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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작가 Dec 11. 2022

수면교육, 같이 잘래 따로 잘래?

19. [19-21주 차] 따로 또 같이 :)

나는 아빠를 아주 사랑하는 딸이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에게 전해 듣기론, 아빠가 너무 좋아서 볼 일 보러 화장실 간 아빠를 쫓아갔다고.

"똥 싸는 아빠 무릎에 꼭 붙어 앉았어!"


그러니 잘 때 역시 당연히 붙어 잤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떨어져서 잘 지는 몰랐기 때문에, 나를 떼어놓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내가 잠들면 아빠가 나를 안아 내 방으로 데려갔고, 그 사이에 깬 나는 다시 울며 엄마 아빠를 찾았다.


지금 돌아보면 홀로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무서웠다.

결국에 방의 불을 켜고 이불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덮고 자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고서야 수면 독립이 되었다. 늦은 밤 어둠 속에서 부모님을 찾으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생생해서, 내 아이는 꼭 수면교육을 하고 싶었다.


만 4개월이 된 지금, 아직 아기는 같은 방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잔다.



'수면'을 '교육'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네이버 국어사전

잠자는 일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내 아이의 '인격'을 길러주는 것.

인격은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뜻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공동생활의 주체로서의 독립적 개인'일 수 있으며

'자기 결정적이고 자율적 의지를 가지며, 그 자신이 목적 자체가 되는 개인'이 된다는 것.


오은영 박사가 한 말처럼, 우리는 자식이 사회 구성원으로 올바르게 성장하여 독립할 수 있도록 길러야 하는 양육자이니. 한 마디로 인격을 잘 만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이에 따라 단계 별 필요한 교육을 하게 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먹놀잠에서 '잠' 역시도 인격을 길러주는데 주요한 교육 단계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이렇듯 사전적 의미를 중심으로 수면교육의 의의를 깊게 파고들어 봤으나, 사실 수면교육의 목적은 단순하다.

"스스로 졸리면 잠을 자고, 깨면 일어나는 행위"

이를 주도적으로 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내 아이의 주체적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수면교육을 고민해본 부모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3가지 수면교육법.

- 안눕법, 퍼버법, 쉬닥법

자기 아기에게 맞는 방법으로 수면교육을 진행할 수 있으며, 0~6개월 이내 혹은 3살 이후 시기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수면교육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자연스럽게 분리 수면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수면교육을 꼭 하겠다 다짐했던 나는, 여기서 멈칫했다.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나는 분리 수면을 하지 않았다.


첫째는 울릴 수밖에 없는 방법들 때문에.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시기이기에 우는 것밖에 못 하는 아기가 울면서 부모에게 요구한다.

"졸린 데 자는 법을 모르니 재워달라고."

아기의 언어를 할 수도 없는 부모는 스스로 자야 한다고 알려줄 수 없으니 그저 지켜보거나 최소한의 개입으로 적당히 달래야 한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스스로 방법을 찾고 부모의 뜻을 납득할 때까지 울 것이다.


'어차피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직 어린 나이인데 떼어놓겠다고 울리는 건가'란 죄책감 한 스푼과

남자아이이니 때가 되면 알아서 엄마에게서 멀어질 텐데, 이 때라도 안고 있자는 아쉬움 한 스푼도 있었다.


둘째는 일찍부터 통잠을 자고, 잠투정이 덜한 아기였기 때문이다.

80일쯤부터 7-9시간 밤잠을 잤고, 100일이 지나면서는 2일에 1번 꼴로 4시 반에 깨는 게 다였다.

졸리면 울면서 잠투정을 하지만 길어야 1시간 안에 재우면 잠이 드는 아기여서 재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나는 적은 편이었다. 아기의 울음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통제 영역 밖의 일이었고, 어쩔 수 없지란 마인드로 아기를 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일 수도 있다.


셋째는 아빠는 분리 수면을 하지 않아도 잘 자기 때문이다.

수면교육을 할 때 분리 수면도 함께하는 이유는, 보통 아기와 부모의 숙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보통의 엄마들처럼 나 역시 아기를 낳으면서 엄마의 눈과 귀가 생겼는지 아기 울음소리만 들려도 눈이 번쩍 떠진다. 어둠 속에서도 아기가 무엇이 불편한지 단번에 보고 다가가 불편을 해결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은 잠귀가 어둡고 한 번 잠들면 깊게 잠들어 잘 깨지 않는다.

바로 옆에서 아기가 찢어지게 10분 이상 울 때에도 움찔거리는 것 없이 곤히 자는 사람이다.

