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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Dec 29. 2024

02 나의 본질

변하지 않을 핵심 가치

01

본질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퍽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럴 땐 사전을 찾아보거나, 한 글자씩 뜯어보는 것이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 참 다행입니다. 근본 본(本), 바탕 질()을 사용한 본질의 정의는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이라는 말이라고 하네요. 그러니 본질은 변하지 않을 특질이나 성격이라고 바꾸면 보다 쉽게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02

수많은 본질 중에서도 우리는 스스로의 본질을 가장 잘 찾아야만 합니다. 누구나 각자의 자리와 고유한 쓰임이 있다는 시선에서 바라보면, 나의 본질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나의 무엇을, 어떻게, 어떤 이유로 이 세상에 팔아 낼 것인지 묻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저의 본질을 무엇을, 누구에게, 왜라는 3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겠습니다. 자, 그럼 저는 과연 무엇을 팔고 있는 걸까요?


03

저는 이야기를 파는 사람입니다. EVERY BRAND COMES WITH A STORY. 저의 첫 직장의 슬로건이었어요. 저는 이 문장 하나 때문에 브랜드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브랜드만 그러할까요? 제품도, 사람도, 공간도, 심지어는 매일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이야기가 됩니다. 이야기를 가진 모든 것은 특별해집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겠네요. 모든 것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고유합니다.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저는 그 숨은 이야기를 발굴해 내고 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04

이렇게 찾아낸 이야기를 과연 어디에 전달하고 싶은 걸까, 생각해 봅니다. 이야기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면 물론 좋겠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죠. 조금 웃기지만, 저는 혼란에 빠진 사람에게 이야기를 팔고 싶습니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나? 이 방향으로 계속 가도 될까? 이러다가 넘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고민과 불안을 가득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요. 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고, 제가 불안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 또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05

이미 왜 팔고 싶은지에 대해서 살짝 언급하긴 했지만, 저는 언제나 불안이 저의 삶의 메인 키워드였던 사람입니다.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늘 걱정과 고민을 떠안고 살았습니다. 일이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수많은 대체지를 만들어 놓고 사는 사람이었고요. 그런 성향이 한때는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만들었고, 가혹하게 일하는 환경에 스스로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을 깨끗하게 바라보지를 못했고, 순간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했습니다. 언제나 갈 길이 바빴고, 할 일 목록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니까요.


06

이제는 압니다. 불안은 저의 친구이자, 동료이며, 가족이라는 것을요. 불안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요. 불안은 나를 더욱 힘차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요. 불안은 나를 더 멋진 곳으로 데려다줄 친구라는 것들요. 불안은 제 안에 있는 것이기에 저는 어디로도 숨을 수가 없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불안에 솔직해지게 되었어요. 여전히 가끔 두렵고 무섭지만, 그래도 이제는 불안과의 거리감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07

불안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감정입니다. 더 잘 나고 싶은 마음에 생기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제는 더 잘 나고 싶은 마음은 없어졌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그리 조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불안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요. 이렇게 잘 살고 싶어서, 더 빛나는 내일을 살고 싶어서 만들어낸 나의 친구가 바로 불안인 것입니다.


08

그렇습니다. 저는 과거의 저처럼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 이들에게 더 이상 불안해지지는 않을 이야기를 팔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혼란하지 않으냐,라고 묻는다면 아닙니다. 혼란스럽지만 어떻게 실마리를 찾아서 풀어나갈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엔 빛이 아예 보이지 않는 터널을 헤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출구 쪽의 가느다란 빛 한 줄기를 발견한 상태랄까요. 그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떼는 중입니다.


09

오히려 불안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제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더욱 많을 거예요. 저는 이미 불안해봤으니까요. 불안할 때 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작은 브랜드들의 고유한 스토리에 기쁨을 느꼈고, 반짝거리는 제품들을 바라볼 때 동기를 얻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걸어가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10

본질은 평생 바뀌지 않을 핵심가치라고도 합니다. 불안만큼은 내 인생의 변하지 않을 평생의 키워드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렇게 안갯속에서 한 발짝을 디딘 저 스스로를 조금은 기특하게 여길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야기가 주는 작고도 큰 힘, 이 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미래를 더욱 자세히 그려나갈 수 있는 2025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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