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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롸이프 Jul 23. 2024

유치원 쇼핑

우리 아이가 뭐가 될 상인가


아이를 낳고 나니 평생직업으로 '엄마' 타이틀을 얻었다. 기본적으로 장착되는 책임감 외 주요 특기는 처음 만나는 동종 업계 사람들과 급속도로 친밀감과 유대감 형성이 가능하고 서로 아는 정보 공유에 스스럼이 없다.



아이가 같은 기관을 다닌다면 그 시너지는 배가 된다. 오늘은 하원길 놀이터행에서 최근 사립 유치원에서 이관해 왔다는 같은 반 친구의 육아 동지를 만났다. 얘기를 듣자 하니 사립 유치원의 화려한? 사교육에 환멸을 느껴 일 년 만에 퇴소 결정을 했다고 한다.  (롸가 다니는 유치원은 집 앞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다)


한글, 영어, 수영, 골프 등 종합 만능인을 만드는 수준의 커리큘럼을 자랑하지만 본인 아이는 따라가기 벅차했고, 아직 한글도 깨치지 못한 6살에게 주어지는 공부와 숙제량에 아이도 엄마도 치였다고 한다.


끄덕이며 얘기를 듣다 보니 지난해 롸 유치원을 결정할 때가 생각이 났다. 내가 사는 경기도 신도시의 유아 사교육은 강남 그 어딘가의 수준을 따라가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롸는 회사 어린이집에서 3년을 수료하고 올초에 유치원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지도를 펴고, 맘카페 정보에 의존하며 유치원 쇼핑에 들어갔다.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이치 중의 하나. "싸고 좋은 건 없다. 비싸면 비싼 값을 한다'를 마음에 새기며 교육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맘카페 랜선 동료 엄마들의 평이 가장 좋은, 비싼 유치원 두 곳을 점찍어 두고, 입학 설명회를 예약했다. 설명회조차도 예약 전쟁으로 겨우 등록하면서부터 슬슬 안 좋은 예감이 엄습했다.


고층 아파트 숲 사이에 알록달록 한 궁전처럼 지어진 건물이 나타나고, 입구를 따라 유아교육학과를 갓 졸업한 듯한 앳된 얼굴의 선생님들이 줄지어 나와 하이톤의 목소리로 두 손 벌려 환영을 해준다. 부모와 교사사이에 이런 일방적인 오그라드는 환대는 원장이 시킨 걸까.. 원 분위기인가.. 사회에서 구른 속세의 때가 동심을 망치며 씁쓸하게 입장했다.


그리고 교단 앞에 등장한 원장 선생님...? 내가 생각한 선생님, 교사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모습에 내가 지금 어디 부유층 사교모임에 와있는지 혼미할 정도였다. 명품을 잘 모르긴 몰라도 저 정도로 큰 알파벳 로고의 브로치와 레터링이 둘러진 옷, 신발, 장신구는 화려하다 못해 위협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유치원 설명회에는 가장 좋은 옷과 가방으로 무장하고 가야 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언뜻 들은 듯하다. 서로가 우리는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우월감을 향한 기싸움인가…


원소개가 시작되기 전부터 원장의 영어 원어민 수업에 대한 자랑이 이어진다. 세명의 원어민 선생님을 소개하면서 영어로 인사를 시키는데, 보아하니 한분은 토종 한국인, 한분은 유럽 어느 나라에서 온 듯한 백인, 다른 한분은 동남아시아인으로 보인다. 원어민 수업에 대한 정의가 궁금해졌다.


어색한 영어 소개가 끝나고 원장은 뿌듯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머님들 다 무슨 얘긴지 알아들으시죠?” … 이어 6~7살 아이들이 영어 책을 보며 줄줄이 읽는 동영상을 보여주고, 얼마나 아이들이 선행하고 있는지 강조한다. 한국어에 대한 교육은 아예 언급 자체를 안 하는 걸 보면 그런 건 기본인가 보다. 그다음 골프, 수영... 이 시대의 유치원생 출발점이 이렇게 다르다고?


입이 쩍 벌어지다 절정에 달한 건 하프 선생님이 등장했을 때다. 자신의 몸체보다도 큰 하프를 가지고 나오더니 갑자기 하프 연주를 시작한다. 강남 출신의 선생님을 어렵게 모셔왔고, 유아 하프를 가진 원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원장의 칭찬이 이어졌다. 뒤 배경영상에는 아이들이 작은 하프를 하나씩 들고 뚱땅 거리고 있다. 자신의 몸만 한 하프를 하나씩 든 아이들의 모습은 신기하다 못해 기괴했다.


아... 왜 다들 입학설명회에 가보라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의 교육관과 우리 아이의 성향에 맞지 않는 유치원을 거르기 위해서다!


이제 만 5살이 된 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사회성 발달과 자기 조절능력, 공감능력, 협동을 기반으로 한 공동생활이지 화려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한글, 영어 모두 나중에 크면서 배울 수 있지만, 각 나이에 필요한 정서발달은 제때 진행하지 않으면 금쪽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을까‘


나는 숙대에서 아동복지학을 전공하다, 19살에 미국으로 넘어가 사회복지학사,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석사를 졸업했다. 토종 한국인이지만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팝송을 들으며 공부했고, 현재 업무나 일상생활에서 원어민 소통은 편하게 하고 있다. 언어는 어느 정도 타고 나는 개인 역량의 차이가 크다. 인문사회예술과학 대부문의 영역이 마찬가지 아닐까. 될 놈, 안될 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뭐가 될 놈인지를 찾아주는 게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무작정 주입식 교육과 선행 학습으로 아이를 끌고 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두각을 나타내는 특성과 기질을 파악해 그에 맞춘 자극을 제공하고 거기서 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방향으로 키우고 싶다. 내가 영어 유치원을 아예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어고 한글이고 글자자체에 전혀 관심 없는 롸인데 무턱대고 남들이 하는 방식으로 아이에게 학습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좋아하는 그리기와 만들기 재료를 잔뜩 사주었고, 다니고 싶다는 태권도를 보내 실컷 술래잡기를 하고 온다.



다시 입학설명회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나의 뚱한 표정이 눈에 띄었는지 옆자리 앉은 한 엄마가 물었다.


“여기 어떤 거 같아요?”

“전… 여기 잘 모르겠어요. 좀 아닌 거 같아요”

“그렇죠? 여기 말고 또 이 동네에서 좋다고 소문난 A유치원은 사교육이 이거보다 더 하데요 “


그 길로 오후에 등록했던 A유치원 설명회는 취소했다. 그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앞 병설유치원 원아모집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가 병설유치원을 한 바퀴 돌고 선생님들을 몇 분 만나고 나니 내가 왜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학창 시절 봐왔던 선생님의 모습과, 초등학교의 축소판 같은 교실 분위기, 바로 내가 원하던 교육 환경이었다. 게다다 학비가 거의 무료다. 싸고 좋은 게 없는 게 아니라 찾기가 어려운 거였다!


현재 아이는 너무 즐겁게 원생활을 하고 있다. ㄹ과 5를 계속 반대로 쓰고 있고, 수세기도 아직 오락가락이지만 다친 친구를 일으켜 위로해 줄줄 알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 노련한 선생님들은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존중해 주고 부모를 응원해 준다.


물론 요즘은 내가 선택한 과정도 쉽지는 않다는 것을 같이 깨닫고 있다…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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