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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emeetskun May 13. 2021

나의 석사 이야기

물고기를 잡는 방법 vs. 물고기와 함께 헤엄치는 방법

두 번째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석사 학위를 모으는 것이 취미냐, 공부가 그렇게 좋으냐 등등 짓궂은 질문들을 종종 받고 있다. 말하자면 긴 이야기지만 생략하겠다.


첫 번째 석사는 학부 졸업 직후인 20대 초반에, 그리고 두 번째 석사는 30대 초반에 시작했다. 나의 석사 과정들은 서로 전공도, 학교도, 국가도, 그리고 나의 마음가짐도 많이 다르기에 apple to apple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게 될 때가 많다. 저번 주를 기점으로 두 번째 학기를 마치면서 그간 생각해온 것들을 정리해두려고 한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 vs. 함께 헤엄치는 재미를 알려주는 교육

첫 번째 석사과정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이다. 지금은 학교 커리큘럼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모든 수업들이 1) 수업 전에 리딩을 하고, 2) 수업시간에는 교수님의 수업이나  학생들의 발표를 듣고, 3) 수업 후에는 주로 수업 자료들을 읽고 그 내용을 요약하거나 나의 생각을 글로 쓰는 과제를 했다. 교수님들은 늘 바쁘셔서 수업시간 외에는 만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 논문 학기에는 지도교수님을 여러 차례 만날 수 있었지만, 워낙 인기가 많은 교수님이셔서 면담 일정을 잡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혼자 공부를 하다가 질문이 생기거나, 수업시간에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있거나, 졸업하면 뭐해 먹고살지 같은 고민들이 생겨도 교수님들께 답을 구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조교들은 그러한 빈틈을 메워주는 역할보다는 수업 운영 (출석체크, 과제 확인, 채점, 면담 일정 관리 등) 위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딱히 학교생활이나 공부와 관련된 조언을 구할 대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졸업 후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 역시 딱히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들을 찾지 못했다. 교수님들은 바쁘셨고, 조교님들은 박사 생활에 치여 자기 앞가림에 헉헉대고 있었고, 학교 커리어 센터는 채용 공지들을 올려주는 웹사이트를 제공해주는 정도였다. 학생들이 학교의 네임밸류에 힘입어 알아서 좋은 직장을 찾고 학교를 빛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첫 번째 석사는 별로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당시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만 뭐 하나 떠먹여 주는 법 없이 나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환경이었고, 종종 그래서 힘이 부친 것은 사실이다.


두 번째 석사는 작년 가을에 시작했다. 학교는 나에게 두 명의 어드바이저 (advisors)를 짝지어주었다. 한 분은 내가 고른 교수님, 다른 한 분은 나의 학교 생활, 행정업무, 기타 고민들을 상담할 수 있는 교직원이다. 지도교수님은 교육학 분야에서 이름만 대면 다들 아는 셀럽이시지만, 나의 소소한 이메일들에 답장을 보내주시는 내용이나 속도를 보면 '내 이메일을 기다리고 계셨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친절하고 신속하다. 교직원 어드바이저는 매달 안부를 물어오면서 중요한 학사일정들을 이메일로 리마인드 시켜주신다. 중국인인데 나중에 영주권을 취득하신 분이라 국제학생들의 여러 어려움을 잘 헤아려주신다는 점이 좋다. 교수님들은 수업시간에 놀라운 인맥을 동원하여 책이나 TV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초대하여 학생들과 소통할 기회를 주신다. 수업 전/중/후로 생기는 질문들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는 다양하다. 가장 빠른 방법은 교수님이나 조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는 것. 아니면 온라인 플랫폼에 질문을 올려두어도 금방 금방 답변이나 참고할만한 자료들이 올라온다. 학교에서는 하루에도 정말 많은 이벤트들이 일어난다. 수업 관련 이벤트뿐만 아니라 커리어, 정신건강 관리, equity and inclusion, 취미활동, 댄스파티 등등 그야말로 정보와 네트워킹 기회의 홍수다. 나는 마음만은 인싸이나 낯을 많이 가리고 딱히 체력이 엄청난 편도 아니기 때문에 너무(!) 많은 네트워킹 이벤트들이 이내 벅차고 부담스러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는 마음이 놓였다. 하버드의 스타일은 학생들에게 차고 넘치는 기회들을 줄 테니 각자 취향과 그릇에 맞게 취하라는 주의다. 나는 무리하지 않고 소화가 잘 될 만큼의 속도로 천천히 음미하고 있다. 내년에는 좀 더 무리해봐도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왜 나는 더 부지런하지 못한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될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이 커뮤니티의 중요한 일원임을 여러 방면으로 잊지 않게 물심양면 애써주는 학교에게 고맙다.


내가 준비된 만큼, 딱 그만큼 배울 수 있다

첫 번째 석사과정은 한국에서 밟게 되었다. 미국에서 학부 전공으로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면서, 항상 미국의 관점에서 국제 경제와 국가 간의 이해관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내용과 방향성이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점점 미국 중심의 경제관과 세계관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경계심이 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싶어 한국에서 국제학 석사를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균형 잡힌 시각을 얻게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배우는 국제학은 당연히 한국의 관점에서 배우게 될 것이라 은연중에 착각을 한 것 같다. 국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해석하는 능력은 어떤 나라에서 공부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부지런히 노력하고 경계하느냐에 달린 것이었다. 학교 안팎에서 개최된 콘퍼런스와 행사들을 부지런히 다니고, 수업에도 성실하게 참여했지만 늘 아쉬웠다. 나의 갈증을 해소해줄 만한 열매를 찾아 헤매던 시간이었다. 내 안에 명확한 기준이 서있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당시에 어디선가 '목적지가 없는 배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라는 글귀를 읽고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석사과정은 다시는 돌아올 일 없을 줄 알았던 미국에서 밟게 되었다. 교육대학원에서 기술혁신교육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많은 일이 있었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핵심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첫 번째 석사를 시작할 때와 두 번째 석사를 시작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나의 우선순위다. 첫 번째 석사과정을 돌이켜보면 그때는 공부도 중요했지만, 오랜만의 한국 생활과 새로운 친구들 등등 나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만드는 선택 하나하나의 기회비용이 자꾸만 커져갔고, 지금 나의 최우선 순위는 제한된 시간 동안 앞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지식과 도구들을 야무지게 모으는 것이다. 그 외 다른 어떤 것에도 크게 마음 쓰지 않는다. 어쩌다 그 과정에서 친구를 얻게 된다면 그저 감사한 일이다. 첫 번째 석사과정은 드문드문 달려있는 열매들을 힘겹게 수확하는 과정이었다면, 두 번째 석사과정은 열매들이 억수같이 쏟아져서 도저히 나의 그릇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어 곤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알맞은 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돌아보면 '지금이야!'라고 덤벼든 적보다는 '정말 지금이 맞을까?' 긴가민가하면서 어정쩡하게 시작한 것이 훨씬 많다. 꿈의 직장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언니가 해준 이야기가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살다 보면 100% 준비된 상태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능력껏 준비할 수 있는 만큼을 하고, 나머지는 용기로 채워야 한다고. 그때의 그 언니 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니 참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새로운 도전은 두렵고, 막막하고, 확신이 서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용기를 내보기로 결정한 그때가 바로 그 일을 하기에 알맞은 때라고 생각한다. 두렵고 막막한 것이 뻔하고 지루한 것보다 훨씬 견딜만하다. 나에게는 몇 차례의 이직이 그랬고, 두 번째 석사 과정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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