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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Jun 04. 2024

<퓨리오사> 전작만큼 충격적이진 않지만, 호방하다

벌써 9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어제 일어난 일도 가물가물해하는 이들을 위해) 잠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이하 <매드맥스>)를 복기해 보자. 멜 깁슨 주연의 ‘매드맥스 3부작’ 이후 30년 만에 재시동은 건 <매드맥스>는 곧 죽어도 내 갈 길은 가겠다는 호방한 기개가 만개한 ‘미친’ 영화였다. 대사 몇 마디 없이 직진하는 운동 에너지만으로 인물의 심리와 세계관을 납득시키는 조지 밀러의 연출력이 특히나 묘술에 가까웠다. 이렇게 카체이스 액션 신을 연신 때려박는다고? 그런데 그 액션이 지루하지 않다고? 설명 없이도 많은 걸 설명해 낸다고? 신들린 광인 캐릭터가 이렇게나 많다고? 관객은 열광했고,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 6관왕까지 거머쥐며 작품성 면에서도 성취를 거뒀다.  

    

그래서다.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전사 퓨리오사의 과거를 다룬 프리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가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와 함께 합리적 의심을 품은 건. 인물 비하인드와 구구절절한 세계관 설명 없이도 스크린에 굳건하게 섰던 작품인데 굳이? 혹시 사족에 불과한 주석(註釋)이 되는 건 아닐까. 명료함이 미덕이었던 작품의 장점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불리한 싸움은 아닐까. 그렇게 마주한 <퓨리오사>는 고민 없이 동승을 권할 만한 ‘상위 레벨’의 작품이다. 다만 전편이 품었던 특별함과 흥분은 옅어진 느낌인데, 이것은 너무나 훌륭한 작품을 내놓았던 감독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과도 같다. 조지 밀러의 경쟁자는 조지 밀러랄까.      

충분히 재밌지만전편보다는 덜 흥분되는       

핵으로 문명이 붕괴된 미래. ‘녹색의 땅’에서 살던 어린 퓨리오사는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가 리더로 있는 바이커 군단에 납치되고, 그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어머니가 디멘투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는 모습을 목격한다. 디멘투스에 의해 시타델의 독재자 임모탄(러치 험)에게 팔려간 퓨리오사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어머니 복수를 위해 거친 사막으로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앞선 <매드맥스>가 맥스(톰 하디)와 퓨리오사의 3일간의 시타델 탈출기를 그렸다면, 이번에는 납치된 퓨리오사가 전사로 성장하는 15년을 담았다. 다분히 ‘사건 중심’에서 ‘인물 중심’으로의 위치 변화다. 퓨리오사가 ‘어디서(where)’ 왔는지, ‘어떻게(how)’ 시타델 총사령관이 됐는지, ‘언제(when)’ 팔을 잃고 의수를 찼는지. ‘왜(why)’ 임모탄의 다섯 아내를 데리고 도망치게 됐는지, ‘무엇(what)’을 위해 싸우는지, ‘누가(who)’ 그녀를 이렇게 변화시켰는지. 이 모든 게 테트리스처럼 자리를 찾아간다. 퓨리오사를 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캐릭터의 팬이라면 내내 즐거울 만하다.      


다만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을 나눌 만큼 서사가 장대하다 보니, 속도감이 시시때때로 느려진다. 액션 자체가 서사로 기능했던 전작의 특별함도 상당 부분 유실됐다. 서사를 적극 끌어안으면서, 오히려 서사의 구멍을 노출하기도 한다. 가령 씨받이(브리더)가 될 운명에 처한 퓨리오사가 스스로 여성성과 신분을 지우고 남성 세계로 위장 편입하는 과정은 묘사됐는데, 그런 퓨리오사의 선택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리액션들은 생략되다 보니 성장 서사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는, 시타델 일꾼으로 위장해 살아가는  퓨리오사 정체를 그 누구도 하등 의심하지 않는 모습에서, 세상이 퓨리오사를 두고 몰래카메라 찍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화적 허용이라는 게 있기는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거 다들 너무 눈썰미 없는 거 아니요?     

