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병욱 Nov 30. 2017

루이스 부르주아, 빌바오와 스파이더맨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4편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

우리 세대 사람들은 어릴 때 수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수퍼히어로(superheroes)에 열광했다. 다 큰 어른들도 거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막연하게 '엄청난 힘을 내가 가진다면...'이라고 생각하고, 허황된 꿈이라도 꾼다. 가장 열광적인 팬을 보유한 수퍼히어로는 미국의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와 디씨 코믹스(DC Comics)에서 창조한 수퍼맨(Superman), 배트맨(Batman), 원더우먼(Wonder Woman),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 헐크(Hulk), 토르(torr), 아이언맨(Iron Man) 등의 수퍼히어로들이 아닐까? 마블은 어벤저스(Avengers), DC는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란 이름으로 계속 히어로물을 만들고 있다. 2017년 12월 29일에는 CGV가 마블의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Avengers Infinity War)>를 2018년 4월 개봉한다며, 예고편을 공개했다.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를 영화화한 2017년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포스터

마블은 만화에 대한 인기를 바탕으로 수많은 수퍼히어로물을 영화로 개봉해 왔다. 그 중 스파이더맨(Spider-Man)은 마블 코믹스에서 1962년 창조한 히어로로, 방사능에 피폭된 거미에게 물려 뛰어난 지각능력 및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거미처럼 벽을 타고 오르며 거미줄을 쏘아 공중을 나르는 등 아이들의 환상을 채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블은 2002년 <이블 데드(Evil Dead)>로 공포영화의 대가가 된 샘 레이미(Sam Raimi)를 감독으로 하여 영화 <스파이더맨(Spider-Man)>을 제작하였고, 이어 2007년 스파이더맨 3부작을 완성하였으며, 2012영과 2014년에는 영화 <500일의 썸머>의 마크 웹(Marc Webb)을 감독으로 하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Amazing Spider-Man> 시리즈 1편과 2편을 각각 제작하기도 한다. 사실 수퍼히어로의 원조격은 DC 코믹스가 1930년대부터 내 놓은 수퍼맨과 배트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수퍼맨이나 배트맨과는 달리 스파이더맨은 어린 고등학생이 피터 파커(Peter Parker)가 주인공이다. 이전의 수퍼히어로들과는 달리 최초의 외톨이이자 인간적이며 서민적인 히어로인 셈이다. 내용상으로도 인간적인 번민, 방황, 고민과 때로는 분노를 터뜨리는 이전의 캐릭터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한편, 그리스 신화에 베짜는 솜씨가 뛰어난 아라크네(Arachne)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아테나 신은 아라크네의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고, 노파로 변하여 아라크네와 베짜는 대결을 벌인다. 아라크네가 베짜기 대결에서는 아테나 여신을 누르고 승리한다. 그러나, 아라크네가 짠 베의 태피스트리가 아테나의 아버지인 제우스가 님프인 유로파를 납치하기 위하여 흰소로 변한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알게된 아테나 여신은 분노하게 되고, 아라크네를 몸에서 계속 실을 만들어 뽑아내는 거미로 만드는 벌을 내린다. 이러한 신화는 여러 화가들이 그림으로 남긴 바 있는데, 그중 하나가 스페인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의 <실 잣는 사람들: 아라크네의 우화(The Spinner: The Fable of Arachne)>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바로크 시대 스페인의 화가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 미술에 종지부를 찍고 인상주의 및 사실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이런 슬픈 신화에도 불구하고 거미는 여덟개의 다리와 털, 거미줄을 쳐 놓고 다른 벌레를 잡아먹는 특성 등으로 인해 무섭고 징그러운 존재로 여겨져 왔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실잣는 사람들(아라크네의 우화)>

