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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Aug 02. 2021

육아 이야기는 쓰기 싫었는데....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솔직히 고백하면, 난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결혼 전에는 친구들에게 '난 나중에 아이를 낳지 않을 거야.'라는 말도 종종 했었다. 갓난아기부터 아장아장 걷는 아이, 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어린이까지... 나에게는 한결같이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어떻게 대해도 어색한. 


다정하고 사람 냄새가 한껏 풍기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1년이 넘게 아이를 갖지 않았다.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만 빼고 다 괜찮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가장 걱정이 컸던 건, 아마 친정엄마였을 거다. 나중에서야 들었는데, 내가 어려서 두 번이나 생사를 오간 것 때문에 혹시라도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건 아닐까 마음도 졸이셨단다. 또, 아들보다 두 살이나 더 많은 며느리를 둔, 시부모님도 속으로는 애가 타셨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간절한 바람 덕분이었을까. 참으로 감사하게도, 내 나이 서른둘에 첫째를 만났다. 배 속에 그 녀석이 생긴 것을 핑계로, 지독했던 직장 생활도 끝이 났다. 야근에 야근을, 출장에 출장을, 마감에 마감을 반복하던 삶에서 벗어난 것이다. 사표를 쓸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도 명확한 이유였다. 난, 처음으로 전업주부의 삶을 꿈꾸었다. 


임신 기간 동안에는 배 속에 꼬물거리고 있는 아기를 위해 '태교'라는 것에 집중했다. 태교라 이름 붙여진 것들은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태교 음악, 태교 바느질, 태교 여행 등. 그런 것들을 해야만 '엄마'로서 자격이 갖춰지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었고 충실했다. 밀가루부터 매운 것, 커피, 튀긴 음식 등 몸에 해롭다는 것들은 모조리 멀리 했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나는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바쳤다. 마치 '여기는 내 직장이야!'라고 여기는 듯 자존심을 내걸었다. TV는 하루에 2시간 이상은 절대 안 돼! 아이가 엄마를 부를 때면 즉각, 달려가야 해. 무조건 8시 반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책은 두 권 이상 읽어줘야 해..... 육아서에서 본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수많은 규칙들도 만들었다. 그렇게 해야만 아이가 잘 자라는 줄 알았으니까.


둘째가 생기고 나서부터 나의 '육아'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진 것 같다. 주변에는 둘째 임신과 함께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난 '그럴 수 없다'며 버텼다. 아직 엄마 품에서 더 키워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 결과, 건강하지 못한 내 몸은 조산기에 시달렸고 아이도 나도 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둘째가 한 달이나 일찍 세상에 나왔고, 조산 때문에 황달이 생겨 조리원에 혼자 며칠 동안 덩그러니 남겨진 적도 있었다.


Image by skalekar1992 from Pixabay


그 후로도 나를 시험하듯,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에 더 많은 애정을 쏟았다. 그러면서 꾸준히 남들과 비교하고 또 비교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깨끗하게 정리 정돈된 집을 보며 나를 한심하게 여겼다. 엄마표 영어로 '이만큼'이나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고작 밥에 진심인 내가 부끄러웠다. 어떤 아이는 책을 얼마나 읽는다더라, 어떤 아이는 벌써 파닉스를 뗐다더라, 또 누구는 수학 학원에서 어떤다더라... 이런 말들을 들으면, '내가 엄마로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며 자책했다.


'우리 아이들은 잘못이 없어, 내가 문제지... 내가 게을러서 그래.'


매일 밤마다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영어, 수학 문제집도 함께 풀고, 책도 읽어주고...... 욕심이 닿는 대로 '해야 할 것'들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한가득 쌓아놓은 '엄마 숙제'들 앞에서 난 숨이 막혔다. 이걸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아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똑똑해질까? 그런 생각 때문인지 '엄마표' 공부는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살림을 똑 부러지게 잘해서 내세울 것도 없었다. 그러니, 쓰고 싶지 않을 수밖에.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시간마다 먹겠다고 냉장고 문을 뒤적이는 아이'에 대한 불평이나, 덩치 큰 두 녀석을 업고 안고 다녔던 지난날의 괴로움 따위 정도였을 거다. 또,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이 거지 같은 코로나 상황을 꾸역꾸역 살고 있는 하루하루도 보잘것없었고. 다 그렇게 힘들게 사니까. 칭얼거리기 싫었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되는건데.

아이 키우는 건 다 힘들어.'


내가 육아에 대한 어떤 글이라도 써놓으면,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할 것만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전~혀 힘들지 않은 사람 누가 있을까? 미치고 팔딱 뛰다가 기절할 뻔한 적이 나만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육아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은데 '그냥 그렇게 평범한 내 이야기'가 뭐가 대수라고. 그렇게 여겼었다. 그게 읽을거리나 되겠냐고. 지겹지 않니, 애 키우는 얘기.


어떤 날은, '글쓰기 모임'에서 난 이런 고민을 토로했다.

"저는 육아 이야기가 쓰기 싫어요. 특별할 게 없거든요. 뭐, 이룬 것도 없고......"


그 말에 대해, 한 분이 이런 말을 건넸다. 

"별빛서가님은 자신의 육아 철학이나 가치관이 딱히 있는 게 아니라, 불안하고 흔들리는 평범한 육아일 뿐이라고 하셨는데요. 제 생각에 딱 그 부분, 보통 사람의 육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불안함이 있는데,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내 이야기구나. 하는 점에서요."


울컥, 했다. 세상에는 '최고' '대단한' '눈에 띄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별 일 없이, 때로는 소소하게 망하기도 하고, 작게 성취하기도 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을 건데. 난 왜 '특별함'만을 고집했을까? 그저 나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 싸웠다가 돌아서서 배시시 웃는 날을 보내는 이들도 있을 텐데... 하소연 말고 '보통의 육아'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번뜩였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되겠지만, 누구나 서툴다.

육아를 하는 누구나 아이 땜에 울고 웃는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서툴고, 울고 웃는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먼저 아이를 낳은 동네 언니처럼, 아직도 '왜 육아가 이리 어렵냐'며 발을 동동거리는 옆집 친구처럼.

<너무나 보통인 육아라서>를 통해 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길 희망한다. 하기 싫었던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더 깨알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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