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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바 lambba Sep 28. 2021

나는 나의 아버지가 되었다.

나의 아버지와 말투가 똑같다.


 갑자기 서울의 온도가 영하 10도로 돌변했다. 매서운 추위 탓에 최대한 몸을 웅크리며 우리집 쌍둥이 녀석들과 어린이집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만으로 3살! 건강하게만 잘자라렴~ 이라는 말은 그냥 이상적인 꿈은 아닐까? 건강한 것은 당연하고 제발 말좀 잘 들어주렴이 더 솔직한 나의 마음인것 같다. 말은 행동과 일치한다. 얘네들 힘이 너무 넘쳐난다. 대체 뭘 먹고 이렇게 힘이 쎄졌을까? 마누라는 내가 마늘을 많이 먹어서 그런거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하긴 나를 닮아 열이 많다.

겨울인데도 외출 할 때 코트를 입지 않겠다고 때를 쓰곤한다. 가뜩이나 짐도 많은데 코트까지 들고 나간다.

이런 모습에 한동안 나는 양아버지가 되었다. 녀석들은 벌벌 떨면서 걸어가고 나만 따뜻하게 코트를 입고 있으니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한다. “애들 너무 춥겠다...” 웃으면서 대응하면 왜? 아버지는 따뜻하게 입고 애들은 저렇게 입혔냐 하며 혼낼기세다. 묵묵부답이면 끝까지 말한다.  “아우 애들이 얼마나 추울까 불쌍해” 대놓고 들으라고 하니... , 아! 짜증나... 이 속을 누가 알아 주겠는가...


  그런 녀석들이 밖을 나서자마자 코트를 자진해서 입혀달라고 한다. 녀석들의 예상과는 달리 추워도 너무 추운 것이다. 항상 양손엔 장난감을 들고 어린이집으로 향했지만 매서운 바람은 녀석들의 동심을 빼앗아 나에게 주었다.  그 장난감을 받자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 한 겨울에도 순대국 

한 그릇을 팔기 위해 식당 밖에서 생돼지를 손보고 계셨던 아버지, 면도날로 돼지주변을 손질하며 물에 담그고 다시 손질하고 물에 담그고... 초등학교 2학년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챙피해  인사도 안하고  학교에 가곤했다. 아버지는 철도공무원이셨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며 틈만나면 아버지가 용산역장이셨고 그때 어머니는 형을 데리고 철도여행을 하셨다고... 그럴때마다 나는 그렇게 잘 살았는데 형만 유치원 보내고 왜 난 유치원 안보내 줬냐고 따졌다. 어머니는 너는 가난할 때 태어나서 그래...

  

 아버지는 공부를 못하는 나를 특별하게 혼내거나 다그친 적은 없었다. 대신에 내가 나가서

사고를 치거나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경우에 듣는 말이 있었다.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너는 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가? 너는 왜 나를 괴롭히는가? ”

아버지의 기분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냥 이 말을 들을때면 난 굉장히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잘못인지 잘 모르면서도...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아니 술을 좋아하셨는지 먹고 살기 위해 술을 드셨는지는 모르겠다.

말동무가 되어 같이 마셔야 매상이 오르기 때문에...

내 기억속 아버지는 항상 술냄새가 진동하고 비틀비틀 거리셨던 그런 모습이었다. 성장해가면서 아버지가 싫어졌다.  막걸리잔을 들고 해맑게 웃는 사진을 보면 정말 꼴보기 싫었다. 그래서 찢어버린적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1장이 더 있어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어찌보면 그 마음이 이해가 되는 사진이 되었다.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말투...


나도 그 말과 말투를 우리 애들한테 언제부터인가 사용하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온 말은 시간이 흐른뒤에야 아버지한테서 들었던 말임을 알게 되었다.  내 기억에는 초등학교 2,3학년쯤 이라고 하지만 나는 어떠한가? 말도 못하는 아이를 상대로 그런 말을 하고 있다. 아내는 나의 이 말에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아이가 당신을 괴롭힐수있겠는가? 

어떻게 아이와 동등하게 생각해서 말을 할수 있는가?

어떻게 아이가 계획적으로 할수 있겠다고 생각하는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확실히 느끼는 점은 있다. 이제사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고...

인내심, 친절함, 감정표현, 스킨쉽... 이 모두를 난 이제 연습하기 시작했다. 

 지역마다 가정상담센터가 있다. 나에 대한 상담을 신청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고치고 싶은 심정이고 나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신청했다. 상담사는 나보고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자란편이지만 무탈하게 이상스럽게도 그걸 다 소화해서  이 자리까지 온것같다고 아마도

내면에 존재하는 그 많은 에너지를 왕성한 호기심으로 소화시키지 않았을까 한다. 한편으론 대견하기도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다는 듯한 상담사의 표정이 보였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내가 왜 아이들에게 이런 반응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내 자신을 이해할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효과는 조금씩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아침에 서두르게 되어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모습에 여유를 주기 위해 일찍일어나 준비를 했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조금만 신경쓰고 조금만 관찰하면 좋은 아빠 좋은 아이들이 될수있다.

 나의 아버지가 나쁘다는것은 아니다. 그때의 아버지는 그게 최선이고 나처럼 아이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나온 행동일것이다. 나름의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살아오셨지만

자식이 느끼는 감정은 자식만이 알수있는것 아닌가?


되물림이란 해서는 안될게 참 많다. 해서는 안될 것을 지금이라도 알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어렵게 얻은 아이에게  나아버지를 닮아 나의 아버지 모습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보단 어쩌면 이제사 그 마음을 알것 같아 스잔하다. 그래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렇게 라도 생각할수 있으니

매섭게 추운날 나의 마음은 서서히 따뜻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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