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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off Oct 06. 2018

새벽 네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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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음절과 어절의 모임이 대체 뭐라고 내 목을 찢고 들어와 
이토록 아스팔트에 넙죽 엎드려 피를 토하게 하는가. 
그 음성과 파장이 대체 뭐길래 상하로 출렁거리며 
날 이토록 정신 차릴 수 없이 흔들어놓는가. 


둥그렇고 네모나게 잘려나가 빚어진 활자들이 
내게로 질주하여 내 폐부를 찢어놓는 광경을 보아라. 
아스팔트를 끈질기게 먹어들어가는 내 선혈을 보아라. 
너희들이 그토록 손 닳게 빌던 내 멸망을 보아라. 
많은 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적을 어서 눈여겨 보아라. 
결국 이 광경은, 너희들의 긴 꿈 아니었던가.


너희들의 오랜 꿈은 이렇게 오늘, 뜻하지 않게 실현됐다. 
이렇게 좋은 날,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 


잠겨가는 눈 사이로 보이는 가로등이 잘게 껌뻑거리며 
나의 넋을 기리고 있누나. 
풀벌레들의 사각거리는 웃음소리만이 내 귓가를 메우고,
목 안 가득 차오른 피가 꿀럭거리며 자신을 흩뿌리는 새벽 네 : 시. 
갈기갈기 찢겨나간 내 폐부만이 새벽녘에 펄럭거리며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지를 뿐인 시.


곧, 동이 튼다. 
그러니, 부디 지금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어서 내게 불씨를 던져라.
꺼져가는 담뱃불이라도 좋다.
작은 불씨라도 내가 크게 불려내어 날 잡아먹을 수 있는 포식자로 만들 것이니까.
그러니, 망설임 없이 내 식도 안으로 던져넣어라. 
그 후, 몇 차례의 광열이 멎은 다음 남은 잔재 위에 물을 부어, 
감히 바람에 부유할 엄두도 낼 수 없게 만들어라. 
감히 재의 몸을 빌려 마지막이나마 하늘을 날아보려 하는 건방진 마음을 
단숨에 익사시켜버려라. 
다시는 태어날 수 없도록. 
다시는 이 지긋지긋한 불모의 땅에 숨을 내뱉을 일 없도록. 


너희들의 오랜 꿈은 이렇게 오늘, 뜻하지 않게 실현됐다. 
이렇게 좋은 날,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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