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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Sep 01. 2021

초1, 사교육 없이도 잘 살아보겠습니다.

1학년 권장도서 목록 뽀개기!


지난 여름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아이가 학원을 모두 끊어버렸다. 그나마 다니고 있던 '바둑학원'마저도 거부했다. 한때, 사교육에 눈이 뒤집혀서 월화수목금 매일 학원에 보냈었는데 코로나19 시작되면서 조금씩 줄이게 되었다. 아이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라이딩하느라 힘이 쏙 빠졌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추억이 되어버렸다.


올해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면서, '무엇이라도 가르쳐야 한다'라는 불안감이 극에 달했을 때가 있었다. 코로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 욕심에 여러 학원을 동시에 등록했다. 6살 때부터 배웠던 '과학'은 초중등 전문학원으로 코스를 옮겼고, 사고력 수학도 소수 정예인 곳으로 선택했다. 한자를 혼자 익힌 것이 기특해서 '중국어 학원'도 수소문해서 보냈었고, 체격이 커진 아이를 보고 '태권도'도 보냈었다. 그뿐인가, 앉아서 진득하니 승부를 겨루는 걸 좋아하니까 바둑학원까지 일주일이 부족하도록 시간을 꽉꽉 채웠다.


'분명, 아이가 좋아서 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고, 가계 지출을 되짚어보니 여간 심각한 상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선택을 해야 했다. '사교육을 밀어 부칠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안전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정말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볼까?'.... 첫째의 의견을 들어보고, 남편과 상의를 거쳐 학원을 중단하기로 결론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작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숙제를 하느라 쫓기고, 엄마의 눈치를 보는 날들이 더 많았으니까. 남편과 나는 아이가 주도하지 않는 '문제 풀이'는 의미가 없다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어머나! 게다가 코로나 4단계 격상으로 학교가 문을 2주나 일찍 닫았다. 차라리 방학이 2주 당겨졌으면 좋았을 것을, 화상 수업을 한다고 해서 '챙길 것'들이 잔뜩 늘어났다. 책상 앞에 컴퓨터 화면만 보면서 3~4시간씩 앉아있는 것이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무리이기도 했고. 자잘하게 준비할 물품들도 있으니, 대부분은 엄마가 해주어야 할 몫이었다.


한 달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우리는 정말,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물음에 봉착했을 때, 난 좌절했다. 이번 여름은 유독 햇볕이 강해서 바깥나들이를 하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고, 코로나 상황 때문에 어디 여행을 가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집 구석에 콕! 박혀서, 뭔 짓거리를 해야 시간이 훌쩍 가겠냐고~~~!!! 분노했다. 아, 피하고 싶은 현실. 그래도, 나 또 나름대로 육아에는 진심인 아줌마니까 뭐라도 해야 했다. 그때, 내가 발견한 건 <초등학교 1학년 권장도서 목록>'이었다. '책이나 읽자!'



정말, 그래도 행운인 건 '내가 초품아'에 살고 있다는 현실이다. 집에서 2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 '초등 학년별 권장도서'가 알차게 구비되어 있었으니까. 난 빌리기만 하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 골고루 책을 읽게 할 수 있었다. '그래! 이번 여름방학 목표는 권장도서 뽀개기다!'


 85권의 리스트를 옆에 끼고, 작은 도서관 홈페이지에 하나씩 검색해 나갔다. '역시, 나보다  빠른 엄마들이 있었다!'  세대당 10 정도만 빌릴  있으니, 리스트 뒤에서부터 빌리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6권은 권장도서, 2권은 마법천자문, 2권은  . 이렇게 분량을 나눠나도 함께 읽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마음먹었다. , 작은 도서관에 없는 책은 시립도서관이나 중고 책방으로 두루두루 이용했다.


책을 읽고, 덮어두기. 무언가 허전했다. 예전에는 무릎에 앉혀두고 한 권, 한 권 읽어줬었는데.... 이제는 읽으라고 던져만 두니까, 이해하고는 있을까? 글자만 읽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치, 내가 총균쇠를 펼쳐놓고, 글자만 읽는 수준인 것처럼. (앗! 뜨끔!) 게다가 나는 독서지도사로 일하지 않았던가. 매권마다 너무나 진심으로 교안을 짜기에는 버거우니, 한 장짜리 간단한 활동으로 남기자 싶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책 이름만 쳐도 관련된 활동들도 많았고, 그중에서 아이 수준을 고려한 것들을 골라 독후 활동을 시도했다. 초등학교 1학년 책들은 8살과 6살이 함께 읽기에도 큰 무리가 없었고, 두 아이의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이니까 그에 알맞게 처리했다(?). 당연히, 독후 활동이 좀 허술해도 '내가 엄마니까' 컴플레인 걱정은 안 해도 되고. 너도 나도 부담 없는 그런 시간이었다.



하아! 시간은 항상, 지나고 나서야 '빨리' 흘렀다고 느끼는 걸까. 한 달 반이라는 집콕 생활도 개학과 함께 끝이 났다. 개학 전날은 왜 이것저것 챙길 게 많은 건지. 그중에도 엄마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그동안 켜켜이 모아온 독후활동지를 파일로 정리한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나의 수고로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쫌, 진짜로 육아에 진심이었구나.


매일 글을 쓰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해 애가 타는 날도 있었다. '난 아직까지 왜 잘 하는 게 없을까?'하고 자책했던 시간들도 있었는데, <권장도서 뽀개기 파일>만으로도 내 노력이 여기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성껏 보낸 시간들은 어딘가에 꼭 그 흔적들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내가 하찮게 여기지만 않는다면 '의미 있는 일'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살아온 순간들이라면,'언젠가' 나에게 값진 결과로 돌아올 테니 헛되다고 생각 말자.'


아이가 쓴 시가 학교 소식지에 실렸다.



'오늘도 육아에 진심이었던, 나를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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