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개를 키우게 될까 #1
"우리 강아지 키울까?" 나와 남편은 몇 번이고 서로에게 물었고, 매번 질문을 받은 사람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는다)"
강아지에 대한 그와 나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말하자면... 별거 없다. 남편은 여느 아이들처럼 어릴 적 부모님께 강아지를 키우게 해달라고 떼를 쓰다가 결국 키워보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친구들이 자동차 이름과 만화 캐릭터 이름을 섭렵할 때, 키우지도 않을 가상의 강아지들과 사랑에 빠져 강아지 백과사전을 사서 생김새와 이름, 특징을 달달 외웠더랬다. 언젠가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면 이름은 월넛, 피넛, 코코넛이라고 지어야지 (한 마리도 안 키워본 주제에 세 마리 이름을 지어놓음),라고 오래오래 생각해왔다. 아빠는 강아지 노래를 부르는 초등학생 딸에게 네가 대학 가면 허락하겠노라 약속하셨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내 생활 속에 강아지가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 둘에게 '강아지'는 한동안 금기어였는지도 모른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혹여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소원 때문이라면 그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학생 때부터 친구로 지내며 오랫동안 서로를 지켜보다가 서른 즈음 '그래, 이번 생은 너다!' 결혼을 했고, 보스턴에 살고 있다. 보스턴에서는 한강 공원에서 만큼이나 많은 강아지들을 마주친다. 주인의 허벅지를 가릴 정도로 큰 개부터, 솜뭉치가 굴러다니는 것 같은 작은 강아지까지,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개들을 보면서 나와 남편 둘 중 하나는 꼭 정신을 잃고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성토대회를 벌였다. 저만치 앞서가는 마음과는 달리 우리는 현실적으로 서로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를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일단 남편도, 나도 학생 신분이다. 남편은 학교에서 나오는 돈으로, 나는 한국에서 일을 하며 벌어놓은 돈으로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양가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아껴 써야 해!'라고 사이렌이 울리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한 몫한다. 둘이 살기에는 더없이 아늑하고 소중한 공간이지만, 아이를 키우기에도, 강아지를 키우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물론 강아지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은 키워보지도 않은 우리가 감히 판단한 것이 아니라 아파트 자체적으로 금지되어있다. 추진력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남편과 나인지라, 당장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강아지를 데려올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다행스럽다. 엑셀을 주야장천 밟을 준비가 되어 있는 초보 운전자에게 강력한 브레이크랄까.
어느덧 결혼한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내년 봄이면 우리 둘 다 학업을 마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다. 매일 오후 붉은 벽돌 건물이 즐비한 보스턴의 골목골목을 산책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은 내년에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것이다. 어디든 좋지만, 이왕이면 매일 교복처럼 입고 있는 패딩 점퍼를 입지 않아도 되는 따뜻한 지역이면 좋겠어. 창문이 크고 햇살이 잘 드는 넓은 집에 살 수 있다면 좋겠어. 한국 직항 비행기가 있는 공항이 멀지 않은 곳이면 좋겠어 같은 이야기.
"다음에 살게 될 집은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이 말은 내가 꺼내버린 것 같다. 마치 상황만 허락한다면 당장이라도 강아지를 키울 준비가 되어있는 양. 남편과 나는 계속 강아지 타령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앞으로 일 년 동안 각자 반려견을 맞이하는 것에 대한 자료수집과, 공부와, 고민을 해보고, 내년 졸업 즈음 다시 제대로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우리 둘 다 동의한 사항은 1) 강아지를 키울 경제적, 환경적 여건이 '객관적'으로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 (고정적 수입, 강아지 케어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 반려견과 함께 살아갈 공간 기타 등등), 2) 한국에서 유기견을 입양해서 데리고 올 것, 3) 일 년 동안 공부하고 고민해본 결과 둘 중 한 명이라도 자신이 없으면 키우지 않을 것.
기술과 미디어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남편과 나는 유튜브와 앱을 통해 귀한 정보를 빠르게 구하고 있다. 정보를 찾다 보니 강형욱과 설채현, 포인핸즈 앱, 인스타그램 (@koreanpawrescue, jindo_adopt, youumba_adopt 등등), 네이버 웹툰 <개를 낳았다>, 한국에서 유기견을 입양해 해외에서 키우고 있는 유튜버들 등등 유기견을 반려견으로 맞이하기에 앞서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고, 알아둬야 하는 정보를 알려주는 채널이 정말 많았다. 찬찬히 잘 봐 두면 나중에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우리에게도, 강아지에게도 좋을지 결정을 할 때 도움이 되겠지.
우리가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 결정에 다가가는 과정을 종종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