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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크라 Nov 17. 2021

[알쓰장] 환절기 등산복 레이어링 시스템

두께보다 겹쳐 입기가 중요하다

한겨레신문 주말판 ESC 연재글입니다.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1019095.html


빛깔 고운 단풍이 산행을 유혹하는 계절이다. 등산로에서는 곱고 다양한 단풍 색깔만큼이나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약간 시들해졌지만 한때는 중년들의 공항 패션이라고까지 불렸던 등산 자켓은 여전히 등산 동호인들의 필수품이다. 철지난 공항 패션이라고 비아냥받기는 했지만 사실 등산 자켓은 패션보다는 ‘장비’에 속하는 의류이다. 자신의 안전을 담보해주는 장비이므로 제대로 알고 제대로 입어야 한다.

레이어링 시스템의 구조와 역할

레이어링 시스템

등산 의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레이어링 시스템(Layering System)이라는 등산 의류 착장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레이어링 시스템의 핵심 개념은 여러 겹의 얇은 옷을 겹쳐 입는 것이 한 두벌의 두꺼운 옷을 입는 것보다 보온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레이어링 시스템의 장점은 단지 체온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아웃도어 활동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변화무쌍한 날씨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추위를 느끼기 전에 웃옷을 입고, 땀 흘리기 전에 웃옷을 벗는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다.


아웃도어 의류의 레이어링 시스템은 보통 세 겹으로 분류하며, 각 레이어는 자기 역할이 있다. 가장 안쪽에 입게 되는 베이스 레이어는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보온 내의인데 땀을 빠르게 건조시키는 게 속건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면(cotto) 종류는 피하는 게 좋다. 보온이 필요한 계절에는 전통적으로 울(wool) 제품을 권장하며, 피부 접촉감을 좋게 가공한 합성섬유 내의를 입기도 한다. 한겨울이라고 해도 두꺼운 내의는 활동성을 떨어뜨리고, 건조도 잘 되지 않으므로 얇은 옷이 좋다.

반팔 셔츠라도 한겹 더 입는 게 보온에 큰 도움이 된다.

내의와 바깥 층의 중간인 미드 레이어에는 어느 정도 보온 기능을 가진 셔츠와 자켓을 입는다. 추운 겨울에는 플리스(Fleece) 소재의 셔츠와 자켓을 권장하며, 선선한 가을 날씨에도 긴팔 셔츠나 자켓 중 하나만이라도 보온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게 바람직하다. 어떤 가을날은 한겨울보다 추운 경우를 산에서는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드 레이어 의류 역시 속건성이 필요하다.


레이어링 시스템에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바깥에 입게 되는 아우터 레이어가 제일 중요하다. 아우터 레이어는 바람과 비, 눈을 직접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따뜻한 미드 레이어를 입었다고 해도 바람을 막지 못하면 급격하게 체온을 뺏기게 되고, 비에 젖는다면 보온 자켓은 무용지물이 된다.


하드 쉘 자켓의 역할

아우터 레이어는 보통 방수 투습 기능을 가진 하드 쉘(Hard Shell) 자켓을 권장한다. 하드 쉘 자켓은 원단 특성상 뛰어난 방풍 기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동네 뒷산을 가면 모를까 산에서 비와 바람은 언제라도 만날 수 있으므로 추운 계절이 아니더라도 하드 쉘 자켓은 꼭 필요하다. 야영을 하지 않는다면 두꺼운 다운 자켓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산행 중에 입기에는 너무 둔하고 무겁기 때문이다. 무거운 다운 자켓보다는 가벼운 보온 자켓과 하드 쉘 자켓을 겹쳐 입는 게 산행에 훨씬 도움이 된다.

바람이 강한 능선에서는 하드 쉘 자켓의 방풍 기능이 중요하다.


하드 쉘이라는 명칭은 원단 표면의 물성이 뻣뻣하기 때문에 부르는 이름인데 섬유 기술이 발전한 최근에는 하드 쉘 자켓이지만 몸 동작이 불편하지 않은 부드러운 하드 쉘 자켓이 많이 나와 있다. 부드러운 하드 쉘 자켓은 말아서 수납하기도 편하다.


