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정책에 '진짜' 필요한 것은
출산을 하고 보니 아이를 왜 낳는지보다 왜 안 낳으려고 하는지를 더 잘 알겠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육아의 열 가지 고됨이 아이의 한 가지 미소로 날아가 버릴 때도 있지만, 아이가 주는 열 가지 행복이 단 한 가지 결정적 이유로 불행이 되곤 한다. 내 집 마련, 경력단절, 독박 육아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절망스럽기 때문이다.
나도 들은 이야기였지만, 공무원인 누군가는 3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 자녀 셋을 낳고 9년째 휴직 중이라고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2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 둘째를 낳았고, 프리랜서인 나는 육아휴직이 없어 경력단절이 되었다.
더 세부적인 경우를 보자면, 대기업에 다니는 다른 친구는 제도상으로는 2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는 있으나 현재 자기 팀에 두 명의 다른 여직원이 임신 중이고, 내년에 둘 다 휴직 예정이라서 자기까지 임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자녀 계획이 부부의 의지와 결심에 의한 것이 아닌 직장 동료의 임신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회사원들은 아이를 낳으려면 모여서 ‘김 과장이 올해 둘째 낳고, 이 대리가 내년에 첫째 낳아’ 하고 순서를 정해야 하는 지경이다.
몇 년 전 내가 일했던 작은 규모의 학원은 정직원 여자 강사가 세 명이었다. 원장은 15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부원장은 임신을 했고, 나머지 강사는 임신 준비 중이었다. 원장은 어린아이를 키우며 일하느라 항상 시간에 쫓겼다. 아이는 수시로 아팠고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자주 피치 못할 사정들이 생겼다. 늦고, 반차를 쓰고, 휴가를 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부원장은 임신으로 인한 입덧과 두통 여러 증세로 역시나 늦은 출근과 이른 퇴근, 반차와 휴가가 필요했다. 이 두 선배의 상황 앞에서 임신 준비 중인 나머지 강사는 두 명의 부재를 메꾸고 자신의 미래 상황을 미리 지켜보며 한숨을 쉬어야 했다.
누구도 죄가 없다. 한창 일해야 하는 삼십 대 초중반의 나이와 노산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마음, 출산한 여성과 임신한 여성, 임신할 여성이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이 죄라면 죄일 뿐이다.
매년 출산율 통계와 대책 마련 촉구의 목소리 이에 따른 정부의 대책은 발표되고 있지만 그래서 그 대책은 정말 임신과 출산을 대처하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일까?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 계획안을 보니 출산 일시금 지급, 영아 수당과 휴직급여, 지원금 증액 등 여러 문장이 많았지만 한 글자로 줄이면 결국 모두 ‘돈’이었다.
역시나 정부는 이번에도 고심 끝에 ‘투입’과 ‘지급’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사실문제 해결의 가장 손쉬운 방법의 하나는 ‘돈’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이 돈은 아니다. 물론 그 지원금이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임신, 출산, 육아에는 비용이 든다. 하지만 힘은 더 들고, 노력은 더 많이 들고, 그러니까 그에 맞는 ‘진짜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임신을 계획했을 때 돈보다 더 걱정이었던 건 ‘돈을 못 벌게 될까 봐’였다. 아마 거의 모든 여성들에게 경력단절은 돈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무엇일 것이다. 예산만 증액한다고 나아질 저출산 정책이었다면 늘어난 예산만큼 출산율도 올라야 할 거 아닌가.
임신 열 달과 출산, 육아 7개월을 겪어보니 실현 가능성을 떠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독박 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아이는 또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엄마는 나와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를 키우는 다른 엄마를 만날 기회가 공식적으로 백화점 문화센터밖에 없는데, 그럴 게 아니라 지역 주민센터나 기관에서 동네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고, 아이 교육 프로그램만큼이나 부모가 모여서 정보를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아이를 키우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맘 카페 검색을 자주 하게 되는데, 맘 카페가 아니라 그냥 카페에서 선배 엄마들과 후배 엄마들이 만나 진짜 경험담을 전해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경력단절 여성들이 좀 더 쉽게 일을 구하고 이어갈 수 있도록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전문 구직사이트가 생겨 비슷한 직종의 사람들과 경력자들이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채워 일할 기회가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단순히 돈을 지급하는 것만큼이나 필요한 건 돈을 벌게 해 줄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그 기회를 얻어 아이를 갖기 전 쌓았던 경력이 다시 빛을 발하고 나의 쓸모와 능력이 인정받게 된다면 그것이 아이도 잘 키우고 일도 잘하고 싶은 모든 엄마들의 바람일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출산 정책 담당자가 매년 방안을 발표하기 전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산모와 독박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 경력단절이 된 여성과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부부를 만나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냉철한 여러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나눴으면 좋겠다. 그것이 출산율 통계와 통계청의 육아휴직자 추이, 여성 고용률과 같은 숫자들만 들여다보며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대책 마련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야 공무원이 만든 제도에 공무원만 혜택을 보는 경우가 없어지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공무원이 아니고 언제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모든 제도와 시스템에 우선시 되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작은 것들이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혜택이 거르고 걸러져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닿지 못하고,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외침이 위로 올라갈수록 막히고 막혀 들리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희망을 잃고 절망 속에 지쳐갈 수밖에 없다. 작은 것들을 위한 큰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다.
출산, 육아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제도와 대책들이 그럴 것이다. 자문위원들에게 고액의 월급을 주고 계획을 세우고 대안을 마련하라는 것도 좋지만, 실제 그 상황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과 사각지대에 놓여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넓어지고 높아질 것이다. 나 역시 출산 7개월의 독박 육아와 경력단절,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여성이니 불러준다면 언제든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