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의 고백
나도 언니가 있으면 좋겠어
할머니가 없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어
(아빠가 오는) 토요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나 이 집에서 안 살고 싶어
다른 집에 가서 사는 게 낫겠어
… …
이제 곧 만 5살이 되는 롸가 본인 뜻대로 안 되거나 화가날 때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은 질풍노도의 마흔 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해맑다 못해 투명한 마음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데다가 십여 년 전 방황하던 30대의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늘 착한 엄마딸로 살다가 서른이 넘어 뒤늦은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고, 무리하게 독립을 했다. 왜 우리집은 다른집과 같지 않냐며 부모를 향한 모진 말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나는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아 결혼을 했지만 부모님과의 관계는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곤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문득 아이가 나와 우리 가족의 벌어진 틈을 메워줄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생명에 대한 접근이 순수하지 않아서일까. 호기로운 결정과는 다르게 아이는 생각보다 잘 와주지 않았다.
두 번의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거쳐 드디어 임신이 되었다.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은 생명을 잉태했다는 경이로움이나 기쁨보다는 ‘정말 내가 임신한 게 맞나?’ ’ 아이가 문제없이 잘 크고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인 불안한 인고의 시간이었다.
유산기를 거쳐 12시간 응급수술에 태반을 먹고 태어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아이는 다행히 건강하게 자라줬고, 내가 생각한 육아관 대로 잘 키우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네가 스스로 느끼는 행복을 찾아, 너의 내면을 잘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남의 눈치 보고 남의 평가에 휘둘려온 나 자신을 반추하며.
그 결과 내 아이는 6살이 되어 이 집에서 살기 싫다는 소리를 엄마에게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롸는 몇 분만에 해맑게 모든 걸 잊고 다시 거실을 휘젓고 다니고, 친정엄마는 ‘넌 애가 한말을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느냐?‘ 며 핀잔을 준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 육아 선배님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퉁퉁 부은 눈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나왔지만 한번 꼬인 마음이 잘 풀리지 않는 성격은 변하질 않는다. 기억하자, 나의 상대는 6살 천둥벌거숭이다.
롸를 잡고 앉아 찬찬히 설명한다.
엄마한테나, 누구한테나 그런 말 하면 정말 속상해
정말 집을 나가고 싶어? 그래도,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롸 없이는 못 살아…
롸가 나가면 엄마가 지구 끝까지 쫓아갈 거야
롸를 사랑하기 때문에 롸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 전에 엄마는 너를 보호하고 바르게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있어. 그게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야..
그리고,
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우린 너를 사랑해
한걸음 나아가면 두 걸음 뒷걸음질 치는 육아
쑥쑥 크는 키만큼 마음도 생각도 자아도 걷잡을 수 없이 자라 점점 말문이 턱턱 막히는 때가 온다.
턱밑 추격전, 애미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