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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Mar 17. 2021

엄마는 1학년

- 저는 이제야 어른이 될 준비를 합니다.

11시 50분. 교문 앞을 서성이며 아이가 나오길 기다립니다. 3월이면 봄이라는데, 옷깃 사이로 스미는 바람은 겨울보다 더 시리게 구석구석 몸을 떨게 합니다. 언제나 나올까? 나보다 앞에 서 있는 엄마들 틈으로 고개를 내밀어도 보고, '내 키가 좀만 더 컸으면...' 하고 짤막한 몸을 탓해보기도 합니다. 12시가 다 되어가자 아이들이 무리지어 나옵니다. 입학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미 친구를 사귄 아이들도 있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온힘을 다해 뛰어나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30분쯤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우리 아이가 나옵니다.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꼬옥 덮었는데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죠. 손을 힘껏 뻗어 '엄마 여기있어!'하고 기쁜 내색을 하고서야, 안심이 됩니다. '오늘 하루도 학교에서 잘 지내다 왔구나!'하고요. 묻지 않아도 재잘재잘 떠드는 녀석을 보니까, 코로나19로 달라진 건 마스크뿐이었던가. 새삼 지난 1년이 없던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아이는 너무나 익숙하게 가방을 휘익~ 엄마에게 맡기고, 초등학교 바로 앞에 마주한 유치원 주변 공원으로 달려갑니다. 그곳에 가면,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유치원 친구들을 만날 수 있거든요. 그마저도 6살 때 동무들이니까, 7살은 아마 잊혀진 나이가 아니었을까.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아이는 공원에서 마스크를 쓰고도 2시간은 거뜬히 놀다가 들어갑니다. 아마 학교를 가는 재미보다 방과후에 친구들과 놀 생각에 더 신이 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고요했던 공원이 아이들로 북적거리고, 등하굣길에는 '사람 사는 향기'가 넘칩니다. 초품아로 이사 오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어느새 입학 3주째를 맞이하고 있네요. 봄은 만물이 깨어나는 시기라고 하는데, 저는 요즘 그렇게 잠이 쏟아집니다. 동면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꾸벅꾸벅 틈만 나면 자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러고보니, 아이 입학과 동시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네요. 아침이면 '지각할까봐' 서둘러서 아이들을 챙겨서 보내고, 나 또한 아침 2시간은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고 에너지를 쏟고 있고요. 11시만 되면 엉덩이가 들썩 거리면서 아이를 맞으러갈 준비를 합니다. 공원에서 2시간 햇볕을 쬐면서 아이 친구 엄마들과 오랜 수다도 떨고요. 집에 와서 간식을 먹이고 공부를 좀 챙기다보면 둘째 하원시간이 됩니다. 그후로 아이들 학원 픽업을 하고나면 저녁을 맞이합니다. 하루가 스치듯 지나가니, 몸은 바쁜데 머릿속은 엉망진창입니다.


어제는 너무 긴장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 결국 속병이 났습니다. '어쩐지 요즘 내가 너무 건강하다 했어!'

나의 힘듦은 어디서 오는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바라던 매일 등교, 등원을 하고 있고 어쩌면 코로나 이전에도 이렇게 바삐 살았던 것 같은데 유독 지치는 이유는 뭘까? 나는 또 어디에 에너지를 과잉으로 쏟고 있는걸까? 내 삶을 뒤돌아봤습니다.


'남들처럼' '1학년 엄마처럼'.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다들 그렇게 한다니까 모든 힘을 쏟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깔끔하고 단정하게 잘 입혀서 아이를 늦지 않게 학교에 데려다주고, 누구보다 일찍 마중을 나가서 '엄마 여기 있어! 봐~ 멋지지?'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1학년 엄마노릇을 해야 진짜 제대로 사는 것 같다는 '나만의 환상'을 가지고 말이죠.


'아이가 입학을 해서....'

제가 요즘 가장 많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이것이더군요. 말 그대로 아이가 입학을 했는데, 내가 힘들 이유가 없는데 말이죠. 하루하루 기특하게도, 잘 적응하고 있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면 될 일을 사서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애써 근심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쓴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내가 미루고 싶은 일들,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일들의 핑계를 '입학'으로 잡았던 것 같아 솔직히 부끄러웠네요. 마치 '까방권'처럼 말이죠.


어쩌면 아이는 걷고 말을 하고, 혼자 입고 먹을 수 있게 된 순간부터 '독립'할 준비를 마쳤을 거예요. 엄마의 손길이 하나, 둘 덜 미치게 되는 만큼 자라왔을 테지요. 그러나 저는 여전히 내 둥지에서만 아이를 키우려고 하네요. 어제 독서모임에서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의 독립'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 사람의 아이를 존중하는 것'과 같다는.



억지로 내 울타리에서 못 벗어나게 하면서 앓는 소리는 이제 그만하고, '너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하나둘씩 내려놓아보려 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말이죠. 허울만 좋은 엄마가 아니라, '걱정 많은 부모' 역할만 할 게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응원하는 어른'으로 곁에 있고 싶어요.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고나서야 비로소, 저는 이제 막 '어른'이 될 준비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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