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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Apr 15. 2021

젖은 물리기만 하면 되는 게 절대 아니다.

'모유 수유' 그 고통스러움에 대하여

모유 수유는 신성한 게 아니라 고통스러운 겁니다

생각해 보니 참 무식하게 아이를 낳았던 것 같다. 임신 때는 오직 아이를 ‘낳는 것’에만 온 관심이 쏠려있었다.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 진통은 얼마나 오래 하고 아플까. 무통 주사가 끝나면 어떤 통증이 몰려올까. 출산 후에 있을 변화와 고통은 생각지도 못한 채 낳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삶의 많은 과정들이 그렇지 않은가. 대학‘만’ 가면 되는 줄 알았고 취업‘만’하면 되는 줄 알아서 된 이후의 시간은 언제나 서툴고 후회스럽다. 나도 아이‘만’ 낳으면 병원과 조리원에서 어떻게든 진정되고 도움받고 적응되겠지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출산 얘기만 엄청나게 들었다. 누구는 진통을 15시간 했고, 누구는 골반도 작은 데 3시간 만에 낳았고, 누구는 유도분만에 실패에 응급 제왕수술을 했고, 누구는 무통 주사를 몇 통을 맞았고, 그런 얘기들만 차고 넘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에는 아무도 ‘젖몸살’에 대해서 ‘모유 수유’라는 그 엄청난 행위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아프지’와‘힘들지’로 뭉뚱그리는 말들은 어떻게 아픈지 얼마만큼 힘든지 알 수 없는 말이다. 나는 내 젖에 너무 무지한 상태로 출산했다.


 

그저 ‘아프지’와‘힘들지’로 뭉뚱그리는 말들은 어떻게 아픈지 얼마만큼 힘든지 알 수 없는 말이다.



아이를 낳은 여자의 몸은 너무도 정확하고 성실하게 엄마가 된다. 수술하고 사흘째 되던 날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그 끔찍했던 ‘젖몸살’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무통 주사에 의지한 채 겨우 잠든 새벽 갑자기 가슴이 엄청나게 팽창된 채로 딱딱해져 뜨겁게 열이 올랐다. '악'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그 어떤 끔찍한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낯설고 극심한 통증이었다. 양쪽 가슴이 아리고 욱신거리고 화끈거리는 증세는 점점 심해져 사지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공기만 스쳐도 아플 정도였다. 새벽 3시 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천장에 대고 ‘나 가슴이 너무 아파... 너무 아파...’만 겨우 외쳤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가슴이 무참하게 아파왔으므로 그때 내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입술뿐이었다.     


옆에서 당황한 남편은 어찌할 줄을 몰랐고 그 새벽녘에 할 수 있는 건 간호사실에 전화해 진통제를 놔달라 하는 것뿐이었다. 동이 트는 동안 내 젖은 가슴을 가득 채우고 겨드랑이까지 차올랐다. 나는 제왕절개를 하고 24시간 넘게 물도 한 모금 먹지 못했고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있었는데 나의 몸은 이제 엄마가 됐다며 보채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 있는 마사지실에 부랴부랴 달려가 유선을 뚫어주는 마사지를 받았다. 젖은 도는데 유선이 막혀있어 나오질 못해 젖몸살이 온 것이다. 그 가슴 마사지의 고통은 또 어떤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딱딱하게 피멍 든 내 가슴을 누가 손으로 계속 짓이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누군가는 저세상을 다녀왔다 하고 누군가는 두 번째 산통을 겪었다고 했다. 이 줄어들지 않는 고통과 통증, 괴로움과 고단들. 아이를 낳으면 끝날 줄 알았던 출산의 고됨은 오그라들 줄 모르고 젖몸살로 커지고 퍼져 나를 뒤덮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3시간마다 차오르는 젖,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유방 울혈, 유축과 수유의 무한 반복. 아이를 먹이기 위해 엄마가 감내해야 하는 것들은 끝이 없었다. 산모가 된 건지 젖소가 된 건지, 엄마가 된 건지 엉망이 된 건지 자꾸만 헷갈렸다.  


산모가 된 건지 젖소가 된 건지, 엄마가 된 건지 엉망이 된 건지 자꾸만 헷갈렸다.

   



나는 궁금했다. 기존에 보이고 그려졌던 모유 수유의 모습은 왜 이리 평온하고 신성한가. 엄마가 한쪽 팔로 아이를 번쩍 안고 상의를 걷어 올려 젖을 물리면 아이는 편안하게 엄마의 젖을 빨다 새근새근 잠이 든다. 이 고결하고 거룩한 수유의 모습은 정말 가능한가.    

