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너는 알 수 있을까?
너에게 쓰는 편지는 가장 쉽고 어렵다. 네게 해줄 말은 너무 많고 없다. 널 생각하면 내 눈동자는 멈추고 입술은 붙는다. 널 생각하다 가만히 있고 널 떠올리며 갑자기 일어나 뛴다. 넌 날 머무르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려 ‘너는 나의 수수께끼. 너를 궁금해할 테지만, 굳이 풀지 않는 것. 널 수수께끼로 두는 것’ 그것이 내가 너를 대하는 태도여야 할 것이다.
나는 엄마로 살 것이고 엄마로만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것이고 나쁜 엄마가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너에게 좋은 엄마가 아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이 글도 너에게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되고자 썼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모든 글자가 부끄러울 걸 안다. 나는 여기 있는 문장만큼 아프지 않을 것이고, 너는 영원히 기억하지 못할 어린 시기 어미의 고통을 이 기록으로 알게 될 것이다. 네가 자라 나중에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어떨까. 엄마가 너를 낳고 죽고 싶었다고 써버린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쓰는 매 순간 조심스럽고 괴로웠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이 모든 아픔과 우울 뒤엔 네가 자라고 있어 나는 결국 죽음보다 더 큰 힘을 냈다고.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가장 큰 공포는 나보다 너를 잃는 것이어서 너를 잃지 않으려면 궁극적으로 나를 잃지 않았어야 했다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 아프지 않으려고 아픔을 썼다고. 아이야 너는 알 수 있을까.
무엇보다 세상엔 고통을 치유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엄마는 그게 ‘쓰기’였다고 말하고 싶다. 말을 업으로 하는 내가 가장 편하고 쉬운 말 대신 가장 어렵고 품이 드는 글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혹시라도 네가 나중에 커서 네 마음을 써보는 일을 시도한다면 조금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고 예쁜 옷을 사주고 넉넉한 용돈을 주는 엄마도 좋지만, 네가 흔들릴 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말 한마디를 건네주고, 네가 깊은 고민과 슬픔에 빠졌을 때 함께 얘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고, 너에게 가장 필요하지만 동시에 가장 필요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는 내가 만들었지만 내 것이 아니며, 너는 내가 키웠지만 스스로 자라기도 했다.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되든 상관없어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주인공에게 있어 부모 역할의 가장 큰 보상 중 하나는 자녀가 고유한 개성으로 꽃을 피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읽고 가슴에 새겨 놓았다. 너는 나보다 나은 인간이, 멋진 존재가 될 거라는 걸 안다. 여부보다 중요한 건 믿음이니까. 내가 그렇게 너를 믿을 것이다. 그럼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
널 사랑한다 말하는 건 나에게 지극히 보편적이고 평범한 표현이므로 그 이상의 말을 찾다 침묵하게 된다. 너는 나에게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라서 묘사할 말이 현재로서는 없다. 그저 네가 너이길 바란다. 너를 향한 내 모든 돌봄과 훈육과 교육의 목적은 그것이다. 네가 너가 되어가는 과정을 진심으로 응원할 것이다.
네가 자라나기 위해 애써야 할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있듯, 널 키우기 위해 내가 애써야 할 시간도 많이 남아있다. 우린 각자의 위치에서 고단하고 벅찰 것이다. 잘 반복하고 해내고 함께 성장하자. 너와는 조금 다른 성장이겠지만 엄마도 너처럼 자라기 위해 노력하겠다. 네 팔과 다리가 길어지는 만큼 내 마음도 깊어지기를. 그렇게 늘어나고 커지고 성숙한 후 서로에게 고맙다 말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 같다. 우리에게 사랑은 서로에게 고마운 것으로 기억된다면 좋겠다. 엄마 고마워. 딸아 고마워. 안녕. 하고 웃으며 인사하자.
딸아. 너는 나의 가장 깊은 이야기다. 너는 내 몸 가장 깊숙한 자궁에서 탄생한 이야기다. 널 품고 난 더 좋은 사람이자, 쓰는 사람이 될 임무가 생겼다. 기록하는 좋은 어른이 되는 것.
그것이 내 남은 생의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