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서가 Aug 10. 2021

이기고 지는 것는 중요하지 않단다, 얘야.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에는 바둑판이 항상 펼쳐져 있다. 8살 첫째가 아침에 눈곱을 떼자마자 앉아있는 곳이기도 하고, 치워봐야 다음날 다시 열어둘 게 뻔해서 그 자리에 두고 있다. 아이는 올해 2월에 처음으로 바둑을 시작했고, 어떤 매력인지 모르겠지만 흠뻑 빠져있다.  

다른 학원들을 다 정리했지만, 바둑만은 하고 싶다고 해서 매일 가고 있다. 그런데, 한 2주 전부터 인가 아이는 바둑학원을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정확히 말하면, 떼를 쓴다기보다는 '짜증'과 '우울' 사이를 오가면서 혼란스러워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나는 물었다.

"찬아, 바둑을 가는 게 싫어? 그럼 안 가도 돼."

"엄마, 잘 하는 형아들이랑 하면 내가 질 텐데?! 그러면 레벨이 다시 내려가면 어떡하지?... 자꾸 그런 생각이 나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고. 그러면서 조금씩 실력이 더 느는 거지." 

그렇게 몇 차례 아이를 설득시켜서 바둑학원을 보냈었다. 내 우려와는 달리, 학원을 마치고 나면 '조잘조잘' 어떻게 상대를 이겼는지 혹은 졌는지 떠들었다. 그래서 '그냥, 긴장을 한 거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더 깊이 생각하기에는 엄마로서 '걱정 꾸러미'를 키우는 일이 될까 봐, 솔직히 귀찮기도 했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그러는 사이 여름휴가 기간이 시작되었고, 코로나 상황도 심해져서 핑계 삼아 열흘 정도 바둑학원을 가지 않았다. 이제는 가야 하지 않을까, 아이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전보다 더 강하게 거부하는 상황이 생겼다. 녀석은 몸부림을 치면서 소파와 거실을 뒹구르기 시작했다.

"엄마, 어떻게 하죠? 나 또 가서 지면, 레벨도 낮아지고. 지금까지 열심히 한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될 텐데.... 

그렇다고 안 다니면 처음으로 돌아갈까 봐 걱정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세심한 성격이라서 단순히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달래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찬아, 그러면 이번 달은 쉬자. 네가 즐거워야 하는 일이야. 그런데, 지는 게 무서워서 시작조차 못하는 거라면 너에게 시간이 필요해. 집에서도 바둑은 둘 수 있으니까, 책 보면서 연습해보고. 누군가 바둑을 두는 게 더 이상 겁나지 않으면 그때 말해. 그렇게 하자."

상황은 우선 그렇게 일단락 지었다. 곧,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지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걸까?'

그리고 아이가 바둑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돌이켜 보았다. 지난해, 유치원에서는 등교 중지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학습 꾸러미'를 나누어 주었다. 그 안에는 체스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이 아빠는 어깨너머 배운 실력으로 아이에게 하나 둘 규칙을 알려주었다. 그것이 제법 재미있었는지, 한두 시간이 지나가는 줄 몰랐다.


Pixabay License


아빠가 회사에 가면, 아이는 체스판을 들고 나를 쫓아다녔다. 장기밖에 둘 줄 모르는 나는 이 핑계, 저 핑계 삼아 도망치기 바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의 귀차니즘을 어떻게 하면 들통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집 앞에 있는 '바둑학원'을 떠올렸다. 이럴 때는 행동도 참 빠르지, 바로 학원에 전화를 걸어서 체험 수업을 예약했고 아이는 '너무 재미있다'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난 바로 그날 등록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후로 한 달쯤 지났을까, 책 한 권이 겨우 끝나갈 무렵까지 아이는 거의 매번 '바둑을 졌다'. 무엇이든 처음 배울 때는 서툴기도 하고, 실전을 경험해야 느는 것이니까. 바둑학원에서는 비슷한 레벨의 아이들과 대국을 통해 연습을 시켰다. 어느 날은 실력이었는지, 운이었는지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형님에게 '승리'를 하는 영광을 맛보기도 했었다. 학원이 마치고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는 것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그러나 그 감정은 채 5분도 가지 않았다. 집 앞 횡단보도에서 아이는 갑자기 통곡을 했다. 아니, 방금 전까지 그렇게 활짝 웃던 아이가 왜?! 갑자기. 이건 무슨 경우인데...? 

