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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Mar 09. 2021

출산 후 '완벽한 몸매'

방송과 언론에서 이상화된 출산과 임신,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 한 명의 여자 방송인이 출산 한 달 만에 복귀했다. ‘날씬 몸매’로. 이전에도 비슷한 기사 제목들을 종종 보곤 했다.


‘000 출산 후에도 완벽 몸매로 복귀’

‘000 출산 후 날씬한 몸매 유지’   

   

나는 이 한 줄의 헤드라인에서 누군가의 불안과 걱정, 고통과 노력이 보인다. 대단하고 짠하다. 속상하고 화가 난다.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와 기사 하나를 읽었을 뿐인데 감정이 요동친다. 산후 9개월. 나는 아직 몸도 마음도 복귀하지 못했다. 영영 아이를 낳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허탈하고 서럽다. 그 생각에 자주 눈물이 난다.     






우선 그 기사의 당사자를 생각한다. 보여지는 직업이라는 방송인의 특성과 공백이 생기면 다른 누군가로 대체 혹은 교체할 수밖에 없는 방송의 특성이 아이를 낳고도 최대한 빨리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압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강박은 당사자에게 길게는 수십 시간까지의 산통을 겪거나 개복을 하는 대수술을 하고도 몸의 휴식과 회복보다 살 빼기를 먼저 하게 한다. 어느 순간 조리(調理)는 다이어트가 되어버린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산후 한 달은 일의 복귀가 아니라 건강이 회복되도록 잘 먹고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하는 시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프리랜서 아나운서인 나도 그랬다. 임신 기간 중 총 18kg이 쪘는데 아이를 낳고 빠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그럼,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아야 하는 예전의 일들을 못 할 것 같은데. 나보다 어리고 예쁘고 날씬한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은 너무나 많은데... 걱정과 염려가 가득했다. 선택받아야 하는 프리랜서 아나운서에게는 이미지도 중요한 요소였으니까. 늘어나는 몸무게 앞에서 나의 경력과 실력은 소용이 없었다.


출산 가방을 쌀 때도 제일 먼저 챙겼던 건 압박스타킹도 손목 보호대도 아닌 노트북이었다. 프리랜서에게 업무 제안 연락에 늦은 답변과 거절은 일의 단절로 이어지곤 하니까. 조리원에서도 카톡과 메일을 빠르게 확인해야 했다. 나도 아이를 낳고 하루라도 빨리 일을 시작하는 것이 회복하는 것이라 믿었다. 몸보다 몸매를 더 생각했다. 낳았다고 나은 게 아닌데 산모인 걸 잊고 나를 재촉했었다. 임신과 출산을 겪어보니 국가는 산모를 원하고 사회는 여성을 원하는 듯했다.      



임신과 출산을 겪어보니 국가는 산모를 원하고 사회는 여성을 원하는 듯했다.




다음으로 그 기사를 읽을 수많은 산모를 생각한다. 기사 속 늘씬한 몸매로 환하게 웃고 있는 방송인의 사진을 보며 모든 산모는 자괴감을 느낄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 어땠더라... 출산 직후 3.2kg의 아이가 뱃속에서 양수와 분비물과 함께 나왔는데 왜 배는 들어가지 않는지. 아이 낳고 한 달이면 모유 수유로 가슴은 처지고, 붓기도 여전하고, 머리조차 감을 시간도 없는 끊임없는 육아의 연속이었는데. 산후통과 젖몸살과 넘쳐나는 피로로 먹고 씻고 자는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는데. 누구는 아이를 낳고 한 달 안에 20kg을 감량하고 아이를 낳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예쁜 원피스에 메이크업을 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나는 뭐지? 나만 이런가? 똑같이 아이를 낳아도 아줌마는 나만 된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출산 한 달. 나 역시나 심한 유선염으로 가슴 통증이 너무 심해 밤마다 내 가슴을 도려내고 싶었다. 새벽마다 식탁에 기대어 젖을 짜내며 눈물도 짜내야 했다. 아이를 낳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에 매일매일 울고 우울했던 날이었다. 복귀는커녕 회복도 안 된 몸으로 신생아를 돌보느라 산후우울증만 커져가는 날이었다. 모두가 삶을 살고 있는 건 같아도 나의 시간이 침울하게 흐를 때 나는 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때의 삶은 절망 속에 멈춰있는 것이다. 산후 백일 가까이 내 삶이 그랬던 것 같다.     


모두가 삶을 살고 있는 건 같아도 나의 시간이 침울하게 흐를 때 나는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018년 영국의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이 셋째 아이를 출산하고 7시간 만에 신생아를 안고 포토라인에 섰다. 무릎이 보이는 빨간색 원피스에 7cm의 하이힐을 신고 숍에서 막 나온듯한 헤어스타일과 풀메이크업을 하고 말이다. 이후 SNS에는 ‘출산 7시간 후: 케이트 vs나’라는 멘트와 함께 출산한 여성들이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병원 침대 위에 누워 팅팅 부은 채 주삿바늘을 꽂고 있는 모습을 찍어 케이트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진짜 산후 7시간의 실체를 말했다.   

   

방송과 언론에서 케이트 미들턴의 출산 직후 부기 없고 변함없는 완벽한 미모를 감탄하는 기사를 쏟아낼 때, 다른 산모들은 산후 7시간 만에 7cm의 하이힐을 신은 왕세손비의 모습을 보고 한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실은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아이를 안을 기운조차 없는 산모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왕실가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상화된 출산 후의 모습을 그리는 기사들은 잘못된 기준이 되어 현실 속 산모들을 좌절시킨다.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자꾸만 보여질 때 정상이 비정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출산 후 케이트 미들턴 vs  나     <출처 : BBC KOREA>




생각해 보니 그 시간에 제왕절개를 한 나는 소변줄을 차고 침대에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있었다. 배 위에는 오로가 빠져나가게 하게 위해 묵직한 모래주머니가 올려져 있었고 다리에는 심한 붓기로 압박스타킹이 신겨져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수도 메이크업도 아닌 눈만 깜빡이는 일이었다.     


D라인은 아름답기 전에 골반을 누르고, 몸매는 임신과 출산 뒤에 튼살과 수술 자국을 남긴다. 드라마 속 입덧은 짧고 우아하고 모유 수유는 아름답고 신성하며 출산은 신비롭고 대단하지만, 현실 속 입덧은 길고 추하고 모유 수유는 고통스럽고 힘들며 출산은 두렵고 끔찍하다.      


어떠한 것을 말할 때 좋은 것만을 강조하는 건 일종의 속임수다. 장단(長短)을 함께 이야기할 때 이해의 폭은 커진다. 생에 흑과 백, 명과 암, 모와 도는 공존하고 너와 나, 우리는 모두 그것들을 잘 포용해야 한다.




     


완벽하고 변함없다는 형용사는 ‘출산’이라는 명사와 바로 붙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이 충분한 시간과 회복이 있어야 완성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은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000 출산, 충분한 휴식 후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라는 헤드라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도 아이를 낳고 돌아온 누군가에게 이전과 똑같은 모습만을 원하지 않고,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을 시작하게 된 그 출발을 박수쳐 주고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산후 9개월인 나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완벽 몸매 대신 건강한 몸으로. 변함없는 모습이 아닌 변화된 나를 받아들이며 아이와 함께 잘 살기 위해 애써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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