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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롸이프 Aug 23. 2024

6개월 만에 퇴사한 나의 첫 후배

사회부적응자는 누구?


약 10년 전, 입사 후 한 동안 막내로 지내다 대리 승진을 앞둔 즈음, 팀에 처음으로 후배 B가 들어왔다. 그렇게 찾기 힘들다는 남자 신입사원이었다. 인문계가 주로 지원하는 우리 업종은 남자 신입사원이 귀했다. 남자 지원자 모수도 적었지만 대학 졸업반부터 취업스터디를 통해 만만의 준비가 된 여자 지원자들은 15분 이내 강력한 인상을 남겨서 승부를 봐야 하는 면접에서 대부분 월등한 실력을 뽐냈다.


나는 남자, 여자를 떠나서 첫 후배가 들어온다는 생각에 그저 기대가 부풀어 있었다. ‘드디어 막내 잡무도 나누고, 말단 직원의 고충을 함께할 동지가 생겼구나’ 했지만 호기심과 기대도 잠시… 몇백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후배는 6개월 만에 퇴사를 해버렸다.


B는 아버지가 변호사인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고, 중국에서 유학을 했다고 했다. 마침 회사가 중국 관련 사업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을 때라 관련 업무를 할 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팀에서도 기대가 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이상한 낌새가 나기 시작했다. 먼저 중국의 유명한 국제 대학에서 영문학과를 나왔다는 B는 영어도, 중국어도 둘 다 원활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황당함이란…


그리고 B는 면접을 어떻게 봤을까 싶을 정도로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말만 시켜도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게지고, 말을 더듬으며 당황했다. 그럴 수 있지. 나도 처음에 많이 부끄러웠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으니까. 그런데 1~2주 지나자 해외에서 오는 업무 전화를 받자마자 뚝 끊어버린다든지, 모든 업무 전화를 핸드폰으로 밖에 나가서 받고 와서 엉뚱한 보고를 하는 등 좀 지나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매주 또는 매일 모르는 사람을 만나거나 전화해서 설명해야 하는 일을 앞으로 함께 해야 하는데 앞이 까마득했다. 이후에도 B는 몇 가지 기억에 남은 사건을 남겼다.


사건 1. “우리 아들 출근했나요?”

어느 날 B는 월요일 하루 연차를 쓰고 부모님이 사시는 지방에 다녀온다고 했다. 그런데 휴가 당일 사무실로 한 선배가 B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B가 주말사이 연락 두절인데 출근했냐는 전화였다. 팀장님을 비롯한 우리 팀은 B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라서 하루종일 B의 연락을 기다렸다. 다행히 다음날 B는 멀쩡하게 출근했다. B가 어딜 다녀온 건지 왜 가족과 연락이 안 된 건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그리고 사무실 전화로 동료 가족의 안부 연락을 받은 건 내 회사원 생활 12년 중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사건 2. 번역 의뢰서

업마다 다르겠지만 신입사원이 온전히 1인+ 업무를 수행하기까지 보통 1~3년의 기간이 걸린다고 치자. 신입사원은 회사 인재 육성 차원의 투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어느 누구도 그에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기대하지 않는다. B 역시 트레이닝의 일환으로 한 두 가지 업무를 백업용으로 시켜보던 차였는데, 이날도 B는 휴가 중이었고 내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B님이 전화를 안 받으셔서요, 롸이프님 이신가요?”


“네.. 어디시죠?”


“아, 저희는 번역 업체 ㅇㅇ입니다. B님이 번역을 의뢰하시고 연락이 안 되셔서요. 번역 완료 되었고 입금 문의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네? 번역 업체요?”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전 2~3 문단으로 구성된 한 장짜리 회사 소개 자료를 주고 중국어로 번역을 한번 해보라고 시킨 일이 생각났다. 그 자료에는 내 연락처가 고스란히 적혀있었고, 그 메일을 통째로 사설 번역 업체에 넘겨 사비로 발주를 하고 연락이 안 된 것이었다.


일반적인 회사 소개 내용이었으니 다행이었지만, 만약 보안을 필요로 하는 회사 기밀 내용을 절차 없이 외부업체에 맡겨 문제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한 순간이었다.


기가 막혔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부담스러워서 이렇게 된 건지 사정이 궁금했고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챗gpt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에도 파파고나 회사 중문 홈페이지, 사내 문서 등 충분히 번역에 참고할 자료가 많았는데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꽤 실망했다. 들키지나 말던가.


다음날 B는 나라 잃은 얼굴을 하고 출근하자마자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해프닝이 이어졌고, B는 여러 번 면담을 통해 조직생활이 본인과 맞지 않는다며 퇴사를 했다. 일이 안 맞았다면 다른 팀으로 전배를 하거나 다른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지만, B는 끝내 속내를 밝히지 않았고, 그렇게 회사를 6개월 만에 떠났다.


그 뒤로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내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휴직을 하고 아무도 만나기 싫은 이 시점에 갑자기 왜 B생각이 났을까. 여자 선배들 틈바구니에 끼어 B가 말도 못 꺼낼 말 큼 중압감을 느꼈던 건 아닐까?’, ‘다른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나?’


당시에는 B가 사회부적응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결국 나도 누군가의 기준에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퇴사를 생각고 있자니 이제서야 동병상련의 마음인가? 여러 생각이 든다. 나도 지금의 힘든 마음은 아무에게나 터놓지 않는다. 회사사람이라면 더더욱.


신입사원 때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은 누구나 있고, 크고 작은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 일 또한 나의 일부로 자라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성장하게 한다.


지금 B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B에게 지난 시간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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