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십 장의 명함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내 전화번호에 기입되거나 내 기억 속에 저장되는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명함을 받는 순간에는 적힌 이름과 직함을 세심하게 살펴보게 됩니다. 나는 상대방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 명함을 통해 상대방을 조금이나마 알기 위한 것이지요.
명함 속에 적힌 직함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알리는 최적의 수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의 직함으로 내가 살아온 삶을 미루어 짐작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하게 됩니다. 명함에 적힌 직함은 곧 나의 삶이 되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전하는 나의 신뢰인 셈입니다.
이런 이유로 상대방을 속이려고 작정한 사기꾼들은 대부분 자신이 전문가인양 행세하고 명함에 적힌 직함도 전문가로 기재하곤 합니다. 그리고 명함을 건네받은 사람은 명함이 거짓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임에도 합리적인 의심 없이 그 사람을 일정부분 신뢰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권위의 심리학, 설득의 심리학이라 부릅니다. 즉, 직함이 권위로 작용해서 상대방에게 신뢰를 쌓게 하고 그것은 결국 자신의 말을 설득시키는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의사, 변호사, 판사, 교사 등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전문가입니다. 그들은 그 분야를 오래 공부한 후 일정한 시험에 합격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때문에 이들은 전문가라고 불러도 아무도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자격증이 가진 공신력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전문가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평생학습이 많아지고 사설 교육기관이 많아지면서 너도나도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돈을 주고 기간만 채우면 자격증을 주는 곳도 많아서 그 분야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문가 명함을 건네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느 기관에서 받은 것인지도 불분명한 전문가 직함에 사람들은 현혹당하기 쉽고, 그렇게 어설프게 배운 지식들은 때로 가짜 정보가 되어 흘러 다니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스스로 자신의 전문가 직함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스로를 ○○전문가로 소개하거나 ○○비평가 등으로 소개하는 경우, 그들이 어떤 경로로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는지, 그가 그 방면에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그것을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전문가 타이틀은 우리들을 현혹하는 도구로 사용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남이 이미 다 해놓은 것을 슬쩍 가져다가 내 것인 양 아는 척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전문가라고 인정하긴 어렵습니다. 그것은 직함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니 사기꾼들이 상대방을 현혹하기 위해 전형적으로 하는 행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점점 가짜가 많아지고 거짓 정보들이 넘쳐나는 것도 어쩌면 이처럼 전문가가 아님에도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은 아닌지…, 우리 주변에 자신을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사람 중에서 가짜는 없는지 한번쯤 생각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