위한) 주는 것이니 소비자들은 가능하면 커보이는 선물을 싸게 사고 싶어했다. 아 그럼 크기는 크고 위엄있어 보이는데 실제로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은 저렴하되 싸보이지는 않게 만들면 잘 팔리겠네!


그런 고민을 하루종일 하다보니, 급기야는 명절 선물세트가 TV로 보였던거다.

옆으로 길쭉한 와이드TV가 그렇게 잘 팔린다고 하니 옆으로 더 길쭉해지면 사람들은 '더 커진 선물세트'라고 인식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 힌트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판매되었던 모든 종류의 선물세트 이미지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곤,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아 지금은 단종된 '특별한선택 21호'라는 선물세트를 찾았다. 영 크기도 작은데 가격은 그에 비해 비싸다고 인식이 되어 잘 안팔렸던 그 세트. 소비자의 그 미묘한 생각들이 모이면 제품은 단종된다.


이게 바로 '특별한선택 21호' 매우 작다.


나는 저 선물세트를 옆으로 넓히고 싶었다. 와이드해야 크다고 느끼니까!

그래서 카놀라유와 계절어보연어, SPAM사이 공간에 SPAM 작은 사이즈를 세로로 넣는 방식을 생각했고 덕분에 선물세트는 단 4천원 정도 가격이 올라갔지만 그에 비해 크기는 더 크다고 느껴졌다. 각 유통사 MD들과 신제품을 협상하는 역할을 하시는 영업 선배들도 이 세트를 매우 좋아했다. 보자마자 잘 팔릴 것 같다고 했다.

당시엔 선물세트 이름에 숫자와 알파벳이 들어가는 것이 '규칙'이였는데, 이왕 내가 만든 세트는 더 튀고 싶어서 '풍성한 1호'라는 한글 이름도 붙였다. 


대한민국에서 3번째로 잘 나간 선물세트 '특별한선택 풍성한1호'


결국 이 선물세트는 약 5년간 대한민국 명절 선물세트들 중에서 판매량 3위라는 대업을 이루어내었고, 가공식품 제조사들 모두는 이 풍성한1호와 똑같이 생긴 미투 세트들을 만들었다. 내가 팀을 옮긴 이후엔 이 풍성한 1호를 모사하는 풍성한 2호, 3호, S호 등도 탄생했는데 그 모두가 옆으로 길쭉하다는 모양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풍성한1호 성공 이후로 탄생하게 된 동생들. 풍성한 2호, 5호, S호




논리적인 비약이다.

선물세트를 보다가 와이드TV의 매출 호조를 연관하여 생각한 후, 와이드한 선물세트를 만들어 잘 팔았다는 것은.

하지만 논리적인 비약을 하면서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성공 공식을 이 때 체득한 것이 사실이다.

식품과 전혀 관련성이 없는 가전제품 판매 트렌드를 접목해 보는 것. 소비자들이 어느 제품을 좋아하고, 왜 좋아하는지 나만의 관점을 갖추는 연습을 평소에 꾸준히 하다보면, 갑자기 온다. 아이디어와 영감이. 그렇게 논리적인 비약이 이뤄진다.



지금 속해있는 산업군과 카테고리 안에서 이렇다 할 아이디어를 얻기 어렵다면,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유행을 찾아보고 이를 접목해 본다면 '잘 팔리는 제품과 서비스'를 내 손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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