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발상이 어마무시한 작품이었다. 천사가 눈앞에 나타나 죽는 날을 '고지(告知)'하고, 그 시간이 되면 지옥의 사자들이 찾아와 찢고 뜯고 불태우는 방식으로 '시연(試演)'을 한다. 간명하지만 결코 단순하진 않은, <지옥>의 세계관은 매혹적이고도 선명한 동시에 강렬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내세운 작품임에도 현실에서 붕 뜬 '판타지'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밑바닥과 한국 사회의 모순을 차갑게 압축해낸 '부조리극'이라는 점 또한 기가 막혔다.
발상과 전개뿐 아니라, 지옥에 간 박정자(김신록)가 '부활(復活)'하는 엔딩도 옆구리에 하이킥을 내려꽂는 것처럼 놀라웠다. 이토록, 감칠맛 나는 엔딩이라니. 고지를 받고도 살아남은 배영재(박정민)-송소현(원진아) 부부의 아이에 대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또한 시즌2에 대한 궁금증에 추를 달았다. 박정자가 지옥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 살아남은 아이는 인류의 희망일까 절망일까. 그 물음을 안고 시즌2가 3년 만에 돌아왔다.
시즌2는 1편 엔딩으로부터 4년 후를 그린다. 앞서 언급한, 배영재·송소현 부부 아기의 생존은 종교집단 '새진리회'가 강자로 군림하던 힘의 균형을 흔들어 놓았다. 죄 없는 아이가 고지를 받은 것이 '죄인이 지옥행 고지와 시연을 받는다'는 새진리교의 교리를 약화시켰기 때문. 새진리회 창시자 정진수(김성철)가 바지사장처럼 내세운 2대 의장 김정철의 그릇이 거대 종교집단을 끌고 가기엔 부족한 탓도 있다.
시연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소도' 역시 상황은 좋지 못하다. 리더 민혜진(김현주)의 말마따나 "고지받은 한 명을 구하고자 한 명씩 희생하며 싸웠던 소도는 이해득실 따지면서 정세 판단을 하는 조직"이 됐고, 인간의 존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민혜진의 신념에 반감을 품는 멤버들이 생겨나면서 조직은 살얼음판을 걷는다.
하수상한 세월 속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건 광신도 집단 '화살촉'이다. 화살촉은 새진리회를 "신의 신성한 개입인 시연을 허접한 쇼로 이용해 먹는" 사이비로 규정하며 세를 불렸다. 유치원 햇살반 선생 오지원(문근영)처럼, 평범한 삶을 살다가 화살촉에 빠져든 이들이 넘쳐나니 화살촉은 기세등등하다. 여기에 시즌1에서 덜 부각됐던 새로운 세력이 가세했다. 대통령실 정무수석 이수경(문소리)을 내세운 '정부'다. 정부는 대립각을 이루고 있는 화살촉-새진리회-소도의 힘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적당하게 힘이 분배돼야 통제하기 쉽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이수경은 새진리회가 비밀리에 숨겨 두고 있는 '부활한 박정자'를 이용하려고 한다. 방법은? 박정자의 부활에 거짓 '의미'를 씌우는 것이다. 예상대로 박정자가 살아 돌아왔다는 뉴스는 사회에 커다란 충격파를 던진다. 그리고 들썩인다. 의미를 알기 어려운 '고지'와 '시연'에 온갖 의미를 부여했던 것처럼, 박정자 '부활'에 대해서도 집단마다 각자의 입장에서 의미를 입히고 원칙을 덧씌우려 한다. 의미를 선점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주도권 싸움의 세계가 됐으니까.
여기서 우린 시즌1에서 정진수가 '고지'와 '시연'을 인간 죄와 연결하며 내세웠던 논리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인간은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 버리는 족속들이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알베르 카뮈 등 여러 철학자가 추적했듯, 의미가 없으면 인간은 허무주의에 빠진다.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면 세상엔 자살과 다툼이 넘칠 것이다. 그러니 의미를 운운하며 세상을 속인 정진수의 주장은 그것이 잘못된 신념이든 자기 행동에 대한 면죄부이든, 어느 정도는 합당했다.