거미에 대한 이러한 인식때문에, 공포영화에서도 거미를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고, 그 대표적인 영화가 <타란툴라(Tarantula)>라는 영화이다. 타란툴라는 원래 남부 유럽의 타란트 특대거미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이탈리아의 타란로(Taranto)라는 도시로부터 유래된 이름이다. 이 거미는 한때 물리면 울며 뛰어다니다 거칠게 춤을 추는 병을 걸리게 한다고 믿어 왔으나, 이는 전혀 근거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타란툴라는 거미치고는 크기가 크고(다리를 펼치면 7~30cm 정도가 된다고 한다), 색깔도 검은색 또는 갈색으로 보기에 예쁘지 않다. 그 형상이 징그럽고 크기가 커서 이러한 공포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는 1955년 잭 아놀드 감독의 영화 <타란튤라(Tarantula)>의 포스터인데, 나름 당시에는 괴수영화로 50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에서만 1,090만 달러를 벌어 들였다고 한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이후 거대한 메뚜기나 파리 등등의 곤충 괴수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역시 하나가 대박이 나면 계속 거기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인가 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 막판에 거미를 공격하는 전투기 조종사로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가 출연했다는 사실이다. 지금 배우로서, 또 감독으로서 거장의 반열에 오른 그가 예전에는 이런 허술한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영화 <Tarantula>
영화 <타란튤라>에 출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우리가 본 맨 앞의 사진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Maman)>이다. 일본의 도쿄, 캐나다의 국립미술관 등 세계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이 사진은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의 것이다. 거미로부터 느껴지는 징그럽고 두려운 존재라는 인식을 바꾸어 거대하지만 몸에 알을 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작품의 제목도 <마망>, 즉 프랑스어로 '어머니'란 뜻이다. 이러한 거미를 어머니로 상징한 시도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그리스 신화에서는 베를 짜는 아라크네 여신을 상징할 뿐 아니라, 이로부터 운명을 짜는 태모(Great Mother)로서 여겨지기도 하고, 인디언들에게는 바람과 벼락, 해악으로부터 보호를 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로마에서는 통제력과 행운의 상징이기도 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거미는 어머니를 뜻하기도 했으니,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이 이해되기도 한다.


빌바오의 <마망>은 높이가 9.1m, 지름이 약 10m에 무게는 2.5톤에 이르는 거대한 청동 작품이다. 다리는 울퉁불퉁하게 근육처럼 힘차게 만들어져서 그 끝은 날까롭게 지표면을 뚫고들어갈 기세이다. 또한 몸통 아래쪽에서 보면 안이 보이게 투각된 알주머니가 표현되어 있고, 그 안에는 대리석으로 된 하얀 알 26개가 들어 있다. 이러한 구성으로 거미의 모성애를 표현한 것이 이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이 작품을 볼 수 있는데, 한남동에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설치되어 있다. 리움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강남 교보문고도 설계한 적이 있는 마리오 보타(Mario Botta), 파리의 카르티에 재단 건물로도 유명한 장 누벨(Jean Nouvel), 200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고 서울대학교 미술관을 설계하기도 한 바 있는 렘 쿨하스(Rem Koolhaas)로, 이 세계적인 건축가 3명이 참여한 것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마망>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공부한다. 그러다 그의 어머니의 죽음 이후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하게 되고, 1990년대부터 거미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태피스트리(tapistry)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부르주아에게 이러한 작업을 하게 한 것 같다. 그녀는 이미 1940년대말부터 거미와 관련한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조각작품으로 구현하게 된다. 이후 거미가 부르주아의 주된 작업 대상이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설치된 곳은 2000년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터빈 홀(turbine Hall)이며, 이후 여러 곳에 <마망>을 설치하다가 가장 최근에는 카타르 도하(Doha)의 카타르 국립 컨벤션 센터에 설치하기도 한다. 그녀도 이 작품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어머니를 생각하며 작업을 했다고 밝히기도 한다. 거미처럼 자신의 어머니도 똑똑하고, 거미가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거미를 잡아먹는 유익한 존재이듯이 자신의 어머니도 그러한 존재라는 의미라고 해석된다. 여기에는 어린 시절 자신의 영어교사가 아버지의 애인이었다는 트라우마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1982년에는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 여성 작가로는 최초로 회고전을 열기도 하고, 199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여성 작가로는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은 것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는 루이스 부르주아를 기념하여 2018년 1월에도 전시회 <Louise Bourgeois: An Unfolding Portrait>라는 전시회를 열기로 되어 있다. 

