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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Feb 11. 2024

나를 살리는 아주머니들

엄청나고 대단한 생의 아주머니들


아이를 낳고 망가져 버린 몸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삶을 살다 보니 피곤은 기본 옵션, 몸살은 주말 행사가 되었다. 각종 약과 영양제를 때려 넣고 출근 전 내과, 정형외과, 한의원, 정신과까지 모든 종류의 병원 투어를 해도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러 명의 의사들이 말했다.      


“그냥 딱 한 달만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면 다 나으실 거예요.”     


안다. 나도 안다. 그걸 못해서. 쉬는 걸 못해서. 약으로 버티고 몸살이 나는 거 아니겠나. 일과 육아를 한 달씩 쉬면서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힘들고 아프지 않았겠지.     

 

그렇게 해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가 찾은 방법은 몸과 마음이 아프면 '아주머니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첫 번 째 아주머니는 ‘세신사 아주머니’다. 일과 육아에 어김없이 지쳐올 때면 집 근처 목욕탕에 가 6만 원짜리 세신과 미니마사지를 받는다.    

  

발목부터 때밀이가 시작되고 배를 밀기 시작할 때쯤이면 나의 제왕절개 수술 자국을 보고 어김없이 세신사 이모님은 물어온다. “아이고 애기가 몇 살이야?” 그럼 내 치료가 시작되는 신호다. “세 살이에요.” “아이고 힘들지?” 내 몸과 마음은 또 어김없이 낫기 시작한다.  세신사 이모는 말했다. “일하면서 애 키우는 게 진짜 지랄 얨병이야!” 워킹맘의 고됨을 이렇게 속 시원한 언어로 표현해 주는 이모님 짱이다.


“제가 아기 낳고 관절이 다 망가졌거든요. 온몸의 뼈마디가 다 쑤시고 아파요.” 내가 말하자 갑자기 이모님은 또 정체 모를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 온몸에 발라주신다. 갑자기 파스 냄새가 코를 찌르고. “이게 관절 아플 때 직방이야!” 하시더니 호랑이 연고 같은 걸 내 온몸에 바르고는 뜨거운 수건으로 몸 전체를 감싸주셨다. 나는 온몸이 화끈거려 죽을 것 같았지만 그 위로 이모님은 내 어깨와 팔과 다리를 주물러주며 말씀하셨다. “흑염소 먹고 녹용 먹어. 위장 안 좋아? 그럼 위장약이랑 같이 먹어. 안 그럼 그 비싼 보약 먹고 다 설사한다?” 뜬금없는 처방에 나는 흑염소를 안 먹어도 이미 낫는 것 같고. “아이고 내가 애기를 엄청 좋아하거든. 내가 다 가서 봐주고 싶네!” 훅 들어오는 다정함에 내 몸살은 이미 다 나아 버렸다.      


자주 세신을 받으며 울었던 나는 이날 목욕탕에서 울지 않았다. 눈물보다는 웃음이 났고, 그만큼 내가 단단해진 것 같아서 좋다. 오랜 우울과 통증을 겪고 나니 나는 이제 내가 나를 치료하는 최고의 방법을 알게 됐고, 이젠 우울하고 아플 때 그걸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 EBS 어른도감



세신사 이모님이 내 엉덩이를 툭 치면 자세를 바꾸라는 얘긴데, 그날 나는 내 엉덩이가 흔들릴 때마다 척척 맞춰 자세를 재빠르게 바꿨다. 그럴 때마다 이모님은 “옳지! 잘하네!” 하며 칭찬 같은 추임새를 마구마구 해주셨는데, 그것까지도 완벽한 치료였다.     


안 힘들고 안 아플 수 없으니 대신 그걸 잘 넘기는 방법을 찾아 나는 또 살아간다. 세신사 이모님 짱이고 만만세다!    






   






두 번째 아주머니는 이런 아주머니들이다.      


나는 작가 중에 ‘은유’ 작가의 책을 가장 좋아하고, 그의책은 엄마가 된 이후로 밑줄 파티에서 밑줄 대잔치가 될 정도로 울림을 주는 문장들이 많다. 얼마 전 은유작가의 신작 <해방의 밤> 북토크에 다녀왔다. 북토크가 열렸던 곳은 창비서교빌딩. 이곳은 3년 전 가장 애정하는 친구와 시 수업을 들었던 곳이었다.


그때의 나는 홀몸이었고, 친구와 나는 시 수업 전 우동과 돈까스를 먹었고, 시 수업 후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신용목 시인의 수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그때 쓴 몇 편의 시는 거지 같았고 (시는 다신 안 쓰는 걸로), 시 수업에서 흘러나왔던 말들을 안주 삼아 마시는 맥주는 완벽했다.     

 

3년 만에 우리는 또다시 북토크 전 우동과 돈까스를 먹었고, 북토크 후 그 호프집을 갔다.      


“행복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불행과 슬픔이 흘러 다니는 사회”

“소란을 등지고 내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해방이 쉽게 되면 그렇게 큰 말이 필요 없다”

“강요된 모성으로부터의 해방”

“피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알려고 해야 한다”

“누군가의 의견과 악플도 감당하는 것 자체가 쓰는 사람의 몫이다”

“조각이 전부가 되지 않게 만드는 것”      


과 같은 은유 작가의 말들을 북토크를 들으며 노트에 받아 적었다.      


북토크가 끝난 후 호프집에 들어가 앉자마자 생맥을 들이키며 두릅 데침과 오징어 튀김을 시켰다. 3년 전의 시 수업을 듣던 우리와 3년 후 엄마가 된 나에 대해 욕과 위로를 넘나드는 대화를 하며 마구 마셨다. 잠시 후 사장님이 오시더니 두릅이 비싸다며 남는 게 없다고 말을 걸었고, 친구가 사장님께 3년 만에 왔다고 말하자 왜냐고 물으셨고, 내가 아이 낳고 왔다고 하자 “그래? 아이고 고생했네.” 하며 안아주셨다. 그러더니 떡볶이를 서비스로 주며 많이 많이 먹으라고 했다. 예상치도 못한 떡볶이 위로라니. 친구와 나는 눈물을 닦으며 떡볶이에 맥주를 마셨다. 우리의 행복한 ‘해방의 밤’이었다.     









엄마가 되니 나를 살리는 아주머니들.


워킹맘, 여성, 쓰는 사람으로 고민하며 살아왔고 살아가는 은유 작가도, 애 낳고 온 나에게 안주를 그냥 주는 사장님도, 내가 힘들 때마다 가는 목욕탕에 세신사 선생님도, 모두 나를 살려내는 아주머니들이다.    

  

그러니 아주머니가 된 나도 잘 살아야지. 그리고 다른 아주머니와 아주머니가 될 여성들도 살리고 싶다. 말로 글로 안아주고 보듬어주며. 나는 ‘아주머니’가 얼마나 엄청나고 대단한 상태의 현자인지 이제야 안다. 그들이 남에게 다짜고짜 묻는 참견과, 이유 없는 다정과, 무한한 친절이 얼마나 굉장한지 안다.


나도 그런 아주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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