가격과 비례하지 않는 성능

모든 장비가 그렇듯이 제품 가격과 성능은 항상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등산 의류가 지나치게 고가라는 지적을 받는데 그것은 대부분 하드 쉘 자켓류이다. 하드 쉘 자켓은 성능이 천차만별이고, 산행 수준에 따라 기대하는 성능 수준이 매우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드 쉘 자켓을 고를 때는 특히 제품의 사양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곧 높은 사양을 고집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즐기는 산행이 어느 정도의 난이도인지, 악천후를 만날 가능성은 얼마큼인지를 고려하여 적정 수준의 사양을 선택한다. 어느 수준 이상의 고기능성부터는 제품 가격이 기하급수로 높아질 뿐 실제 사용했을 때 기능 차이를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수 성능과 투습 성능, 만능이 아니다.

아우터 레이어의 하드 쉘 자켓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수 성능이다. 방수 성능은 내수압으로 표기하는데 단위 면적당 일정의 수압을 가했을 때 견딜 수 있는 수압 수치를 나타낸다. 바람이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리는 가랑비에는 500mm, 강한 비에는 1,500mm 이상의 내수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자켓의 원단 기준이며, 실제 여러 모양으로 재단한 원단을 봉제해서 제작한 자켓의 내수압은 보다 높아야 한다. 아웃도어 환경에서 적합한 레인 자켓의 내수압은 보통 5,000mm 이상을 권장하며, 10,000mm 이상임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마케팅적인 측면이 강하다. 해외 원정 등 악천후 환경에서 장기 산행을 하지 않을 거라면 5,000mm에서 7,000mm 정도의 내수압이면 적절한 방수 성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우터 레이어의 자켓에서 방수 성능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투습 성능이다. 하드 쉘 자켓의 투습성은 원단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습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성능을 말하는데 보통 MVTR(Moisture Vapor Transmission Rate) 단위로 측정한다. 


MVTR은 하루 24시간 동안 1m2의 면적에서 배출하는 습기(물)의 무게를 측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7,000g/m2/Day 수준의 투습 성능이라면 1평방미터 당 하루에 7kg의 습기를 배출한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가벼운 등산이나 당일 하이킹에서는 쾌적한 산행을 즐기기에 충분한 성능이다. 악천후가 예상되는 지역을 2박3일 이상 장기 산행에 나선다면 20,000g/m2 /Day 이상의 전문가급 자켓이 필요할 수 있지만 이 정도의 산행을 즐긴다면 이미 전문 산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높은 투습 성능이라고 해도 오르막길에서 흘린 땀을 방출하지 못해 내부의 습기가 채 마르지 않은 채 자켓 내부에서 얼어붙는 경우도 흔하다. 자켓 겨드랑이에 통기구(벤틸레이션)가 있다면 가끔 개방하여 내부 습기를 환기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다.


제품 사양을 살펴볼 때 유의할 점은 위와 같은 측정치는 실험실에서의 결과이며, 실제 산행에서는 원단의 오염 정도, 외부 습도, 바람의 세기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실 가벼운 등산이나 당일 하이킹이라면 투습 성능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겨울철 산행이 아니라면 투습 성능은 ‘안전’보다는 ‘쾌적함’ 측면에서 요구되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한겨울보다 계절이 바뀌는 요즘이 오히려 레이어링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크고, 지역과 지형에 따라 기온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추운 겨울에는 보온을 위해 충분하게 옷을 입거나 준비해가겠지만 따뜻한 한낮의 날씨만을 떠올리게 되는 요즘같은 날씨에는 자칫 준비없이 혹독한 겨울 날씨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여름을 제외한다면 값비싼 고기능성 하드 쉘 자켓은 아니더라도 가벼운 방풍 방수 자켓 하나쯤은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바람이 없는 곳에서는 가벼운 보온 자켓이나 셔츠만으로 산행을 하다가 바람이 강한 능선에서는 자켓을 꺼내 입어 체온을 유지하는 게 안전하다. 적절한 레이어링 시스템으로 착장하되 부지런함도 함께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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