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emeetskun May 27. 2021

이런 피드백은 난생처음

수업 기말 과제에 대한 신박한 피드백 방식들

봄학기가 끝나고 여유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핸드폰 화면이 반짝 빛났다. 기말 과제들이 채점 완료되었으니 점수와 피드백을 확인하라는 알림 메시지였다. 


이번 학기에 이수한 수업들은 모두 그룹 프로젝트 기반이다. A 수업은 싱가포르 스타트업과 파트너십을 맺어 그 회사의 모바일 교육 상품의 사용자 편의성을 평가하는 수업이었다. 사용자 편의성 측정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과정에서 제출한 여러 과제들을 기반으로 최종 프레젠테이션과 리포트를 작성했다. 프레젠테이션은 수업시간에 다른 학생들과 교수님 앞에서 한 번, 싱가포르 스타트업 경영진들 앞에서 한 번, 총 두 번 진행하였고, 그때 받은 피드백을 최종 리포트에 반영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B 수업은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팀을 꾸려 보편적 학습설계 (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 요소들을 녹여낸 교육 상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수업시간에는 UDL에 대해 배우고, 수업 외 그룹 미팅 시간에는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교육상품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는 난독증이 있는 학생들도 STEM 과목들을 재밌게 배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게임을 개발하기로 했다. 최종 과제로는 우리 프로젝트의 기반이 된 연구, 프로젝트 설명, 그리고 프로토타입을 제출했다. 


A 수업: 교육상품 개발을 위한 형성평가 

이 수업은 최종 과제 중에 각각의 팀원이 맡은 부분을 명시하여 개별적으로 성적을 받을지, 아니면 모든 팀원이 같은 성적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 팀은 프로젝트 내내 각자 맡은 부분을 1차로 작성하고 나면 다른 팀원들이 꼼꼼히 읽고 피드백을 남기고, 그 후에는 팀원들이 모두 모여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훑으며 최종 점검하는 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모든 팀원이 최종 리포트의 모든 부분에 관여를 했다고 판단하여 모두 같은 성적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 수업 학기말 프로젝트에 대한 피드백은 내가 여태까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받아본 것들과 그 방식은 유사했으나 (제출한 리포트 위에 직접 기재된 피드백을 돌려받는 형식), 디테일 측면에서는 크게 달랐다. 서른 장에 달하는 최종 리포트를 교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보시고 피드백 & 추가적인 질문들을 기재해두신 걸 읽으면서 내심 놀랐다. 예전의 나는 과제를 돌려받으면 점수부터 확인하고, 피드백은 어차피 'Good job!' '이 부분이 미흡함' 등등 크게 의미 있을 리가 없으니 제대로 읽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업의 피드백은 아주 상세해서 읽는 내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느낌이었다.


최종 과제 목차 페이지

최종 리포트 전반에 대한 피드백으로 시작하여 위 목차의 거의 모든 항목에 피드백이 제공되었다. 특히 데이터 수집 부분에서 한계를 느꼈던 점들을 기재해놓은 부분에는 우리 팀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볼 만한 질문들, 그리고 교수님의 개인적인 제안사항을 알려주셔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 내가 수행한 과제를 이토록 애정을 갖고 읽어주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피드백을 통해 또 한 번 배움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나는 아마도 교육자로서,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연구자로서 자신감과 긍지를 갖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B 수업: 보편적 학습설계 (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최종 과제 목차 페이지

이 수업은 최종 과제로 PPT 파일을 제출했다. PPT 파일 안에 연구 내용은 텍스트 형태로, 프로토 타입은 이미지와 영상 위주로 작성하였고, 실제로 작동해볼 수 있는 프로토타입 링크를 삽입했다.

초상권은 중요하니까

교수님과 조교들이 이 파일을 보고, 읽고,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져본 이후에 피드백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는데, 그 방식이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일단 피드백이 텍스트 형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상 링크 형태로 제공되었다. '음? 이게 뭐지?' 하고 링크를 클릭해보고 깜짝 놀랐다. 교수님들이 우리의 최종 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각자가 느낀 점, 우리 프로젝트에서 뛰어난 부분과 아쉬운 부분, 그리고 앞으로 더 고민해봄직한 화두들이 주된 대화 내용이었다. 영상은 6분에 달했고,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짚어가며 피드백을 주신 덕분에 지난 몇 달간의 프로젝트 과정을 돌아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교수님들의 표정과 제스처를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리얼하게 프로젝트를 리뷰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피드백 방식은 '보편적 학습설계'라는 수업 취지에 부합한다. 다양한 방식의 참여(engagement), 표상 (representation), 행동과 표현 수단 (action & expression)을 피드백 제공 방식에 녹여냄으로써 학생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피드백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방식이 텍스트 형태에 국한되지 않게 된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학교 최종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영상 형식으로, 그것도 교수님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듯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전달해주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굉장히 예상 밖이었다. 끝까지 나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깨준 이번 학기 수업들이 정말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석사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