남편은 숙면하고 나만 깨는 눈 뜨는 처지다 보니, 분리 수면을 진행하는 중에 아기가 깨거나 확인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나만 깨서 나만 아기의 방으로 가야 한다. 결국 바로 옆에서 아기를 달래고 바로 침대로 가 자면 될 것을 굳이 방 하나를 건너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는다는 것.

물론 아기가 울어도 가지 않거나 남편을 깨워 보내도 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의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와 타협점을 찾았다.

아기가 "스스로 졸리면 잠을 자고, 깨면 일어나는 행위"를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조력자가 되주기로.

비록 잠이 드는 건 엄마의 손길이 함께하더라도 아기가 스스로 잠 들려는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선 아기와 부모의 잠자리를 분리했다.

새벽에 우는 아기를 안아 달래다 보면 같이 누워 자고 싶지만, 최대한 아기침대와 부모 침대를 분리하여 따로 자려고 했다. 같은 방안에 있지만 다른 공간에서 잠드는 것을 알려주면서, 다른 공간에서 자야 한다는 개념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또한 잠결에 이불에 코를 막으면 숨이 막힐 수도 있기에 안전을 위해서도 침대를 구분하여, 아기침대에는 질식의 위험이 없도록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눕혀서 재우려고 했다.

100일 전에는 안아서 재우기도 했으나, 몸무게가 빠르게 늘었고 계속해서 안아 재울 수는 없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완전히 잠들기 전에 눕혀서 재우려고 했다. "잘 때는 등을 바닥에 대고 자는 거야."라고 알려주면서.


이를 꾸준히 지키며 150여 일이 된 지금,

아기는 잘 때가 되어 침대에 눕히면 알아서 눈을 감고 잠들려고 한다.

물론 잠드는 과정이 어려워 뒤척이며 짜증을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하루 일과 중 4번 자는 잠(낮잠 3번, 밤잠 1번) 중 3번은 알아서 잠드니 나름 만족스러운 수면교육의 결과였다.

지금 시기엔 낮잠 3번 밤잠 길게 1번을 자는데, 낮잠은 눕히자마자 눈을 감고 스르륵 잠이 든다.

낮잠은 30분에서 2시간 사이로 길지 않아서인지 잠투정이 별로 없다. 하지만 밤잠은 길게 자는지 알아서인지 쉬이 잠들기 어려워해서 10분~1시간 정도 재우는 시간이 든다.


잠투정이 있을 때는 안눕법을 활용한다. 안아서 둥가둥가를 해주다가 잠들려고 할 때 눕히고, 다시 투정을 부리면 최대한 기다렸다가 안아주고 다시 눕히길 반복한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극도의 인내심이 요구되지만, 그래도 다정함을 잃지 않고 달래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자는 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 적이 있는가.

외동으로 자라 일찍부터 결혼 전까지 내 방에서 홀로 잔 나는 남의 자는 얼굴을 빤히 볼 일이 많지 않았다. 함께 자는 가족이 있더라도 그가 자는 얼굴을 빤히 쳐다볼 일은 없을 텐데, 아기는 달랐다.

내 품에 자석처럼 달라붙어 곤히 자는 아기 얼굴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새근새근 숨 쉬며 자는 아이를 보면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다.

아이를 눕혀놓고 잠에 설치는 녀석이 제 머리와 볼을 긁을 때 긁지 말라고 손을 잡아주었다.

불안했던 손짓이 사그라들며 그 작은 손이 내 검지 손가락을 꼬옥 부여잡고서야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살포시 손을 떼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아기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 존재이자 온 우주가 된 적이 있을까. 


가장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온전히 내게 의지하여 편히 잠들 때 

내 세상의 평화와 행복이 눈앞에 존재하는 듯하다.

품에 안겨서 고롱고롱 자는 널,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순간이 얼마나 오래갈까. 불과 10년도 안 될 시간일 텐데,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었다.

일찍이도 내 품을 떠나 남자의 세계로 들어갈 사내아이였기에 더 애틋한 마음이기도 했다.


아기의 행복을 두고 볼 때, 길게 보자면 지금 좀 울어도 수면교육을 제대로 해두는 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육아의 정답은 아기와 부모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우선은 덜 울고, 많이 웃게 해주고 싶다.

지금은 의사표현을 주고받을 수 없는 0세인 아기이기에. 

대신에 언젠가 너의 행복만 바라는 부모의 말을 조금이라도 알아듣는 때가 온다면, 그때 더 잘 자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면교육을 하고 싶다. 나 역시도 어릴 때 수면 독립이 힘든 경험을 했으니, 너는 나와 다르게 편히 잘 수 있도록 말이다.


행복한 숙면을 위해 할 수 있는 언제든 정성껏 최선을 다해 필요한 교육을 해주겠노라 다짐하며.

오늘은 일단, 잠을 설치는 너의 가슴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리고 토닥토닥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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