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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바 lambba Oct 04. 2021

쌍둥이와 떠나는 첫 해외여행

기내식 참 좋아하는데...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 아이를 가졌다. 기쁘긴 하지만 문제는 내 나이가 47라는 것이고 쌍둥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리고 복잡한 경우의 수들이 머리를 흔들었다. 딸 둘이냐? 아들 둘이냐?는 매우 중요했다. 딸이면 무조건 예뻐야 하는데 도저히 내 얼굴에선 무리라는 생각에 아들들이길 바랬다. 소원은 이루어졌지만 사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아무생각없이 살다가 아이 욕심이 생겨 빚어낸 결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두 명이던 가족이 한순간 두 배로 늘어나면서 우리에겐 매사에 좌충우돌이 일상이 돼 있었다. 아내는 출산 휴가를 1년 얻었고 육아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보니 직장 복귀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때 마침 남들도 휴가를 떠나는 7월이었다. 고생한 아이들의 엄마도 위로 할겸 일본여행을 계획했다. 20여일의 여정, 직장복귀를 한다면 장기간의 여행은 불가능해 보이고 짧은 기간이면 오히려 쌍둥이들에게피곤함만 안겨줄 것 같아 과감하게 긴 기간을 잡았다. 첫번째 목적지는 처제가 살고 있는 나가노였다.

  

 생후 9개월 된 아기들을 데리고 해외여행에 올랐다. 나름 이 시기가 여행하기 좋은 이유가 있다.

이유식을 먹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과 스스로 직립 보행을 못한다는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쌍둥이 덕분에 무엇이든 두 개다. 유모차 2대 캐리어2개, 캐리어 안에는 분유 7통 무겁고 꽉찬다.

 

  공항가는 지하철부터 고난의 행군이다. 부천에서 출발하여 환승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았지만 나타나질 않는다. 역무원 버튼을 눌러 물어 보려니 개찰구 문만 열어주고 답이 없다. 할 수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내려가기로 했다.  각자 유모차 한 대 씩 맡아 내려갈 수 밖엔 없었다. 내가 먼저 내려가고 위에서 내려오는 아내를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아찔했다. 아내가 갑자기 휘청거린 것. 다행이도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만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심장이 고동친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에는 도착했다. 문제는 시간이 평소 때보다 두배나 걸려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출국장에서는 유모차까지 구석구석 검사하는 엄청난 시스템에 아연질색하고 말았다. 아기들이 있다고 봐주고 그런 거 전혀 없다. 젖병 속 냄새까지 맡는다. 종종 젖병을 이용한 마약 밀수범들이 있기 때문에 엉뚱하게 우리에게까지 그 여마가 온 것이다. 패스트트랙을 이용했는데도 탑승시간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해외여행인만큼 여권에 출국 도장 찍기 전까지는 체면을 지키며 점잖고 우아하게 출국장을 나섰지만 늦었다. 시간이 없다. 우리는 빛의 속도를 내며 유모차를 밀며 내달렸다. 한달 내내 인터넷으로 매일 밤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했던 나의 면세품들은 안중에도 없다. 유모차안의 두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탄것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좋다고 난리다.


  드디어 게이트에 도착했다. 승무원들은 괜찮다고 천천히 오시지 그러셨냐고 한다. 속으로는 빨리 오라고 방송 멘트를 날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 면세품도 포기했는데.. ㅠㅠ,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부터는 즐거운 여행의 시작인 걸까?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다.  산소마스크의 제한된 숫자로 인해 나란히 앉을 수가 없다. 아내와 나는 한명씩 안고 멀리 떨어져 앉았다. 갑자기 막혀있는 낯선 공간에서 나름 공포심 같은 뭔가를 느낀 걸까? 아이들은 울고불고 그야말로 기내가 난장판이 되었다. 이륙할 때는 기압때문에 많이 울거나 괴로워하기 때문에 당장 분유를 줄 수 도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다. 아이를 들고 위로 아래로 움직여주니 그제서야 웃음이 돈다. 이륙을 하는데 이제는 큰소리로 "까르르 까르르"  웃고 떠드는 우리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기분을 왜 모르겠는가? 나도 그들처럼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참기 힘든 그런 때가 있었으니까. 비행기의 기울기가 생기니 녀석이 더욱 신나한다. 이젠 분유를 먹일 시간이 됐다. 제발 분유를 먹고 잠에 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자야해... 꼭 자라. 잔다 . 잔다. 잔다...,”  자는가 싶더니 이젠 울어댄다.

 

 “왜? 도대체 왜?  밥 먹었으면 이젠 좀 자야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린다. 그리고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이때부터 혼잣말이 많아졌다.

나는 기내식을 너무나 좋아한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에 안주로 구름 한 점 찍어보면 최고의 여행길이다. 

이젠 그런 시절은 끝났다. 낙담하면서 아기를 재우는 사이에 기내에서의 한 바탕 소동은 끝났다. 아내 쪽은 어떨까? 걱정을 하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오자 기내식 케이스 뚜껑을 연다. 그런데 이게 웬일? 녀석이 자기 전까지 계속해서 팔에 힘을 주었더니 숟가락이 바들바들 떨린다. 순간 육아란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자각을 한다. 육아의 고통과 인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일본 여행가는 비행기 안에서 제대로 알게 된 셈이다. 그것도 기내식을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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