뉴욕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루이스 부르주아 전시안내

한편 스페인 빌바오(Bilbao)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1997년 10월 개관한다. 이 미술관은 미국의 솔로몬 R. 구겐하임(Solomon R. Guggenheim) 재단이 일찌기 1939년 뉴욕에서 문을 연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의 분관이다. 구겐하임 재단은 아랍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Abu Dhabi)에도 프랭크 게리의 설계로 미술관을 건설중이다.  


빌바오는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 만의 오래된 도시이고, 철광석 산업 덕분에 철강산업과 조선산업이 발달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스페인의 철강산업과 조선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됨에 따라 빌바오는 낙후된 도시로 전락한다. 그러던 중 도시의 재생을 위해  1980년대 후반 빼든 칼이 바로 도시 재개발 사업이고, 이에 따라 199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디자인의 공항, 지하철, 다리 등을 건설하게 된다. 이와 함께 구겐하임 미술관도 만들어지게 된다. 도시의 재개발을 위해서 시 당국은 여러 세계적인 건축가를 동원하게 된다. 영국의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는 빌바오의 지하철역 디자인을 하여 지하철 입구의 지붕(캐노피)을 유리와 철골 구조를 이용하여 유선형의 아름다운 역을 설계한다.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빌바오의 지하철역 입구 캐노피

노먼 포스터는 런던 최초의 친환경 마천루 빌딩인 30 세인트 메리 액스, 홍콩의 첵랍콕 공항(Chek Lap Kok Airport), 뉴욕의 허스트 타워(Hearst Tower), 런던 시청(London City Hall) 및 런던의 랜드마크인 거킨 빌딩(Gherkin Building)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친환경 하이테크 건축가로 이름이 높다. 그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를 1999년 수상한 바 있으며, 그의 설계회사인 포스터+파트너스(Foster+Partners)는 건축분야의 세계 최고의 혁신적인 회사 10에 선정된 바 있다. 그는 단순하고 합리적인 형태에 인간과 자연을 조화시키는 건축철학을 가지고 있다. 아래 사진의 허스트 빌딩을 보면, 원래 있던 건물을 활용하여 새로운 건물의 기초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 건축물은 1928년 건축된 6층 짜리 건물이었고, 노먼 포스터는 이를 철거하지 않고 보수에 의한 증축(증축이라고 하기엔 거대하긴 하다)한다. 게다가 이전의 건물에 비해 약 20%의 철강재료를 덜 사용했으며, 지하에는 빗물을 수집하여 난방이나 식물에 주는 물로 활용하는 등 약 25%의 에너지 절감을 이룬 건물로 평가된다. 이렇게 노먼 포스터의 건물을 보면,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며 환경을 생각하는 방식의 친환경적이며, 고도의 현대기술을 접목하는 건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뉴욕의 허스트 빌딩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상이라고 평가된다. 이 상을 수상한 건축가의 면면을 살펴 보면, 산 크리스토발 주거단지를 설계한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 일본 건축의 기초를 확립하고 후지TV 본사를 설계한  단게 겐조(Kenzo Tange), 파주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설계한 포르투갈의 알바로 시자(Alvaro Siza), 본네판텐 미술관을 설계한 신합리주의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 시애틀미술관을 설계한 미국의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 제주도의 본테박물관이나 원주의 뮤지엄 산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노출콘크리트를 많이 쓰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Tadao Ando), 파리의 퐁피두 센터로 스타덤에 올라 광화문의 KT 사옥을 설계한 렌조 피아노(Renzo Piano), 삼성미술관 리움을 설계한 장 누벨(Jean Nouvel),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이라크 출신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Jaha Hadid)를 비롯해 구겐하임 빌바오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에 이르기까지  금세기 최고의 건축가가 망라되어 있는데, 이웃 나라 일본은 6번에 걸쳐 7명이 수상한 바 있고, 중국도 2012년 왕슈(Wang Shu)가 수상한 바 있으니, 이제 우리 나라의 건축가도 이 상을 받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에게 주는 루이스 설리번이 직접 디자인한 프리츠커 청동 메달

또한 빌바오의 공항은 런던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로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설계하는데, 기둥이나 벽체를 최소화한 조개 모양의 건물로 탈바꿈한다. 그는 삼각형의 구조를 직선이나 곡선으로 영결시켜 입체적이고 상징적인 생물학적 조형미를 추구한 독창적인 건축을 지향하고 있으며, 더블린의 제임스 조이스 다리, 발렌시아 예술과학도시의 아고라, 밀워키 미술관 등을 설계한 바 있으며, 빌바오의 주비주리(Zubi Zuri) 다리도 설계한 바 있다.