 

나는 경험했다. 아이가 젖을 달라 온몸으로 울어 재끼면 당황한 나는 부랴부랴 수유 쿠션을 찾아 허리춤에 차고 옷 단추를 푼다. 쿠션 위에 아이를 눕히면 내 가슴과 아이의 입 높이가 맞지 않아 수건을 둘둘 말아 아이 머리에 받치고, 아이의 자세를 편안하게 맞추기 위해 등 쪽에도 수건을 대주어야 한다. 모유가 새기도 하니까 손수건도 아이 턱 주변으로 둘러놓고 그러는 동안 아이는 배고프다며 끊임없이 운다. '허둥지둥'과 '허겁지겁'을 반복한 후 아이가 젖을 빨기 시작하면 보통 한쪽 가슴에 15분씩 30분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물려야 한다. 내 어깨와 등은 아이 쪽으로 점점 굽고, 허리는 아파오고, 수술 부위의 통증은 아이의 무게와 수유 쿠션에 눌려 심해지고, 붓기가 덜 빠진 두 다리는 발가락까지 퉁퉁 부어온다. 온몸이 뻐근하고 힘겹다.      


내 젖을 물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뿌듯한 게 아니라 팔과 다리, 어깨와 허리, 가슴까지 고통스러워 시계만 바라본다. 수유를 해야 할 때마다 두렵고 힘들었다. 산모가 된 나는 3시간마다 그런 고통을 반복해야 했다. 아이도 엄마 젖을 빨기 위해 얼굴이 시뻘게지고 이마와 머리에 땀이 흥건했다. 엄마도 아이도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실 모유 수유’였다.     


실제로 산후조리원에서 산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수유콜’이다. 이런 고통과 과정을 매번 반복해야 하니 수유할 시간이 되었다며 아이가 배고파 운다고 반복해 걸려오는 전화 한 통은 공포 그 자체가 된다. 조리원 천국에서 내 새끼 젖 물리는 일은 지옥 같았다. 나 역시 극심한 산후통으로 도저히 수유할 기력이 없어 며칠 동안 수유콜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출산 후 산모의 몸 상태와 회복 속도에 따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충분히 쉬어야 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수유콜을 받지 않는다고 마냥 쉴 수도 없다. 젖은 계속 차오르니까. 유축을 수유처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젖몸살은 더 극심해지기 때문이다. 나도 직접 물리지만 않았을 뿐 잘 걷지도 못하는 몸 상태와 푹 자고 싶은 새벽에도 상관없이 일어나 3시간마다 열심히 짜내어 신생아실에 갖다 주었다.    

  

나도 아이를 낳기 전엔 생각했다. 모유는 절로 나오고, 아이는 엄마 젖을 덥석 물고, 그렇게 모성애는 깊어질 거라고. 그러나 모유는 유선이 뚫려 있어야 나오고, 아이는 젖 무는 법을 잘 몰라 거부하거나 꼭지만 씹거나 혹은 너무 세게 빨아 피가 나기도 한다. 모든 엄마들의 가슴 사정은 다 다르고 아이의 상태도 다 다르다. 그냥 물려서 될 일이라면 수많은 산모들이 젖 물리는 방법과 수유 자세, 모유 양과 수유 텀 앞에서 왜 그리 당황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을까.      






몸살은 누구나 겪지만, 젖몸살은 산모만 겪는 일이다. 몸살에 ‘젖’이라는 한 글자만 붙어있을 뿐인데 그 고통은 모든 글자를 갖다 붙여 써도 모자라다. 모유 수유가 아름답고 신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엄마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아닐까.      


쇼쇼 작가의 아기 낳는 만화에 보면 젖몸살과 모유 수유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한다.  

   


‘젖몸살은 임신 출산의 최고의 고비였다. 출산하면서도 울지는 않았는데 젖몸살로 오열했다.
‘임신과 출산은 내가 동물이었음을 오롯이 느끼게 하는 경험인 것 같다.’     



‘엄마의 젖’보다 먼저인 것은 ‘엄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프지 않은 엄마가 건강하게 아이를 기르는 것이다. 세상 모든 임신부들이 가슴 마사지를 미리 받고, 세상 모든 산모들이 아이보다 자신의 몸을 먼저 돌보기를. 그래야 엄마는 잘 회복할 수 있고 아이는 잘 성장할 수 있다.     


다정함과 이해, 어떤 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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