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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익준 Jan 12. 2019

닫는 이야기

매번 어른은 아이를 방 안으로 숨기기 바빴다.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에서 약자임을 의미했으므로. 어른에게 있어 아이와 함께 다니는 것은 공격하기 좋은 빌미를 만들어 제공하는 꼴이었다. 어른이 아이를 방 안으로 들여보낼 때마다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결정을 믿었으므로 별다른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에게 매번 약속했다.

"금방 열어줄게, 잠깐만 조용히 있자. 조금만 이렇게 있으면, 우린 같이 어른이 될 거야." 아이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깐만', '금방', '조금만'이라는 단어가 하나라도 섞인 약속은 대개 오래지키기 어렵다. 어른의 경우도 그러했다. 부탁은 갈수록 지시가 되었고 아이를 방에 들여보내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방에 가두던 날에도 그는 안에서 문을 잠가 달라는 말을 덧붙이고 아이의 눈길을 피할 뿐이었다. 아이는 표정도 없는 눈으로 그를 오랫동안 쳐다보고는 천천히 방문을 닫고 문을 잠갔다. 그는 아이의 그런 성숙한 행동이 내심 뿌듯했다. 녀석 많이 컸네.


어른은 아이가 없는 동안 사회에게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힘쓰며 노력했다. 그의 노력은 모두에게 칭찬받았다. 어른은 아이를 조금씩 잊어버렸다. 이따금 방안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심하게 떼를 쓰지 않는 걸 보면 방 안의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사회가 어른을 불렀다. 그는 내심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칭찬과 그에 따른 보상을 기대하였으나, 예상은 빗나갔다. 사회는 어른에게 떠나라고 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며, 그저 네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사회가 하는 말을 단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억울하고 화도 나지만, 사회의 말이 다 옳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굳게 다짐했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는 않겠다고.


그는 이참에 책을 써보겠노라 마음먹었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느라 미뤄두었던 일 중 하나였다. 바로 작업에 착수했고, 초반엔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으나 그저 초심자의 행운에 불과했다. 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었다. 실컷 풀어낸 이야기는 진부할 뿐만 아니라 아무리 색을 칠하고 장식을 달아도 아름답지 않았다. 책상 앞에서 머리를 감싸 쥐던 그는 문득 아이를 떠올렸다. 녀석은 시키지 않아도 항상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매번 자신이 쓴 글을 들고 달려와 어른 앞에 전리품처럼 늘어놓고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미소짓기도 했다. 


어른은 오래전 그 방문 앞에 다시 섰다. 표면에는 이끼가 자랐고 문고리는 녹이 슬어 곧 부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렇게 오래되었던가.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려 열자 아이는 방 한가운데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어른은 천천히 다가가 손을 뻗어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의아함과 두려움이 섞인 눈이 바쁘게 그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일어나야지."


녀석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웃음이 피었다. 아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른의 목을 한번 꽉 감싸 안고 곧장 책상으로 달려가더니, 기다렸다는 듯 글을 써 내려갔다. 이따금 경쾌한 멜로디의 휘파람을 불기도 했는데, 그것은 기분이 좋다는 의미의 최상급 표현이었다. 


어른은 아이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걸어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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