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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닭 Jan 19. 2019

유학생에게 가장 좋은 서비스는 뭘까?

커피 한 잔으로 전해진 소속감

  지하철역을 향해 내려가면 자연스레 기다란 지하도와 연결된다. 지하도에는 양 가에 작은 가게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옷을 파는 가게, 모자와 장갑을 파는 가게, 안경을 파는 가게 등 다양하다. 전부 여자 것이지만 가격이 저렴하다.

  모자 파는 곳과 옷가지 파는 가게 사이 사이에는 작은 카페들이 숨어 있다. 지하도를 내려가서 걷다 보면 첫 번째로 보이는 카페가 있다. 작고 투명한 상자에 들어간 듯 좁은 가게 안에서 젊은 청년이 열심히 커피를 만든다. 아침마다 그 카페 앞에 유독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매일 분주한 풍경을 보니 맛이 그렇게 좋나 궁금해졌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메리카노 한 잔 사서 돌아왔다. 한 입 마셔보니 맛있었다. 러시아에 와서 마셔 본 아메리카노 중 제일 맛있다. 다른 곳들은 써서 우유를 넣어 마셔야 하는데 여기는 딱 좋다. 그뿐인가? 가격도 저렴하다. 자연스레 자주 가게 된다. 하지만 지난 2주인가 3주 동안 못 갔다. 지나갈 때마다 문이 닫혀 있어서 아쉬웠다.

  오늘은 영하 4도로 따뜻한 날이지만 눈이 와서 체감상 추웠다. 따뜻한 커피가 간절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슬쩍 봤더니 문이 열려 있었다. 가지고 있는 동전도 처분할 겸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점원은 나를 알아봤다. 항상 ‘어떤 컵에 줄까?’ 물어보는데 오늘은 작은 컵 맞냐고 먼저 알아봐 주셨다. 설탕 필요하냐고 하시길래 아니라고 말했다. 커피를 만들면서 나보고 중국인이냐고 물어보셨다.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 사느냐고 하셨는데…. 내가 말을 잘 못 하니까 어떻게 알고 서울이냐고 물어보셨다. 나도 반가워서 대화를 이어갔다.

  아메리카노는 금방 나온다. 갈아진 커피 원두를 템퍼링 한 후 기계로 추출한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니까.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길지 않았다. 쥐어 짜낸 서툰 러시아어로 중국 가봤냐고 겨우 물어봤을 뿐. 듣고 금방 잊어버렸지만, 중국뿐만 아니라 아랍, 유럽이었나 여러 나라를 가봤다고 했다. 한국은 안 가봤지만 가보고 싶다고 한다.

  커피가 나왔는지 일회용 커피 컵에 휴지로 깔끔하게 감싸서 나에게 건네줬다. 그전에는 그냥 줬는데 오늘은 작은 센스가 돋보였다. 서비스에 감동한 나에게 점원이 싸커 어쩌고 뭐라 말을 걸으셨다. 마침 한국 얘기도 했겠다, 나는 축구인 줄 알고 ‘한국에 축구팀이 없다는 말인가?’ 내 마음대로 알아들었지만, 자신이 없어서 ‘네’라고 말해버렸다. 기다리라고 해서 ‘뭐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제대로 이해를 한 건지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잔뜩 긴장한 나에게 빨대와 일회용 설탕 서너 개를 준다.

  대화를 다시 떠올려보니 커피에 설탕 없다고 ‘설탕 줄까?’ 하고 물어보신 거였다. 러시아어로 ‘싸하르’라고 말한다. 그 순간 왜 나는 영어로 생각을 했을까. 점원이 영어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러시아어를 영어로 받아들였다. 괜히 혼자 창피해졌다. 설탕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필요 없다고 한 것 같은데 왜 줬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 사람들은 달게 먹는 편이라 내가 설탕을 이해 못 한 줄 알고 계속 물어봤나 보다. 평소와는 다른 친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저녁에 걸어 다니면서 여유롭게 주변 경치를 둘러봤다. 따뜻한 날에 눈이 내려서 좋았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도 좋았다. 게다가 카페 직원이 날 알아봐 주시다니. 처음으로 ‘나’라는 외국인도 모스크바에 속해있다고 알려준 날이다.

  나도 대학생 때 4년 동안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졸업한 후로도 각종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 경력과 크루즈 승무원을 한 적이 있다. 내 경험은 서비스와 연관이 깊다. ‘좋은 서비스란 뭘까?’ 고민하고 또 했다. 미소, 상냥한 응대, 단골손님 기억하기, 손님이 원하는 걸 기억하기, 남자친구처럼 손님에게 관심 갖기 등 여러 가지로 결론을 내렸다.


  커피 사면서 깨달았다. 겉으로 보이는 응대보다 손님에 관한 관심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손님을 진정으로 좋아해서 나오는 서비스는 감동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도 감히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모스크바에서 생활한 지 네 달 정도 됐고 학교는 다닌 지 두 달 조금 넘었다.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고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여 자주 울었다. 혼자 뭘 사러 가면 영어 할 줄 모른다고 단답형으로 말하고 가 버리거나 잘 못 알아들으면 화내는 사람이 많다. 카페 점원 덕분에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꼈다. 모스크바에 온 지 얼마 안 된 유학생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서비스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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