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과 욕심의 양면
한눈에 봐도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 몸무게를 재봤다. 10킬로가 빠졌다. 믿을 수 없었다. 체중계가 고장이 났나 싶어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 이후로 처음 가져 본 몸무게이다. 주변에서 점점 말라진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은 차이가 나더라도 고장은 아닌가 보다.
20대 절반 이상을 다이어트로 시간을 보냈다. 통통한 내 모습이 스트레스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넌 살만 빠지면 여신이 될 텐데….”, “덩치가 있네” 하는 얘기를 지겹도록 들었다. 빠졌다가 다시 돌아갔다. 잘 되다가도 정체기가 오래간다. 아예 쉬기도 해 보고 달걀, 고구마 같은 것만 먹고 운동을 힘들게 해보기도 했다. 나중에 폭식으로 이어졌고 스스로 죄책감을 느껴 억지로 토해보기도 했다. 몸무게 앞자리 6에서 5로 바뀌는 게 죽도록 안됐다. 한계를 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했다.
살이 갑자기 빠지는 시기에 육체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살 빼야겠다는 마음을 아예 놓아버리니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도로 돌아갈 것 같았다. 찌지 말아야 한다고 의식하는 순간 많이 먹어서 오히려 더 찐다. 이로써 확실해진다. 어느 한 곳에 욕심이 머무르면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로 흘러간다.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놓는 순간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간다.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놓아야 한다.….
사람 관계도 똑같다. 불과 며칠 전까지 욕심이 있었다. 한 사람을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 경직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더 그렇게 보였다. 생각이 제한된 듯한 모습, 조금만 보고 흑백논리로 판단하는 것, 밑바닥 감정을 마주하지 않는 것 등. 내가 감쌀 수 있을 힘이 생겼고 상대의 장점이 나에겐 단점이라 서로에게 거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발전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단지 내 욕심이었다. 이 마음을 놓지 못해서 상황이 더 안 좋게 됐다.
쉽지는 않다. 원하는 게 있으면 쟁취하고 싶지 마음을 버리는 게…. 어느 날은 생각이 놓이고 어느 날은 안 놓인다. 왠지 놓으면 기회마저 사라질 것 같다. 그러다가 시도를 하면 잘 안된다.
대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알아본 적이 있다. 그냥 가서 일하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가는데도 돈이 많이 필요했다. 영어를 전공한 언니 말로는 워홀을 다녀와도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원래 실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본인은 들인 돈에 비해 얻은 게 없다며 후회한다고 했다. 그 말에 단념했다. 그렇지만 해외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얻지 못할수록 쉽게 놓이지 않았다. 곧 욕심으로 변했다.
다행인지 학교 졸업하고 크루즈에서 일했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인지라 잘 지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생활을 즐기지 못했다. 밉보일까 봐 일할 때도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내가 바라던 생활을 하는데도 나 자신이 작아졌다. 지금은 모스크바에서 지내고 있다.
모스크바에 와서도 실수는 반복된다. 고민 끝에 와서 그런지 잘 지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조금만 잘못되어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생각한 대로 일이 잘 안 되었다. 대상포진과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어보니 내 욕심이 강했다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를 원하는 순간 마음이 강해지면서 욕심으로 변한다. 원하던 본질은 보이지 않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간절히 기다렸던 일도 망쳐버린다. 원하는 게 있으면 생각을 놓아버리고 일과를 지키려고 하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얻게 된다. 일이든 사람이든 간에.
지금도 여러 이유로 고통을 겪고 있다. 힘들고 싶지 않아서 ‘해외에서 잘 지낼 거야’ 하는 생각을 버렸다. 놓아버리니 ‘내가 굳이 여기에 있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허무해지면서 한국으로 돌아가서 안정적인 일을 하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욕심을 놓는 순간 확신이 생겼다. 지금은 석사를 준비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적응을 할 수 있게 주변에서 도와주신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잘하고 싶다는 지나친 마음은 없다. 그저 하루를 잘 보내려고 견디는 것뿐. 지금 일상에 만족한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매번 뒷북을 치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더는 잃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