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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Jun 21. 2020

[우리家한식 공모전 특별상] 할머니의 부엌

나를 키우고 채운 할머니의 손맛


우리 외할머니는 동네에서 손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할머니의 요리 경력은 어떤 이에게는 한 세월이 될 정도다. 그런 할머니도 처음부터 요리를 잘하셨던 건 아니었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경남 산청의 한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어린 딸을 어여삐 여겨 끼니때마다 다리 위에 앉혀놓고 밥을 먹이셨다고 한다. 부잣집에서 부족함없이 자란 외할머니는 가난했던 외할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다. 결혼 후 두 분은 따로 살림을 꾸릴 형편이 안되어 신혼 생활을 할아버지의 형님, 그러니까 큰 외할아버지 댁에서 시작하셨다고 한다. 목수였던 외할아버지는 동네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가며 열심히 돈을 모으셨다. 그 돈에 큰 외할아버지의 도움을 조금 받아 지금 외갓집 터에 손수 집을 지으셨다. 외할머니만의 부엌이 생긴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집이 생겼다 뿐이지, 살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자식들이 태어나고 먹여 살릴 식구는 늘어만 가는데, 밭 한 평 빌릴 형편도 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밭일을 하느라 손이 거칠었지만, 할머니는 일굴 밭조차 없으니 그런 고생은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대신 부족한 형편에 살림을 일궈야 하니 마음 고생이 심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고생한 세월만큼 외할머니의 손맛도 깊어졌다. 외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살림에 작은 보탬이 되기도 했는데, 겨울이 되면 떡국을 끓여 인근 학교 숙직실에 배달하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식들만큼은 배불리 먹이고 싶은 마음에 없는 형편에도 다양한 간식을 만들어주셨다고 한다.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아다가 장조림을 만들고, 밀가루 반죽을 튀겨서 도넛을 만들고, 빵까지 만드셨다고 한다. 빵 반죽이 아랫목에서 부풀어 오르는 밤, 어린 엄마는 다음날 먹게 될 빵이 기대되어 그 밤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다고 한다. 손수 만든 간식을 먹일 때 아이들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할머니를 살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외할머니의 부엌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엔 방문을 열면 바로 아궁이가 보이는 옛날식 부엌이었다. 장작불은 가스로 바뀌고, 밥상은 식탁으로 바뀌었으며, 냉장고도 두 대가 됐다. 외할머니는 아직도 요리가 재미있다고 하신다. 아궁이 군불 연기를 가림막 삼아 눈물짓던 나날들 덕에 할머니에게 부엌은 친구가 되었고, 삶에 여유가 생기자 요리는 취미가 되었다. 요즘은 동네 할머니들과 마을 회관에서 화투를 치시다가도 문득 새로운 요리가 떠오른다고 하신다. 그런 날이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상상했던 요리를 해보신다. 덕분에 외할머니의 오랜 친구인 부엌은 지금도 현역이다.



외갓집의 저녁밥



내 입맛의 8할은 외갓집의 영향을 받았다. 외할아버지가 농사지은 것들에 외할머니가 직접 담근 장을 더해 만들어진 음식들. 그 음식들은 내 몸집을 키우고 마음을 채웠다. 나는 매번 여름 방학을 외갓집에서 보냈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소박한 재료로 최고의 밥상을 차려주셨다. 동생과 냇가에서 실컷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먹는 밥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특별한 반찬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외할머니가 차려준 밥은 늘 두 그릇씩 먹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한번은 할머니께서 ‘짜장 국수’를 만들어주신 적이 있었다. 밭에서 딴 채소와 춘장으로 짜장 소스를 만들고, 소면을 삶아 비빈 것이었다. 외할머니의 사랑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동생과 둘이서 입 주위에 짜장 소스를 시커멓게 바르며 맛있게 먹었다. 어찌나 맛있었는지 아직도 종종 생각이 날 정도다. 낮에는 매미가 울고, 밤에는 반딧불이가 찾아오던 여름날, 쑥쑥 자라는 초목처럼 우리도 할머니의 밥을 먹고 쑥쑥 자랐다.


초등학생 때 일이다. 어떤 과목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된장, 고추장 같은 전통 음식에 대한 내용을 배우던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혹시 청국장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음식이니 그런 질문을 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내게 청국장은 외할머니가 떠오르는, 그저 반가운 이름이었다. 번쩍 손을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손을 든 것은 나 혼자 뿐이었다. 어떤 친구는 ‘똥냄새’라며 코를 틀어막고 키득키득 웃었다. 당시 나는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그 순간만큼은 조금도 쑥스럽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하고 벅찬 감정이 가슴을 채웠다. 외할머니의 음식은 나를 당당하게 만들고, 청국장처럼 진하게 스며들어 나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돌미나리전 드시는 할머니



외할머니의 음식을 먹고 자란 내가 이제는 외할머니께 요리를 해드린다. 봄이 한창일 때, 외갓집 앞 시냇가에는 돌미나리가 봄볕을 먹으며 싱그럽게 돋아난다. 할머니께 돌미나리로 전을 부쳐드린 적이 있는데, 그날 이후 외할머니는 돌미나리를 볼 때마다 날 떠올리신단다. 나만 할머니 요리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할머니도 내 요리를 기다리신다니……. 내 마음에도 봄처럼 따스한 온기가 퍼졌다.


할머니의 오래된 부엌이 손녀가 요리하는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투박한 무쇠 칼로 서걱서걱 돌미나리를 써는 소리, 창 밖 봄빗소리를 닮은 지글지글 전이 익는 소리…….  완성된 돌미나리전은 어딘가 모르게 할머니의 요리를 닮아있었다.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돌미나리전을 맛있게 드셨다. 주름진 손으로 무심하게 전을 쭉쭉 찢어서.


할머니의 요리를 먹어온 시간보다, 할머니께 요리를 해드릴 수 있는 시간이 더 적게 남았음을 안다. 나의 요리가 할머니의 마음에 은은히 번져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할머니의 요리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봄날, 할머니의 부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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