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학기 시작 전 굴러다니는 생각 정리하기
이번 방학만큼은 집에서 잠만 자거나 아프지 않게 보내고 싶었다. 그동안 방학마다 몸살 걸리거나 감기 걸려서 아무것도 못 했거든. 링거 투혼으로 방학을 맞이했다. 방학이라고 하긴 어이없는 게, 난 두 학교를 출강 중이다. 근데 학기 시작이 달라서 종강식 하면 방학이 일주일하고 반인 셈이다. 정말로 방학이 맞는 걸까? 싶지만, 어쨌든 방학이라고 부르겠다.
방학 동안 친구들을 만나서 술 마시면서 얘기하다가 갑자기 사주 얘기가 나왔다. 친구들 사주에 공통점이 있어서 신기하다고 말했는데 흐름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그 후로 인기가 커지면서(?) 약 3주간 31명의 사주를 볼 예정이다. 거절한 사람도 5명 정도 있다. 칭찬을 받으면 더 파고드는 나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기어이 블로그에도 써놓고 이웃님들 사주도 무료로 봐 드렸다.
사주팔자는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고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종교라고 치부하기엔 어렵거든. 더구나 절대적인 신앙보다 근거를 바탕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사주팔자를 안 믿는다고 해도 사람의 성향이 사주에서 보인다. 이걸 이용해서 '나'를 알아가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상담 아닌 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의 지극히 사적인 얘기를 좀 들었다. 사주를 공부해보고 말한 건데 정말로 똑같은 성향이 있었다. 사주에서 봤던 사연보다 더 깊은 고통이 있었다. 남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아픔이. 실제로 뵌 적은 없어도 각양각색의 아픔이 전해졌다. 겉보기엔 멋있고 대단해 보였는데.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희비가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어제 이모도 남의 불행과 능력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고 하셨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 사람은 대단한데 난 왜 이 모양이지?', '난 노력해도 이 정도인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쉽게 잘 나가지?' 같은 생각은 불필요하다. 왜냐면 우린 모두 말 못 할 고통이 존재하니까. 사람에 따라 깊이가 다를 뿐.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사주 형태도 극적이거나 복잡하다. 남들에게 이유 없이 질타를 받던 어두운 시기, 눈에 띄고 화려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스 라이팅 같은 말을 듣던 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그만큼 꼬이는 상황들... 겉보기에 화려하고 잘 나간다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쉽게 잘 나가고 행복해 보일까?' 같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데, 본인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경우는 '나'에게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고통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버거울 때도 그런 것 같다. 나도 나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었다.
그냥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삶을 대하면 지나간 아픔에서 위안이 되지 않을까. 손톱만큼 작겠지만. '지나간 힘듦에서 위안이 됐다, 힘든 시기에 사주 보길 잘했다, 내 성향이랑 맞다, 감사하다' 같은 말을 듣고 기분이 묘했다. 사람은 어쩌면 '나'를 알아봐 주길 바랄지도. 내가 그랬듯이. 본인이 본인을 제일 잘 알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의심도 강하다. 누군가 '나'를 알아볼 때 비로소 안도를 한다. 스스로를 더 믿는 요인은 어쩌면 내가 아니라 타인에서 시작하는 걸지도. 날 객관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잘 못 하는 것 같은데 이게 맞나',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난 왜 제자리걸음이지', '너무 힘들다' 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냥 공부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고 드러내고 피드백 반영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고독해도 타인의 시선은 여기에 없어. '나'만 있다.
방학 동안 사람들의 내면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이 오고 갔다.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을 믿고 사적인 얘기를 꺼낸 분들에게도 감사했다. 팍팍한 삶에 약간의 위로가 되어 다행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남의 얘기에 귀 담을 정도로 여유가 없었는데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니까, 기뻤다. 부서질 듯 작지만, 사회에서 내 자리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여유가 생겼다. 타인의 내면을 바라볼 만큼. 짧게 쉬면서 시각과 생각에서 자유롭고 새로운 영감으로 채울 수 있었다. 이제는 생존이 아닌 조금씩 날 보여주고 확장하는 형태의 일상이 목표다. 그 과정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 곧 만날 학생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