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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보름달 Feb 12. 2024

큰며느리의 무게

설날을 보내면서


우리할머니는 어릴적 나에게 '큰아들'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자식을 하나 아니면 둘 낳는 것도 많다는 세대에서 큰아들에게 결혼하지 않으리란 쉽지 않다. 나또한 남매 관계를 지닌 남자에게 결혼하여 큰아들에게 결혼했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큰아들'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말했던 건 바로 큰며느리의 역할이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명절이면 '큰며느리'가 하는 역할은 매우 많다.


우리 엄마는 큰아들에게 결혼해와서 30여년 넘게 명절을 보냈다. 어린시절부터 엄마의 명절 노동을 보면서 커온 나는 명절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다. 큰며느리라는 이유로 추운 설날에는 우리집에서 명절을 보내곤 했는데, 다른 친척의 모습들이 정말 별로였다. 매끼니를 우리집에서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명절음식을 제대로 해오지도 않았고, 명절 음식비용조차 어느정도 부담하지 않았다. 명절에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우리집 부담이었다. 물론 엄마도 이에 만족하면 상관없었겠지만, 항상 엄마도 불만이었다. 모든 가족들이 함께 준비하고 보내면서 명절을 지내는 것이 아닌, 본인혼자 노동을 하는 것이 뭐 그리 마음에 드는 일이었으랴.


결혼하고나서 짝꿍(남편)의 집에 가보니, 이 가족에서도 큰어머니의 역할이 매우 컸다. 좁은 큰어머니집에서 차례를 올리고 명절음식을 먹었는데, 큰어머니가 모든 걸 혼자 다 준비하셨다. 이후 큰어머니께서 아프셔서 명절을 치르기 애매하니 차례며 명절에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또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큰어머니가 명절 전에 돌아가셨는데, 가족들은 차례며 명절음식을 하기보단 절에서 차례지내기를 대신했다고 한다.


명절은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척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의미가 큰 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함께 모여 명절을 보낼 때 희생을 해야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등 일을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과거에 이 역할은 큰며느리가 대부분 맡아서 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도 큰며느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다.


나는 과거 큰며느리의 삶을 살지 않지만, 이러한 현실이 유지된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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