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안중근은 출입이 무상했다. 한번 나가면 멀리 다녔다.
아내에게 돌아올 날짜를 말하지 않았다.
몇 달씩 밖으로 돌다가 절기가 바뀌고 나서 돌아오는 일도 흔했다.
안중근의 아명은 응칠 應七이었는데,
안태훈(안중근의 아버지)은 어렸을 때부터 밖으로 나도는 아들의 기질을 눌러주느라고
무거울 중 重과 뿌리 근 根을 써서 중근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개명은 안중근의 기질을 바꾸지 못했다. (중략)
김아려는 혼인한 지 십 년이 지났음에도 나그네 같은 남편을 어려워했다. p. 26
남편은 또 어디론지 떠날 것 같았다.
집에 와 있을 때도 남편은 늘 나그네 같았다.
남편에게는 넘어서지 못할 낯섦이 있었다.
김아려는 남편 앞에서 수줍어했다.
그 사내는 땅에 결박되어 있으면서도 땅 위에 설 자리가 없었다. p. 67
"다음 달에 우라지(블라디보스토크)로 가기로 했습니다."
'... 도마야, 악으로 악을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 이 말이 너무 어려우냐? 네가 스스로 알게 될 때는 이미 너무 늦을 터이므로 나는 그것을 염려한다. '
빌렘은 그 말을 안중근에게 하지 않았다. p.66
"형님, 가지 마시오. 여기서 삽시다."
"여기는 이미 이토의 땅이다.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살길을 찾아가겠다.
이것은 벌레나 짐승이나 사람이 다 마찬가지다.
이것이 장자의 길이다." p. 73
이토의 목숨을 제거하지 않고서,
그것이 세상을 헝클어뜨리는 작동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기 때문에,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 殺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p. 89
이 세상에서 이토를 지우고 이토의 작동을 멈춰서
세상을 이토로부터 풀어놓으려면
이토를 살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안중근은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생각은 어둠의 벽에 부딪혀서 주저앉았다.
생각은 뿌연 덩어리로 엉켜 있었다. p. 90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가늠쇠 너머에 표적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표적으로 시력을 집중할수록 표적은 희미해졌다.
표적에 닿지 못하는 한줄기 시선이
가늠쇠 너머에서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표적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 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p. 159
빌렘은 교회의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교회의 밖이라 해도, 거기는 여전히 하느님의 세상일 것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빌렘은 펜을 들어서 뮈텔 주교에게 편지를 썼다.
'공경하는 주교님.
제가 영세를 주었던 안중근 도마가 살인의 대죄를 범하고 사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저에게 영혼을 의탁하고 싶다는 청원을 전해왔으므로, 저는 사제의 직분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안중근 도마의 정치적 명분과 관련 없이 그가 저지른 죄를 성찰하고 그의 뉘우침을 도와주어서 그의 마지막을 인도하려 합니다. (중략) 저의 출장을 허락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출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안중근은 제 발로 걸어서 교회 밖으로 나가서 죄악을 저지른 자이다. '
'출장 불가'를 알리는 뮈텔의 답장을 받은 다음날 빌렘은 여순으로 떠났다.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저는 여순으로 갑니다. '
p. 264
관동도독부는 집행 날짜를 25일로 정해놓고 있었으나
서울의 통감부가 25일은 한국 황제의 생일이므로
날짜를 바꾸어야 한다고 여순 감옥에 전보로 알렸다.
집행은 하루 연기되었다.
안중근은 3월 26일에 죽었다. (중략)
3월 27일 부활절이었다.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를 드렸다.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과 통감부 관리들과 서양인 기술자들과 신자들이 참례했다.
p. 277-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