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을 꽂아둘 공간이 부족해 책장 정리를 했다.
누군가에겐 재미있었을 혹은 의미가 있었을 책이 내겐 없어도 좋을 책으로 분류되는 것을 보면서
그 책의 작가를 생각했다.
어떤 작가도 쉽게 쓰지 않는다. 글 좀 끄적이다가 안되면 때려치지. 라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이 있을까? 재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글쓰기가 아니면 어떤 일을 해도 가슴에 뚫린 싱크홀을 메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작가가 된다.
내게 무의미한 책들을 책장에서 뽑아 한곳에 모았다. 그 책들은 중고로 팔거나 도네이션 할 것이다.
사람의 취향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이 세계를 돌아가게 만든다. 내 책장에서 있을 자리를 잃은 책은 나와는 취향이 다른 누군가가 사랑해줄 것이다.
내 책도 어쩌면 누군가의 서재에서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 중고책으로 팔리거나 냄비 받침이 되거나, 찢어져 쓰레기통으로 갈지도.
나는 멍하니 앉아 책 한 권이 뽑혀나온 빈 공간을 바라본다. 폭 3센티미터의 공간.
그 공간을 채울 다른 책과, 그 책을 쓴 작가들을 상상한다. 작가와 출판사와 독자들을 생각한다.
내 책도 어느 작가의 책이 꽂혀 있던 3센티미터의 공간을 차지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뽑혀나온 책은 3센티미터의 아늑한 공간을 떠나 흘러간다.
헌책방의 무수한 책 더미에 눌린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누군가의 손에서 손으로 떠다니다가
종국엔 어딘가에서 바스라져 사라질 것이다.
책속에 담아둔 한 작가의 서사와 이 사회에 전하려했던 메시지는 한 때 그 책을 읽었던 누군가의 가슴에 남았을까.
1988년에 3천원을 주고 구입했던 "싸르트르와의 만남, 계약결혼" 이라는 책과
1990년에 3천7백원을 주고 구입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라는 책을 꺼냈다.
책을 샀던 당시엔 별 관심도 없었던 출판사의 이름을 본다.
펴낸이의 이름도 읽어본다. 옛날 책에는 지은이, 펴낸이, 이렇게 단촐하다. 요즘 책들은 일러스트와 디자이너, 마케팅 부서원들의 이름도 적혀있다.
책 한권을 만들고 세상에 내는 일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읽어보면서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지 생각 해본다.
지금은 사라진 출판사와 더 이상 후속작이 없는 작가의 이름을 보면서
피고지는 유한의 것들을 생각했다.
피고지도록 설계된 유한의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