빌바오 공항

하지만 그는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지방의 기차역 메디오파다나(Mediopadana)와 베네치아의 헌법의 다리(Costituzione) 및 스페인의 오비에도(Oviedo) 박람회 건물 등이 비가 새거나 계단이 무너지고,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 사고가 끊이지 않는 등의 문제로 보상소송을 받아 법정에 서는 등 끊임없는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이상적이고 독특한 설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일찌기 현대건축의 선구자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설계한 빌라 사보아(Villa Savoye)가 덥고 비가 새며 살기에 불편한 것 때문에 소송까지 벌어진 것을 연상하게 한다. 빌라 사보아는 요즘 포항 지진 때문에 안전성에 논란이 된 기둥이 건물을 떠받치는 필로티(Pilotis) 공법을 주택에 적용하여 르 코르뷔지에를 유명하게 만든 건물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1929)


빌바오를 지나는 강은 네르비온 강인데,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 강을 품고 건설된다. 이 건물의 설계는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nak Gehry)이다. 물론 당시에는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빌바오의 구겐하임 설계로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97년 미술관이 개관하게 되고, 이후 이 미술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미술관 자체라고 할 정도로 특색있고 유명한 건축이 된다. 외관은 티타늄 판자들을 조각조각 붙여서 햇빛을 반사시켜 눈부신 자태를 강조하고, 모양은 불규칙한 곡선을 잇거나 여러번 끊어내어 비정형의 건물을 완성한다. 게리는 선박을 설게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설계를 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건물에 대한 찬반 양론이 있었으나, 이후 빌바오를 상징하는 건물이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물론 티타늄이란 금속의 외관 덕분에 전 세계에서 손 꼽히는 에너지 비효율적인 건물이 되지만(이러한 프랭크 게리의 건축은 위의 노먼 포스터의 건축과 비교되는 면이 있다).

구겐하임 빌바오 전경

이와 함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성공에 일조한 것은 미술관의 컬렉션인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이브 클라인(Yves Klein), 윌렘 데 쿠닝(Willem de Kooning), 앤디 워홀(Andy Worhole) 등의 작품도 있겠지만(사실 이 미술관의 컬렉션이 다른 유명 미술관에 비해 풍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을 비롯해 제프 쿤스(Jeff Koons)의 <강아지(Puppy)>아 <튤립(Tulips)> 등의 현대 미술 설치 작품이 프랭크 게리의 미술관 건물과 더불어 빌바오의 번영에 크게 일조하였다고 생각된다.

빌바오 구겐하임에 설치된 제프 쿤스의 작품 <Puppy>

이러한 빌바오 재생 및 부흥의 과정은 빌바오의 산업구조와 사회의 변화 및 환경에 대한 치밀한 분석에 기반했기에 가능하였다. 기존의 쇠락한 공업 중심의 도시에서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전략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문화산업의 창조와 발전으로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었다. 이 계획은 대단한 성공으로 결과되었고, 이제 빌바오는 쾌적한 주거환경과 문화 및 관광산업의 발전으로 잃어버린 일자리는 비약적으로 늘고, 국제적인 문화도시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연간 빌바오로 향하는 관광객만 해도 10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우리의 도시들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제 거미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거미를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한 것이 바로 미국 마블(Marvel)사의 만화 <스파이더맨(Spiderman)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90년 마블 코믹스의 <스파이더맨> 표지

스파이더맨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마블 코믹스의 만화이자, 영화의 주인공인 수퍼히어로이다. 그는 1962년 최초로 만화(당시 제목은 스파이더맨이 아니고 <어메이징 판타지(Amazing Fantasy)>였다. 이 캐릭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스탠 리(Stan Lee)와 스티브 딧코(Steve Ditko)였다. 물론 이들은 다른 마블의 작가들과 함께 엑스맨, 헐크, 어벤저스,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의 캐릭터도 창조한 사람들이다.