"선생님이 다시는 내가 못 이길 거라고 했어요. 계속 질 거라고...!!"

'뭔 소리야. 얘 지금 뭐라는 거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해가 있을 거라고.

난 백 번을 생각하다가,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렸다. 

"찬이가 오늘 처음으로 이겼어요. 대견하기도 했지만, 저는 모든 아이들에게 '이긴 것'이 꼭 중요하지는 않다고 담담하게 말을 합니다. '잘 했다!'라고 가볍게 칭찬을 건네지요. 그리고, 다음에는 질 수도 있다고.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 아이가 그 말이 서운했나 보네요."

그럼 그렇지. 아직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는 아이의 투정이었다. 승부의 세계가 뭔지 모르는 녀석의 섣부른 판단에서 온 해프닝이었다. 한 번의 달콤한 승리 이후로, 아이는 바둑학원을 마치고 올 때마다 먹구름과 햇볕 쨍쨍을 오가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이의 얼굴을 자꾸 살피게 되었다. 오늘은 이겼을까, 졌을까.    

그런 삶이 반복되고 있었다는걸, 난 잠시 잊고 있었다. '꽤 승부에 진심이라는걸.'

선생님께 한 달 정도는 쉬면서 아이가 '지는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연락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또, 녀석은 커서 '바둑 기사'가 되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으니까, 장기전에 대비해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의 특성을 잘 아는 선생님은 이렇게 문자를 보내주셨다.

"찬이도 머리로는 이해를 하는데, 가슴이 잘 안 따라주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그치지 않으며 묵묵히 기다리다 보면 결국 아이들은 이겨내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고 올림픽 중이다 보니, 관련 동영상을 보다가 감동적인 부분이 있어서 보내드립니다.

상대를 이기고, 1등 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스포츠 정신이 있음을....^^"

https://youtu.be/jCOCGN8Iy7g


거실 한편에서 우울하게 앉아있는 아이에게 손짓을 하고, 선생님이 보내주신 거라며 같이 영상을 보았다.

아이는 끝까지 보더니, "아픈 사람이 있어서 도와주는 거예요?" 하고 나에게 물었다.

"응.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우리 얼마 전에 올림픽 봤지? 거기에 나오는 선수들이 '우승'하길 바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응원도 했잖아. 운동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훈련도 하고, 경기에 나와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원해. 1등, 2등, 3등에게는 메달도 주어지고, 상금도 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선수들은 경기 중에 다치기도 하고. 엄청 힘들게 노력했지만 1,2,3 등 안에 들지 못하기도 하지. 그럼 기분이 어떨까?"   

"속상할 거 같아요."

"그렇지. 그런데, 이 영상에서는 아픈 사람들을 왜 도와주었을까? 어떤 선수들은 뒤처지는 사람들을 두고 자기가 갈 길을 가잖아."

"잘 모르겠어요."

아이는 갸우뚱하고,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 생각에는, 경기에 나온 모든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으니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같은 선수들이니까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우승도 중요하겠지만, 함께 결승점까지 가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 것이 아닐까? 

네가 바둑을 두는 것은 '꼭 이기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어쩌면 잔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를. 이 뻔한 말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지키지 못하니까. 또, 오랜 기간 동안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글을 쓰는 즐거움을 잊고 있었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경쟁이 너무 익숙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길들여져 있었고. 내가 지금 하고 있던 것들을 하찮게 여겼던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아이에게 한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글을 쓰는 일에 쫓기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 이야기는 쓰기 싫었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