그러나 정진수가 놓친 게 있다. 의미가 없으면 허무에 빠지는 게 인간이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다가 서로 공멸하는 것 역시 인간이라는 것을. 연상호는 이 메시지를 오지원의 남편 천세형(임성재)의 입을 통해 명확하게 전달한다.
"신의 의도가 뭔지 알았다! 아무 의미도 없는 거에 의미를 부여해서 서로 죽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거야. 거기가 어디인지 알아? 지옥이야. 신은 지금 지옥을 이 세상으로 옮기려고 한다!" 실제로 정진수가 만들려 했던 세계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질서 유지는커녕, 넘쳐나는 의미로 인해 세상은 공포와 폭력이 판치는 지옥이 돼버렸으니.
<지옥2>는 시즌1이 그랬듯, 왜 고지와 시연이 일어나는지. 배영재와 송소현의 아이는 왜 시연에서 살아남았는지, 신의 의도가 진짜 존재하긴 하는지 등을 알려주지 않는다. 박정자가 지옥에서 본 것이나 겪은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다. 1편에서 풀어놓은 봉합되지 않은 의문이 2부에선 풀리지 않을까 기대했을 시청자라면 다소 맥이 빠질 수 있다. 화장실에서 안 닦은 듯한 찝찝한 기분도 들 것이다. 시즌2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작품 속 의미가 무엇인지 집착하거나 주석을 달려 할수록, 드라마 속 인물들과 같이 의미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감독 연상호와 작가 최규석이 던진 미끼는 단순하지 않아서 음미하고 뜯어보고 논의하는 재미가 확실하게 있다.
다만, 1편과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바람이 조금 빠진 풍선 같은 면이 있다. 앞서 밝혔듯, 1편에서 전한 핵심적인 설정은 강렬한 것이었다. 이 설정은 그러나 한 번 쓴 패다. 2부에서 이 패는 더 이상 큰 충격을 줄 수 없다. 그렇다면? 더 심층적인 이야기나 리드미컬한 구성으로 새로운 충격의 패를 꺼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시즌2는 기대치에 완전히 도달하진 못한다.
전편에서 이어지는 믿음, 신념, 정의, 원죄 등의 화두가 동어 반복처럼 느껴지는 지점도 있다. 반복된 메시지가 별로라는 뜻은 아니다. 부활이라는 새로운 모티브가 능동적으로 작동해 새로운 화두를 더할 법한데, 그것이 세력 싸움에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인상이어서다.
"중요한 건 상징성이라는 거예요. (생략) 내용이 아니에요. 캐릭터예요. 캐릭터가 좋아야 해요." 극 중 이수경이 한 말이다. 이 말은 조금 돌려서 <지옥>에 대입시켜 볼 수 있을 듯하다. 드라마에서 캐릭터는 실제로 중요하다. 이때 캐릭터는 작가의 글이나 감독의 연출력만으로는 완성되진 않는다. 마지막을 완성하는 건,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결'이다. 시즌1은 세계관만큼이나 개성 강한 캐릭터들로도 호평받았는데, 여기엔 정진수에 음흉한 카리스마를 입힌 유아인과, 박정자에 피와 살을 불어넣은 김신록의 공이 크다. <지옥>의 상징적인 인물로 정진수와 박정자를 꼽는 이가 많은 것도, 두 배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하차한 유아인의 공백은 어쩔 수 없이 시즌2가 넘고 가야 할 허들. 바통을 이어받은 김성철은 연기적으로 검증받은 배우이고 대중에게 보여주지 않은 매력도 많은 연기자다. 소란스러운 시선 속에서도 김성철은 맡은 연기를 잘 소화해 낸다. 그러나 시즌2의 상징성이 1편처럼 (김성철이 연기한) 정진수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긴 힘들 것 같다. 하필 유아인에게 정진수가 너무나 잘 들어맞는 영혼의 단짝(?) 같은 캐릭터였기 때문이다(유아인이 연기한 캐릭터 베스트 3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지옥>의 정진수를 꼽을 것이다).
몇몇 아쉬움을 언급하긴 했지만, <지옥2>가 비슷한 부류의 작품들보다 두텁게 쌓아 올린 드라마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는다. 판타지 속에서 인간의 밑바닥을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그려내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연상호와 작가 최규석의 동행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다.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