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1년 되는 모스크바 유학을 되새김질하며
최근에 우연히 이런저런 소식들을 보고 들으면서 자주 하는 생각은 타이밍이다. '인생은 타이밍' 이 말이 맞다. 작년 5월 말부터 타이밍이 잘 맞았거든. 사람은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노력하면 되겠지만 타이밍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
8월 중순, 여름학기 종강식과 한국에 온 지 딱 1년째가 서로 맞물린다. 곧 죽을 것도 아닌데 주마등처럼 돌아보게 되네. 모스크바 유학은 내 삶을 환기하는 지점이다. 귀국하고 나선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더니 이젠 다 기억이 났다. 내 삶은 유학 전후가 완전히 다르다. 1년 사이 시기적절하게 논문 디펜스도 (간신히지만) 통과하고 새로운 일도 하고 사람들도 만났다. 이젠 살려고 술보다는 커피를 찾는다.
고통스러운 사람을 겪는 것도 '이것만큼은 절대로 안 할 거라는 틀'을 깨는 타이밍 안에 있는 것 같다. 모순되게도 이 사람들로 긴 시간 고집했던 가치관을 놓았다. 반대로 내가 타인에게 그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난 이걸 원하고 노력하는데 왜 자꾸 안 되지?' 대상 없는 타인에게 원망도 많이 했고 방황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그때 이뤄질 듯 모두 안 이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더 괜찮은 사람과 환경을 마주했다. 지금은 사람들을 꼭 안 만나도 괜찮고 20대처럼 죽도록 좋아하는 것도 없고 버킷리스트도 희미해졌다. 스며드는 것만 존재한다. 나도 몰랐던 새에 깊이 스며드는 사람과 스며드는 아주 사소한 것들. 여운이 커서 매일 생각나는 것들.
아마 당장 내일 잘 안 될 수도 있다. 프리랜서란 그런 숙명을 가진 직업이니까. 내 자리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여전히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 감정의 기복도 여전하다. 그냥 사람과 일에서 잘 안 되면 '다른 좋은 게 오려나' 하고 넘기고 싶다. 단지 타이밍을 바로 알아차리고 싶고 놓치지 않고 싶다. 그 순간을 위해 오늘을 살고 싶다. 타이밍은 왔는데 준비가 안 됐으면 후회하니까. 그래도 희망은 가지고 싶다. 원하는 대로 되진 않겠지만, 어쩌면 거의 모든 게 원치 않은 대로 흘러가겠지만, 얼추 비슷할 거라고. 오히려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희망. 먼 훗날 돌아보면 그게 바로 내가 원했던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