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를 훑어보다 우연히 오래 전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1991년 민음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지금 다시 보아도 제목이 주는 흥미는 여전해 모처럼 다시 읽어볼 요량으로 선뜻 집어 들었습니다.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도 상영됐던 이 책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두 명은 존재의 가벼움을 추구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반대로 존재의 무거움을 추구하면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구조인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언제나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한 생각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저자는 처음부터 ‘무거움’의 세계란 실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존재의 무거움이란 사상이나 전통, 체제, 형식 등을 말하는데 그것은 모두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무거움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무거운 책임을 지우고 의무를 떠안깁니다. 하지만 그에 따라 살아가는 삶은 모두에게 의미 있는 삶으로 기억되겠지요.
인간은 누구나 한번 뿐인 삶, 다시 되돌아가지 못하는 가벼운 삶에 두려움과 허망함을 느끼고 그래서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동안의 삶을 의미 있게 기억되게 하기 위한 것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본능적인 방어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낸 무거움은 인간에게 짐이 되어 욕망을 억누르게 하고, 타인을 배제하거나 억압하고, 죄책감이라는 것을 만들어 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 가벼워서 참을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냈던 무거움이 다시 인간이라는 존재를 짓누르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때문에 다시 그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순환이 계속 반복됩니다.
반대로 가벼움이란 존재의 무거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뜻합니다. 따라서 가벼움의 세계는 어쩌면 우리의 규범에 비춰 비도덕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택하게 되면 너무 자유롭다 못해 삶 자체가 무의미해 지는 결론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먹고, 배설하고, 잠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며 이것을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동물적인 것과 연계하며 가벼움으로 취급합니다. 무거움만을 우선으로 두는 것이지요.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벼움’이나 ‘무거움’이라는 실존이 아니라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얼마 전 끝난 지방선거 역시도 존재의 무거움이 만들어낸 가치의 문제에 해당하겠지요. 그 속에서 가벼움을 택했다고 생각하는 후보를 향해 온갖 네거티브가 있기도 했으나 그래도 어찌되었든 우리는 그 무거움을 잘 통과해낸 것 같습니다.
삶의 지향점을 무거움에 둘 것인지, 가벼움에 둘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겠지요. 나라는 존재는 무거움에 치우쳐 있을까, 아니면 가벼움에 치우쳐 있을까…, 이 저녁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에 잠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