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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 Jan 13. 2022

분홍색은 말이 없으니, 당신을 통해 말하고 들어요.

오해 받는 취향에 관하여

일곱 살 때까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홍으로 치장해도 “공주네. 아주 핑크 공주야.”하며 예쁨 받았다. 그렇지만 자라면 자랄수록 점점 더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몇 살인데 아직도 핑크를 좋아해.”
“애도 아니고, 이제 졸업할 때가 되지 않았나?”,
“으, 난 핑크 너무 싫어. 아기 같고 유치해.”
“분홍색은 숏컷이랑 바지와는 안 어울리지.”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분홍을 받아달라고,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한 적 없었다. 그런데도 멋대로 환영받던 취향은 또 마음대로 내쫓겼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분홍색에 관해 고정된 일반적인 이미지나 사회적 시선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것과는 별개로 누군가 ‘좋아하는’ 존재를 그런 취급을 하는 건 정말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분홍은 귀가 없으니 듣지도 못하고 모르겠지만, 강경히 질색하는 모습에 상처를 받았고 실은 이렇게 대꾸하고 싶었다.


“그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싫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어!”



하지만 애초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런 말을 안 했을 것 같아서 굳이 하지 않았다. 해봤자 통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포기한 채 별 이야기를 다 듣다 보니 내성이 생겨서 어느 순간부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었다. 그렇게 누가 뭐라 하든 분홍과 함께하면서 사랑을 이어갔고, 분홍은 보통의 인식과는 다른 의미로 내 마음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일상의 보물찾기 그리고 작은 성취   

2000년대 우리나라에선 여자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고선 물건이나 장소에 흔히 사용하지 않는 색이라 분홍색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찾는 데 오랜 시간을 공들이면 만날 수 있는 경우가 분명 많았고 그건 하나하나의 작은 성취를 안겨 줬다.

여덟 살 무렵 겨울 모자를 사러 간 적이 있다. 어떠한 꾸밈도 없이 오로지 핑크색으로만 이루어진 모자를 원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건 캐릭터나 레이스, 진주로 장식이 가득했다. 그렇게 핑크 모자를 찾아 몇 바퀴 돈 끝에 여성복 매장에서 화사한 분홍빛 앙고라 모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을 때, 그 기쁨이란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은 그 열정을 따라 같이 돌아다녀주시던 부모님께 감사하다.)

어릴 때 생존 배낭에 제일 먼저 넣었던 물건 중 하나인 핑크 앙고라 모자. 문제는 모자가 너무 커서 오래 묵혀뒀다가 지금에서야 쓰고 있다.

그 밖에도, 안경, 휴대폰, 인형, 이불 등등 방 안에서 무작위로 누군가 분홍색 물건을 가리키며 사연을 말해보라 하면 어느 시기에 샀는지부터 어떻게 만났는지까지 쫙 읊을 수 있다. 그들을 곰곰 바라볼 때 뿌듯하다. 하나하나 공들여 수집해온 유일한 보물들이다.


늘 그대로인 것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때가 있었다. 눈을 맞추며 미소 짓던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것, 마룻바닥을 저 넓은 들판 인양 뛰어다니던 병아리와 메추리가 떠나고, 마네킹에 걸려있던 드레스를 사려고 코 묻은 돈을 모았는데 그 매장이 사라지고. 기타 등등. 그런데 그 모든 것과 다르게 분홍색은 감추는 것도 없이 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비쳤다. 내가 떠나지 않는 한 분홍색도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바뀌어가는 시간과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곁에 있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혼자 비 오는 어둔 밤거리를 지나 뛰어온 적이 있다. 하필이면 우산은 없었고, 그날따라 친구들은 다 학원에 가거나 먼저 갔었고, 가족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직 집에 오지 않은 사람과 이미 잠든 사람 사이 불은 꺼져 있었고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 거실을 지나 방에 들어갔을 때 고개를 드니 분홍색 방이 환하게 맞아준 기억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결선

중학생 때 일이다. 학교에 갔는데 다른 반 친구가 와있었다. 줄 게 있다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좋아하던 캐릭터가 조그맣게 한쪽에 그려진 연분홍색 꼬리빗이었다. “어제 시내에 나갔는데 너 생각나서 사 왔어.” 시크하게 말한 다음 아침 조례를 하러 간다며 유유히 떠났다. 누군가 분홍을 보고 내 생각이 나서 선물을 사 왔다는 건 처음 있는 일이어서, 벌써 10년 가까이 되지만 여전히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감동인 순간이었다.

대학에 와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옆 옆집에 사는 친구가 맨날 방에 놀러 왔는데, (천장과 바닥 빼고 온통 핑크색이었다.) 오면서도 매일 “분홍 싫어! 아주 싫어! ”를 온몸으로 외쳤다. 그럼 나는 또, “싫음 나가든가. 왜 자꾸 와?” 맞받아 치며 신경전을 펼쳤다. 지금 생각해도 왜 핑크 세상에 와서 그랬는지는 의문이다. (분홍색 물건들이 살아 움직였으면 그 친구는 아마 다시는 문 밖으로 못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던 친구가 어느 날 또 아무렇지 않게 놀러 와 돌연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나 이제 분홍이 좋아진 것 같아. 마음도 편안해지고 따뜻해지고 심신이 안정된달까..”

침대에 누워 있는 친구의 사진

그래서일까. 분홍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내가 분홍과 함께할 때 또 옆에 있던 이들이니. 그리고 그들은 분홍을 보고 내가 떠오른다고 늘 말해준다. 그렇게 하나씩 건네준 분홍빛 선물은 여기저기 곳곳에 스며 있다.



정말로 분홍색은 내게 이런 이름들로 마음에 존재한다. 공주도, 유치함도, 여자 아이도 여기엔 없다. 핑크색 옷에 프릴이 붙고, 핑크색 장난감에 반짝반짝 알록달록 하트 보석이 붙고, ‘이건 공주 거네.’, ‘이건 여자아이에게 잘 어울리는 거네.’라고 하는 건 분홍색이 부탁한 것도, 원한 것도 아니다. 분홍색은 그저 하얀색에 빨강이 조금 섞인 색일 뿐이다. 같은 장소, 같은 사람, 같은 이야기도 각자에겐 다른 의미로 기억되듯이 분홍도, 그밖에 다른 취향도 그렇다는 걸 존중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 나 또한 무언가에 관해 아무리 압도적인 이미지가 있어도 어떤 이에겐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는 걸 한편으로 항상 생각해두고 있으면 좋겠다.   


p.s. 사실 일상에서 여자 아이나 공주가 들어가지 않은 핑크는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싶지만, 정육점 불빛, 고무장갑, 해 질 녘 하늘, 사람의 손톱과 입술, 8호선 색상 등이 있다. 더 찾아보면 더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정관념 때문에 알아차리기 어려울 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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