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과 자책 대신 상담과 도움이 필요한 일
산후우울증 치료를 위해 처음으로 집을 나섰던 것은 출산 후 7개월 때였습니다. 우울감은 아이를 낳고 바로 찾아왔고 독박육아를 하며 우울증으로 깊어졌지만, 그때는 상담을 받는다거나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괴로워만 했습니다. 어떤 것에 매몰되어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안에 갇혀있는 것뿐이니까요. 신생아를 놓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엔 아이는 너무 자주 울었고, 곁을 떠날 수 없었고, 저도 아프고 기운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우울을 어디로 가서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태어나 내과, 치과, 정형외과, 안과 등 다양한 종류의 병원은 가 봤어도 정신건강의학과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살아오며 가볍게 우울했던 적은 있어도 우울이 병이 되었던 적은 없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연했습니다.
안 그래도 아이 돌봄 자체만으로도 버거운데 치료받을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하고 찾아가는 것도 다 일이었어요. 출산 직후 상담사가 집으로 찾아왔거나 도움받을 곳이 정해져 있다거나 누군가 아이를 받아 주고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데려다주었다면 저는 더 빨리 나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울은 본인 자신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책하는 병이라 옆에서 알아채 주고 끌고 가주는 강제적 도움이 필요한 일입니다.
모든 일의 초기 이행단계가 그렇듯 검색해 보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산후우울증 치료’ ‘정신건강의학과’ 누군가의 상담센터 방문기부터 집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까지 그러다 휴대전화를 끄고 또 우울해했습니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거든요. 한숨을 쉬고 아이 똥 기저귀를 갈아주었죠. 포기했습니다. 내 우울은 자꾸만 돌봄에 밀려 하찮은 것이 됐어요. 엄마가 우울하기란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수유와 유축, 트림시키기와 재우기, 아이의 눈물과 웃음 앞에 모두 멈춰야 하는 것이었거든요. 일상을 모두 멈춰야 할 만큼 심각한 중증의 우울이 아닌 이상 일과 앞에 우울은 자주 밀려납니다. 아파도 티 나지 않고 함부로 티 낼 수 없어 더 괴로운 일. 우울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죠.
제가 처음 찾아간 곳은 ‘중앙난임, 우울증상담센터’였습니다. 좌절과 검색을 반복하다 발견한 곳이었어요. 보건복지부에서 위탁해 국립중앙의료원에 개소한 곳으로 난임부부와 임산부, 산모, 양육모를 위해 상담을 해주는 기관입니다. 상담 비용이 ‘무료’입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크게 상담과 약물치료가 있는데, 우울은 일종의 외상이 아닌 내상이기에 상담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가 의사의 말이나 태도에 오히려 상처를 받고 오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큰맘 먹고 내 돈 들여간 병원에서 실망만 안고 온다면 우울은 더 깊어질 것 같았어요. 어느 병원에 어떤 의사가 좋은지 알아볼 인맥과 기력이 없으니 돈도 들지 않고 나와 비슷한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상담해 주는 곳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전화 상담도 진행하고 있으나 저는 직접 가고 싶었어요. 설령 상담으로 내 우울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오며 가며 쐬는 바깥공기와 잠시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상담사 선생님은 잘 오셨다고 해주셨어요. 내 우울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곳. 내 우울이 밀려나지 않는 곳. 우울 때문에 얼마나 우울한지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상담센터’였습니다.
심전도를 통한 자율신경 균형과 스트레스 검사도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를 살펴보니 스트레스 지수가 높고 자율 신경 기능 저하로 인체 조절 능력이 저하된 상태, 부교감 신경이 과활성화된 상태로 정서적으로 우울함, 나른함, 의욕 저하를 느낄 수 있는 상태라고 종이 위에 명확히 도표로 나타나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죠. 검사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좀 편안해졌어요. 그동안 계속 내가 왜 이럴까 자책하고 의심했는데 정확히 진단을 받으니 생각이 깔끔해졌다고나 할까요. 검사결과지가 우울인증서 같았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한 시간의 상담 시간 동안 내 상태에 대해 많이 말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울다 왔습니다. 출산 후 매 순간 아이의 상태를 살피느라 내 상태는 알아보지 못했었더라고요. 상담이 끝난 후에는 병원 옆에 있는 카페에 들러 꼭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왔죠. 대화와 외출, 음료 한 잔. 내 스스로 처방한 우울증 약이었습니다.
우울은 슬픔과 어려움이 해결되지 못하고 마음의 바닥에 남아 있는 거라서 그걸 꺼내기만 해도 많이 좋아질 수 있거든요. 속 깊은 얘기는 때론 가까운 사람보다 남 앞에서 오히려 쉽게 나올 수도 있고, 상담센터라는 곳은 그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모든 준비가 된 상담사가 있는 곳이고요.
단, 상담할 때 한 가지 중요한 건 상담사는 해결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상담으로 내 우울의 수습과 상황의 변화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내 상태와 마음을 말해보는 것과 생각해보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해요. 상황을 바꾸는 게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바꾸기 위해 상담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앙난임, 우울증상담센터에서는 필요하거나 원할 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의 면담과 약 처방도 함께 받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정신과 선생님을 만나 상담했던 시간이 있었고요. 상담을 위해 정기적으로 외출을 하고 속 얘기를 털어놓으니 조금씩 숨통이 트였습니다. 우울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우울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내 우울을 얘기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저처럼 이곳으로 가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만 현재 서울, 경기, 인천, 경북, 대구, 전남 이렇게 총 여섯 곳의 권역센터가 있는데 거리상 가기 힘든 상황의 분들은 전화 상담으로라도 도움받기를 권합니다. 물론 집 근처의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는 것도 방법이 될 테고요.
산후우울이 모성애의 부족이나 엄마의 자질이 모자라서 생기는 증상이 절대 아님을 알고, 엄마 스스로도 자신의 우울에 ‘나는 왜’를 붙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원망과 자책 대신 상담과 도움을 택하세요.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내 우울을 말해보는 시도를 해 보는 것. 그것에서부터 우울의 치료는 시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