스파이더맨은 방사능에 피폭된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갖게 되는데, 그중 가장 특징적인 것이 거미처럼 벽을 타고 오르고, 손목에서 거미줄을 쏘아 댄다. 그런데 원작 만화에서는 신체의 변형이 일어나기 전에도 피터 파커는 '웹 슈터(Web Shooter)'라는 거미줄 발사기를 손목에 착용하고 다닌다. 이러한 '웹 슈터'는 스파이더맨이 되기 전에 피터 파커가 개발한 것인데, 그렇다면 이러한 아이디어는 마블에서 창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블은 '웹 슈터'라고 불리는 거미줄 발사기와 관련한 특허소송을 겪게 된다.


1990년 스테판 킴블(Stephane Kimble)이라는 사람은, 손바닥으로부터 거미줄과 같은 폼(foam)을 발사하는 장갑이라는 장난감 특허를 받는다.  

스테판 킴블

이 특허는 미국 등록특허 No. 5,072,856이며, 발명의 명칭은 "거미줄 발사 장갑 장난감(Toy web-shooting glove)"이다. 이 특허는 1990년 5월 출원되어 1991년 12월 등록된다. 이 특허의 표지는 아래의 그림과 같다.

킴블의 특허 표지


그런데, 1997년 킴블은 마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마블이 계약을 위반했으며, 자신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소송이 진행중에 킴블과 마블은 합의에 이르는데, 그 내용은 킴블의 특허를 마블이 사용하며, 마블은 약 50만 달러의 일시금(lump sum)과 경상로열티(running royalty)로 연 매출의 3%를 킴블에게 지급하기로 2001년 합의한다. 여기에서 양 당사자간의 분쟁은 일단락된다. 그리고, 마블은 킴블의 특허와 유사한 장난감인 "웹 블라스터(Web Blaster)"를 만들어 판다. 아래의 사진이 마블이 판매한 "웹 블라스터"이다.

마블의 "웹 블라스터"

그런데 위의 2001년 합의에 따른 양 당사자간의 계약서에 계약의 종료시점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마블은 킴블의 특허권의 보호기간이 종료되자 마블에게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게 된다. 이에 킴블이 마블을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한다. 마블의 입장에서는 킴블의 특허가 만료되었으므로 당연히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반면, 킴블은 특허의 만료와 상관없이 계약상에 아이들이 해당 장난감을 구매하기를 원하는 한 계약이 계속된다고 되어 있으므로 로열티를 계속 지급하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1심의 판결에서는 마블이 승리하여 '특허의 보호기간이 만료된 경우에는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얻는다. 이에 불복한 킴블은 다시 제9 항소법원에 항소하고, 법원은 "킴블이 만일 특허권이 만료되면 로열티 지급도 중지된다는 것을 감안했다면 더 높은 비율의 로열티를 얻을 수도 있었겠다는 것은 인정된다. 하지만 이전의 브루로테(Brulotte) 판결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마블의 손을 들어 준다. 브루오테 판결의 핵심은 특허권에 대한 로열티는 특허권의 보호기간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킴블 v. 마블의 대법원 판결문

결국 이 소송은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가게 되고, 대법관들은 6-3으로 항소법원의 판단을 지지한다. 즉, 특허권이 만료된 후에도 로열티를 지급하도록 하는 계약은, 특허권이 소멸되면 이는 불특정의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에 속하게 된다는 특허법의 취지와 제도의 의의상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특허권이 소멸되면 로열티를 지급할 의무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 대법원의 판결문에서 재미있는 것은, 판결문에 1962년 마블이 발간한 <스파이더맨(Spider-Man)>의 문구를 인용한 것이다. 특허권자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그만큼 의무도 주어지는 것이라는 특허제도의 의미를 되새기는 말이었다. 이 인용문으로 이 글을 마친다.


"In this world, with great power there must also come-great responsibility"

"이 세계에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마블의 <Spider-Man>의 한 장면 -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작가의 이전글 앤디 워홀(Andy Worhol)과 코카콜라의 지식재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