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나무 May 22. 2024

발리에서 OO을 채우고 돌아왔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마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을 뒤로하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딸이 마음을 잡고 안정적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엄마는 늘 ‘여행 다녀오면 뭐가 달라지냐’ 구박하지만 나는 안다, 달라진 내 안의 무언가를. 마음속에 품었던 두 개의 소망 때문인지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단순한 여행자를 넘어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지내다 돌아올 수 있었다. '건강하게 지내다 돌아오기, 새로운 도전 해보기'. 목표가 이따금 무거운 숙제처럼 느껴지기는 해도 무언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무언가를 하겠다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곤 하니까 말이다. 덕분에 서핑을 하고, 린자니산을 오르고, 다이빙을 하고, 요가를 할 수 있었고 이것들은 내게 또 다른 에너지를 주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장점만 보이듯 여행을 사랑하는 이는 여행이 좋은 점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하면 그 기간 동안 루틴이 깨지는 것이 싫다 말한 이를 만난 적이 있다. 매일 꾸준히 지켜나가는 루틴이 있고, 그것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행은 새로운 루틴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퇴사를 하고 세부로 여행을 갔을 때, 수면일지를 한 달간 적어보았다. 몇 시에 잠들었고, 몇 시에 일어났는지, 일어났을 때 기분 또는 몸 상태가 5점 만점에 몇 점인지.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러하듯 나 또한 수면부족, 그로 인한 편두통에 시달린 지 오래다. 때문에 건강한 나만의 수면패턴을 찾고 싶었다. 30일간의 기록이 모이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언제 잠들어도 7시간 후면 눈이 저절로 떠진다는 것과 같은 시간을 자더라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을 때 피곤함을 덜 느꼈다. 그러니 늘 피곤했을 수밖에. 오랫동안 밤 12시-1시 또는 그보다 늦게 잠들었고, 7시간 보다 적게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무엇보다 이른 아침이 주는 에너지가 좋았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소음 덕분에 새들의 노랫소리가 또렷하게 들렸고, 떠오르는 해의 움직임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는 식물의 잎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따듯하고도 향긋한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아직 깨어나지 않은 몸과 마음을 그대로 관찰하는 것도 좋았다. '아, 내가 숨을 제대로 쉬고 있구나' 하는 느낌. 그간 커피를 에너지가 필요한 순간 전투식량처럼 마셔왔구나 싶기도 했다. 그 이후, 시기마다 조금씩 조정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유지 중이다.


여행지에서 느꼈던 아침의 풍요로움을 한국에서도 만나려고 노력 중이다.



또 여행 중에도 지켜 나가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때면 ‘이것이 내게 정말 중요하구나!’ 싶어 그 루틴도, 지켜나가는 나도 기특하게 느껴진다. 발리를 여행하는 동안 꾸준히 달리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침 산책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일주일회고'를 꾸준히 해나갔다. 어떤 날은 숙소 침대에 누워, 어느 날은 커피 향 가득한 카페에서. 일주일회고는 작년부터 시작한 나만의 리추얼로 일주일간 있었던 일, 나의 감정변화,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 등을 찬찬히 생각해 보는 작업이다. 한 해가 지날수록 시간가속을 몸소 느끼며, 일상의 소소함을 잘 붙잡아 두어야겠다 싶어 시작한 것인데 한 주의 나의 삶을 꼭꼭 씹어보는 맛이 다채롭다. 자리를 잡고 앉아 사진첩도 들여보고, 이곳저곳에 써놓은 메모도 들춰보며 이 각도, 저 각도에서 내 삶을 바라보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날 때가 많은데, 여행 중에도 빠트리지 않고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이것이 내 생활의 중요한 한 구석이 되었구나 싶었다.


하늘은 늘 우리에게 감동을 전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언가를 얻는 경험은 입가에서 행복이 터져 나오게 한다. 농익은 복숭아를 베어 물었을 때 과즙이 주르륵 흐르듯. 발리 여행에서 하늘이 주는 감동은 늘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사실 모든 여행에서 하늘은 늘 감동이었지만, 1분이라도 더 자려고 이불에 누워있던 평소와 달리 여행지에서는 떠오르는 해와 저무는 해를 만나려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을 떤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아침과 저녁뿐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서 자주, 오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짙음에 마음도 파래지는 하늘, 활활 불타는 듯한 주홍빛의 하늘, 바라보는 순간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보랏빛 하늘. 매일 다른 빛깔을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가다 문득 여행이 좋은 이유는 하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실 하늘은 어디에나 있는데... 그렇다면 하늘을 바라보려 노력하는 매일의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의 삶은 높은 건물에 눈이 가려져 하늘을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들이 많기에. 그래서 지난 4월, 지인들과 함께 한 달 동안 매일매일 하늘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하늘, 하늘, 행복>이란 리추얼을 함께 했다. 아주 잠깐이라도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의 변화를 눈치채는 일이었고, '오늘 하루 잘 지내보자' 또는 '오늘 하루 수고했다'며 내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지만, 그 자리는 전과는 조금 다르다. 돌아오는 길은 늘 아쉽지만, 채워 온 것들이 있기 때문에 슬프지는 않다. 언제 또다시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발리에서 채운 OO들 덕분에 당분간은 마음이 든든할 것 같다.




그간 <발리에서 OO을 해보았습니다.>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불어 발리에서 담아 온 6개의 풍경이 담긴

엽서 세트를 판매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어요 :)

>>> 엽서구입신청 https://bit.ly/greenBALI





이전 11화 발리에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