 

<퓨리오사>는 멜 깁슨 주연의 초기 ‘매드맥스 3부작’ 중 2편의 세계관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배경은 미래지만, 문명 파괴로 인간의 삶은 과거로 회귀한 상태. 의미심장하게도 역사는 돌고 돈다. 물과 기름 같은 한정된 자원을 독점한 자가 권력을 쟁취하고, 인간 자본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사이비 종교가 생겨나는 모습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인간의 욕망과 독점욕은 변하지 않음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이번 편에서는 지배계급에 속하는 황무지 3대 요새인 ‘시타델(임모탄 조가 물을 독점해 지배)’ ‘가스타운(내연기관 차량 운행을 위한 기름 생산)’ ‘무기 농장(쇳덩이와 석탄을 채집해 무기 생산)’의 관계가 전보다 확실하게 드러난다. 흡사 서구 열강들을 연상케 하는 이 세 요새의 리더들은 물물교환 형식의 무역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런 공생 관계에 어깃장을 놓는 건, 디멘투스다. 그는 가스타운을 약탈·접수한 후 임모탄 조와 정치적 협상을 벌인다. 연료를 계속 공급해줄 테니, 물과 식량을 더 다오! 협상에서 불리한 건 대개 ‘잃을 게 더 많은 자’다. 저 망나니 같은 디멘투스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자신이 쌓아올린 왕국이 어수선해지는 게 싫은 임모탄은 디멘투스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단, 조건을 하나 건다. 요구를 들어줄 테니, 옆에 있는 소녀를 내게 다오. 짐작하겠지만, 소녀는 어린 시절의 퓨리오사다. 중요한 협상 테이블에서 소녀에게 눈이 돌아가는 임모탄 조의 거래 방식은 그가 훗날 퓨리오사와 함께 도망친 브리더들에게 왜 그렇게 집착하는가에 대한 밑그림이다. 임모탄에게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여성(인류 멸망의 원인이 핵전쟁이었으므로)은 자신에게 건강한 아이를 낳아줄 수 있는 소유물 개념. 그 자신이 브리더로 성장할 뻔했던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씨받이로 고통받는 여성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그 힌트가 여기에 있다.      

안야 테일러 조이새로운 무비 스타의 탄생      


바이크 군단을 이끌고 다니는 빌런 디멘투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자. 망치를 들고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부족사회로 퇴행한 사회에서의 망치는, 히어로들 사이에서 꺼내 드는 망치/묠니르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하니까) ‘토르 출신’ 배우가 연기한 디멘투스는 ‘과묵함’이 시대정신인 줄 알았던 이 시리즈 인물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는 수다쟁이다. <퓨리오사>에서 대사가 많다고 느껴진다면, 그 이유의 8할도 이 인물에게서 기인한다. 컨디션 등락이 커서 조증 환자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여러모로 기존 분위기에 새로운 뉘앙스를 불어넣는 캐릭터이니만큼, 호불호는 나뉠 것으로 보인다.      


<퓨리오사>는 멜 깁슨에서 톰 하디로 바통 터치가 이뤄진 미친 ‘맥스’가 등장하지 않는 첫 ‘매드맥스 시리즈’다. 대신 시타델의 근위대장 잭(톰 버크)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퓨리오사가 사막의 로드 워리어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멘토이자, 조력자이면서, 살짝 달달한 무드를 형성하는 그 이상의 존재다. 전작에서 샤를리즈 테론과 톰 하디가 보여줬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식의 통쾌한 액션 합은 이 둘을 통해 다시금 스크린에서 폭발한다.      

인물들이 모는 차와 오토바이가 기실 그 캐릭터의 퍼스낼리티를 반영해 내는 시리즈이니만큼, 개조된 차량들을 보는 재미가 이번에도 쏠쏠하다. ‘로마식 전차’ 아이디어를 빌려 완성됐다는 디멘투스의 차량, 마네킹을 앞면 본체로 붙인 오토바이 등 145대의 내연기관 차량이 개성을 뿜으며 모래 먼지 위를 달린다. 그나저나 이 영화를 가장 싫어할 사람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아닐까 싶다. 전기차 없는 미래라니. 전기차 충전소조차 허락되지 않는 무대라니.      


샤를리즈 테론을 통해 전에 없었던 여성 캐릭터로 탄생한 퓨리오사의 후임을 맡은 얀야 테일러 조이는, 거대한 부담감을 깡으로 잘 막아낸다. 샤를리즈 테론과는 다른 형질의 외모와 체격을 지니고 있지만, 기세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 특히나 그녀의 쏟아질 듯 큰 눈은 일당백이다. 단 30줄 분량의 대사밖에 허락받지 못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내면의 울분을 눈을 통해 성공적으로 드러낸다. ‘<매드맥스>의 퓨리오사’가 샤를리즈 테론의 존재감을 세계에 거듭 확인시키는 캐릭터였다면, ‘<퓨리오사>의 퓨리오사’는 안야 테일러 조이라는 새로운 무비 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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