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희정 Jan 23. 2022

아이를 낳고 우울하신가요?

아픈 엄마가 아닌 건강한 엄마로 살아가기

임신과 출산을 넘어 육아라는 ‘대서사’를 겪고 있는 저는 깊은 산후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출산 후 7개월 우울증 상담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았고, 출산 후 14개월 정신과를 찾아 항우울제를 처방받았죠. 아이는 20개월이 되었고 저도 20개월 차 엄마가 되었습니다. 제 우울은 이제 증세라기보다 가끔 찾아오는 기분이 되었어요. 묻어두며 울지 않고, 꺼내어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는 경험만큼 좋은 것도 없어서 제가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야 이 세계를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길을 가다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 중에 배가 볼록한 임신부와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누군가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제가 겪은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겪어야 할 시간을 먼저 살아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 생겼죠. 그래서 보탬이 되고 싶고, 도움을 받고 싶기도 합니다. 이 글은 임신해 출산을 앞두고 있거나, 출산해 우울증을 겪고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어 쓰는 활자로 된 마음입니다.     






최근 한 신문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출산 후 산후우울증을 포함한 우울감을 경험한 여성은 75.1%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 기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자료에도 보면 보건소에서 산후우울증 고위험군으로 판정받은 산모는 8,291명으로 2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하고요. 출산한 여성 10명 중 2명은 산후우울증을 앓는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수치는 실제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정도와 기간의 차이일 뿐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낳고 우울감을 느끼거든요. 제 주변 모든 이들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산후우울증을 제대로 치료받은 산모는 드물고 ‘우울하다’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려집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시구처럼 모두 우울을 품고 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게 여전한 현실인 거죠. 그냥 우울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너무도 흔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자신마저도 부정하고 싶은 증상. 아마도 유별, 예민, 이상(異常)이라는 인식이 우울이란 단어 앞에 여전히 따라붙어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너무도 흔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자신마저도 부정하고 싶은 증상 '우울'





우선 산모는 일종의 환자라고 생각합니다. 자연분만이건 제왕절개건 처음 여성의 몸에 수정란이 착상해 배아에서 태아로 열 달의 발달과정을 거쳐 배 밖으로 나오기까지 엄청난 신체 변화와 증상, 고통을 거칩니다. 출산 후 호르몬 변화와 함께 인대와 관절은 다 늘어나 있고 회음부 손상 혹은 개복으로 인한 통증 등으로 일상생활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죠. 똑바로 걷거나 앉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줄은 저도 몰랐으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신생아 돌봄이라는 일생일대의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 저도 갓난아이를 안고 집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감정은 행복과 환희가 아니라 허둥지둥과 우왕좌왕이었어요. 이 작고 여린 생명체 앞에서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당황스럽고, 걱정되더라고요.     


내 목숨을 걸고 새 목숨을 만난 엄마는 출산으로 지친 몸으로 힘이 하나도 없는데 갓 태어난 생명 앞에 가장 힘을 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합니다. 2, 3시간 간격으로 먹이고, 끊임없이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고 보살피느라 엄마는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쉬지 못해요. 눈을 뗄 수 없고 곁을 떠날 수 없는 아이 앞에서는 제대로 볼일을 보는 일도 어렵고 밥 한 끼를 챙겨 먹는 것과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렵죠. 집이 감옥 같이 느껴져요.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족이 잘 안 되는 하루하루가 반복됩니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느라 엄마는 먹지 못하고 씻지 못하고 자지 못합니다. 집에서 가장 더러운 건 내 몰골 같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내 커리어를 위해 일하고 돈 벌고 사회 속에서 관계 맺고 인정받고 활동했던 한 여성은 한순간 이 모든 움직임과 교류가 끊어져 버립니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아요. 무엇보다 지금의 이 상태가 계속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다시 예전으로 몸도 마음도 회복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잘 살아가야 하는데, 잘 살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되는 거죠. 아프고 힘들어서요.  

   

신생아를 키우는 시간은 출구 없는 원을 무한히 도는 것 같았어요. 아이를 안고 세상과 고립된 느낌. 그 원을 따라 우울이라는 테두리가 쳐집니다. 우울이 산후를 만나면 갓 태어난 생명이 기쁨이 아닌 절망이 될 수도 있어요.     



신생아를 키우는 시간은 출구 없는 원을 무한히 도는 것 같았어요.




문제는 산후우울 앞에 엄마는 이 우울을 드러내거나 치료하기보다 감추고 그냥 견딘다는 것입니다. 다들 잘 키우는데 나만 유별난 것 같아서, 모두 새 생명 앞에 웃고 행복해하고 축하해 주는데 그 앞에서 슬픔과 고통과 우울을 얘기하는 게 어려워서, 당연히 이렇게 버텨야 하는 거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제 우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꺼내기까지 천장과 벽을 보며 울고, 삶보다 죽음을 더 많이 생각했던 수많은 낮과 밤이 있었습니다.     


신생아를 키우는 모든 가정의 상황과 환경은 다 다릅니다. 독박육아를 원해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한 번씩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손자 손녀를 키워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니고, 멀리 살거나 각자의 사정에 의해 도움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산후도우미는 비용이 듭니다. 영원히 쓸 수 없죠. 내가 아이를 낳을 때 내 친구와 지인도 함께 다 같이 아이를 낳지 않아요. 다 같은 시기에 결혼하지 않는 것처럼요. 시대는 달라졌고, 편리해진 것도 어려워진 것도 동시에 늘어났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세상에 당연한 건 없습니다. ‘신생아 육아’는 살아오면서 제일 아프고 지친 상태에서 제일 난이도 높은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어렵고 기운 빠지고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상태에 따라 그 정도가 더 깊어질 수 있어요. 그러면 도움받고 치료받아야 하는 겁니다. 나아질 방법을 남편과 가족 혹은 맘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 그리고 전문의와 함께 찾아야 하는 거죠.     


산후우울증과 관련해서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울증 상태에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아이를 사랑할 수도, 아이와 교감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린다’고요.

     

그러니 저는 아이를 갓 낳은 산모에게 찾아오는 우울감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우울증으로 번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도 가족도 그리고 본인 자신도 그 힘겨움을 인식하고 알아채고 이해하며 나아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상태인지 서로 묻고 답하고, 육아를 분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을 마련하고,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과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도 어느 집 안에서는 아이를 안고 울고 있을, 흐르는 시간과 무관하게 홀로 우울을 안고 멈춰 있을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제가 지나온 우울의 시간을 뒤돌아봅니다. 울기만 하는 건 우울의 가장 대책 없는 대책이었더라고요.      


아이는 선명하게 축복이고, 기쁨이고, 사랑이지만 그 과정에는 더 뚜렷한 고통과 통증과 눈물이 있습니다. 본인도 주변인도 그 괴로움을 유별나다, 예민하다, 이상하다 여기지 마세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산후우울증에 걸렸다고 해도 그것은 여러분이 엄마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말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아픈 엄마가 아닌 건강한 엄마가 되어야 합니다. 엄마도 아이도 새롭게 주어진 생을 함께 잘 살아야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젖은 물리기만 하면 되는 게 절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