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만 호수 수영과 천상의 놀이터
이제 남편이 2주간 교육차 출장 가있는 제네바로 이동하는 날. 드디어 부녀 상봉이다.
제네바 여행을 검색하면 볼게 많지 않아 당일치기나 하루정도 짧게 들린다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 가족 완전체로 조금이나마 스위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5박 6일을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기대를 안 해서인지, 여유롭게 지내서 그런지 지내면 지낼수록 며칠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을 느낀 도시였다.
처음 제네바 역에 도착했을 때는 회색 빛 도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워낙 국제기구가 많은 도시로 유명하다 보니, 여태 지나온 스위스 도시들의 로컬 분위기와 정반대로 여러 나라의 문화가 섞여서 오히려 특색이 없어진 느낌이랄까. 여느 대도시처럼 일부지역에는 슬럼가도 보였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차 레만호수를 중심으로 여유를 풍기고 있었다.
제네바는 도시 자체를 상징하는 UN 유럽본부를 제외하고, 레만 호수와 구시가지 외 딱히 여행객이 구경할 만한 거리가 많지 않다. 우리도 제네바를 거점으로 해서 근교 도시들을 함께 구경하기로 했다. 배 타고 구시가지 구경, 호숫가 해변 수영하기, 근교 소도시 브베 (Vevey), 프랑스의 안시 (Annecy), UN 근처 식물원, 동물 공원 다녀오기 등 각각 하루 코스로 쉬며 놀기 딱 좋았다.
제네바는 역에서 가까운 레만 호수를 수시로 오가는 작은 통통배를 타고 스위스 명품 거리가 즐비한 구시가지를 다녀올 수 있는데, 청둥오리, 백조들과 함께 물길을 가르며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호숫가에는 작은 해변이 딸려있고 꽤 쌀쌀한 날씨에도 한낮에는 햇볕이 강해 수영이나 일광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호수 수영을 하고 싶었지만 제네바 날씨가 꽤 들쭉 날쭉이라 이틀밖에 하지 못해 나도 롸도 아쉬웠다. 그나마 그중 하루는 중간에 먹구름이 끼더니 갑자기 폭우가 내려 황급히 자리를 떠야 했다. 우비와 여행용 우산으로는 감당이 안될 만큼 비가 쏟아져 결국 우버를 잡아 10분 거리를 무려 7만 원 내고 겨우 호텔까지 왔다. 비에 홀딱 젖은 롸는 무섭다며 오는 길 내내 울었다. 사실 이날은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꽤 당황했는데 아이 앞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은 척 다독이느라 진땀 뺐다. 스위스 날씨 정보는 MetroSwiss 앱에서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제네바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소도시 브베는 네슬레 본사가 있는 도시이자 찰리 채플린이 죽기 전까지 여생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좋다는 카페를 찾아 산악 열차를 타고 올라갔다.
카페에서 아이스크림과 맥주를 마시고 경치를 감상하다 우연히 놀이터를 발견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놀이터다. 동네 아이들을 위한 작은 쉼터 같았는데 이곳에서 돗자리 깔고 누워 하늘을 보다, 그네 타다 반나절이 후딱 갔다.
근처에 유명하다는 몽트뢰, 시옹성도 가고자 했으나… 패스했다. 천상의 놀이터에서 놀고나서 다시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와 아이 화장실이 급해 근처를 헤집고 나니 남은 하루 기력을 다 소진했다. 늦은 점심은 대충 맥도날드로 때우자며 세 식구 먹은 게 50프랑을 훌쩍 넘었다. 케첩 하나까지 돈을 받다니 대충 먹어선 안된다며 햄버거를 곱씹었다. 좋은 경치 보고 힐링하다가도 스위스 물가 체감을 할 때면 속이 쓰렸다.
하루는 제네바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프랑스 도시 안시로 넘어갔다. 스위스 패스로는 스위스 국경까지만 이용 가능해서 국경 정차역 기준으로 안시까지 별도 표를 끊어야 한다. 혹시 몰라 출발 전 SBB 기차역 안내소에서 물어보길 잘했다. 도시 안에서 돌아다니는 트램은 몰라도, SBB 기차는 검표를 안 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을 넘나들 때 각 국가의 검표원이 탔다.
안시는 평화로운 프랑스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난다. 왜 프랑스 사람들이 은퇴 후 살고 싶은 도시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물가에 발을 담그고 수영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젤라토도 먹고, 하지만 마지막엔 역시 놀이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UN 광장 앞 ‘부러진 다리 (Broken Chair)’ 를 스쳐 지나가며 근처에 식물원과 동물 공원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이곳 식물원과 동물원, 놀이터의 공통점은 늘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식물원은 마치 정글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동물원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동물들이 쉬는 공간에 사람이 잠깐 지나가는 길 정도. 운이 좋으면 동물을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야 한다.
놀이터 역시 형형색색을 자랑하기보다 나무가 주 소재로 만들어진 흙 놀이 중심의 자연 놀이터가 대부분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잘 논다.
공원에서 놀다 쉬러 들어간 카페에서 만난 참새. 아이스크림 그릇 앞에 앉아있다 한입 쪼아 먹는 걸 본 아이는 깔깔대고 웃는다. ‘아이스크림 엄청 차가울 텐데 저 참새 얼마나 놀랐을까? 오늘 아이스크림 먹었다고 엄마 참새한테 혼나는 거 아니야?’ 순간을 포착한 나도 덩달아 신났다.
이날 제네바에서 하루는 참새가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