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감성을 키워준 상상의 세계
어릴 적 나와 여동생은 주말과 방학을 외갓집에서 보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 외갓집이 있던 시골은 신비로운 모험 장소였으며, 그 어떤 곳보다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우뚝 서 있는 숲부터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까지 모든 곳이 우리 둘만의 놀이동산이었다. 곤충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시냇가에서 송사리를 잡고 물놀이도 했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던 놀이는 반지깨미(서부 경남 사투리로 소꿉놀이를 이르는 말)였다.
외갓집 앞 개울은 폭이 꽤 큰데, 오랜 시간 흙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작은 섬이 있었다. 둘이서 낑낑대며 큰 돌을 가져다 와서 섬을 잇는 징검다리를 만들었다. 작디작은 흙섬은 우리의 소꿉 터전이 되었다. 개울에 위치한 흙섬에선 돌을 구하기 쉬운 데다 모든 돌들이 둥글게 다듬어져 있었기에 장난감 삼아 놀기에도 좋았다.
어린 나와 동생은 소꿉놀이를 하면서도 상상의 세계 속에서 꽤 현실적인 규칙을 적용했다. 납작하고 넓은 돌은 접시나 도마를 삼았고, 긴 돌은 공이가 되었다. 돌을 쪼개다가 물을 끼얹어가며 납작하게 갈아서 칼도 만들었다. 돌칼은 생각보다 요긴하게 잘 쓰였다. 굵은 모래는 쌀로 변신했다. 잘 바스러지는 돌들은 갈아서 가루를 조미료로 삼았다. 이를테면 붉은색을 띠는 돌은 갈아서 고춧가루로 쓰는 것이다. 커피 한 모금 마셔본 적도 없으면서 컵에 물과 흙을 담고 섞어 색깔이 탁한 갈색이 되면 커피라고 했다. 목련 꽃잎을 돌공이로 찧고 물과 섞어서 또 다른 갈색의 액체를 만들었다. 간장이었다.
나중엔 살림이 많이 늘어서 의자부터 식탁에 없는 게 없었다. 버려진 도자기나 기왓장을 주워다가 쓰기도 했는데 어쩌다 예쁜 접시나 컵이 개울가에 떠밀려 오기도 했다. 이가 나가거나 깨진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우리에겐 그 어떤 것보다 귀중했다. 그런 것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 수풀 사이에 숨겨두곤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몰래 호미를 들고 가서 놀기도 했다. 호미로 흙을 갈아 평평하게 만든 다음, 주위에 나는 작은 잡초들을 뽑아다가 일렬로 심었다. 냇가에서 물을 떠다 잡초에게 먹이며 정말 밭이라 생각하며 관리했다. 이름 모를 작물들은 꽤 오랫동안 잘 버텨주었다. 그렇게 어설프게 할아버지의 밭을 흉내 냈고, 상상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능력 있는 농부이자 요리사로서 자급자족의 여름날을 보냈다.
사촌 동생들이 외갓집을 오는 날이면 우리의 상상 속 세계관은 더욱 넓어졌다. 흙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됐다. 외갓집의 저녁 시간은 다섯 시가 조금 넘는 이른 시간이었는데, 여름엔 대낮처럼 환했다. 해 질 녘까지 놀고 싶어 느릿느릿 늑장을 부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른들께선 우리를 데리러 소꿉 터전까지 오시곤 했다. 찬란한 노을빛은 우리에게 예쁜 것이 아니었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라는 신호일 뿐이었던 것이다.
어린 날의 상상은 내 삶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키워서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예쁜 살림살이를 사랑한다. 소꿉놀이는 우리의 감성을 키워낸 체험 학습이었다. 고운 노을이 싫던 그때가 가끔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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