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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Nov 13. 2021

나의 최선이, 너를 방해하지 않도록...

- 기다리고, 믿고, 지지해주는 것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는, 2학기부터 비대면으로 '코딩' 수업을 받고 있다. 아직 컴퓨터 사용이 서툰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어차피 엄마가 집에 있는데 거드는 게 낫겠다 싶어서 방 한켠에 앉아있었다. 아이는 컴퓨터 용어도 잘 모르지만 선생님의 설명에 쫑긋 귀를 세우며, 어렵게 따라가고 있었다.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벽에 부딪혔다. 어디서부터 놓친 건지, 아이는 울상을 하고 있었다.


"엄마.............?"하고 아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 팔을 잡아당기듯 불렀다. SOS 신호였다. 어쩌겠나, 방 한 켠에 앉아서 책이라도 한 글자 읽어보려 했는데 소용없는걸. 난 1학년 엄마니까. 줌 화면에 보이지 않게, 빛의 속도로 샤르륵 움직이면서. 아이의 책과 화면을 비교해가며 도와주었다. 눈앞에 놓인 문제가 당장 해결된 것이 흡족했는지, 녀석은 '씨이~익' 미소를 보였다. 왜, 내가 뿌듯했는지.


그 후로도 비대면 수업마다 나는 숨은 그림자처럼 '도움'의 눈빛이 느껴지면, 슬쩍 가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아직 서툰 게 많은 어린아이니까, 도움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아이에게 '등대지기'처럼 든든한 존재가 된 것 같아 불편하지 않았다. 우린 그렇게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자 사이였다.


어느 날이었나, 첫째는 혼자서 무슨 문제를 풀고 있었다. 집에 있다가 심심할 때면 책상에 꽂아놓은 문제집을 풀곤 하는데, 생각을 꽤 해야 하는 문제를 만났는지 끙끙대고 있었다. 애쓰고 있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뭔가 슬쩍 들여다봤다. 어른의 눈에는 별것 아니었으니, 습관처럼 난 엄마 역할에 충실했다. '너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 주겠어!' 굳이 청하지도 않은 친절을 베풀었다.

"찬아?! 뭐 도와줄 거 없니?"


"네, 있어요."

"뭔데...?"

"엄마가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요."


왐마! 얼레?! 나에게 늘 애절하게 구원의 눈빛을 보낼 때는 언제고. 또르르....

내가 없는 시간 쪼개서, 너를 도와주겠다! 마음을 먹고, 말을 건넸는데! 아이가 바라는 것이 '기다림'이었다니. 아이고 내 뒤통수야. 부끄러운 건 왜 내 몫인 거 같고. 혼자 앞서서 아이를 끌고 가려고 했던 게 아니었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첫째와 나의 발 사이즈가 똑같아졌다.


'아, 기다림'. 왜 기다림이었을까? 그건, '믿어주는 것'이라는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아이가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과 어떠한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게 묵묵하게 바라봐 달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의 감정을 넘겨짚고 서툰 격려와 칭찬 이런 거 하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함부로 이 말, 저 말 갖다 붙이면서 내 혀 위에 아이를 들었다 올렸다 하지는 않았나 생각도 해봤다. (나는 프로반성러니까, 뭐. 엄마라면 어쩔 수 없는...)


그리고, 오늘 두 아이들은 처음으로 인라인하키를 배우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것에 유독 약한 첫째가 난 너무 걱정이 되었다. 양쪽 발에 바퀴가 달린 신발을 신고, 제대로 혼자 서 있을 수도 없을 텐데... 게다가 주변에 잘 타는 아이들을 보면 주눅이 들어서 '안 한다고!' 때려치운다고 하면 어쩌지? 지금까지 아이가 보여왔던 오만 가지 행태들을 떠올리며, 우주의 기운을 모아 '포기'만 하지 않기를 바랐다. 워낙 겁이 없는 둘째는 내 걱정의 범주에 있지도 않았다. 참내, 이거 편애인가. 믿음인가.


인라인 하키장에 도착했을 때, 첫째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코치 님이 인라인을 신겨 주시고, 보호 장비를 장착해 주시는 동안 말이 없었다. 둘째는 나부터 신겨 달라며 조르는 통에 정신이 홀딱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코치 님의 손에 이끌려 아이들은 앉는 것부터 일어서기, 서 있기, 벽을 잡고 이동하기까지 1시간 반 정도 강습을 받았다. 아무리 보호 장비를 갖추었다고 해도, 내 몸이 내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건 너무나 속상한 일일 터.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마음과 '그래도 응원이라도 해줄까?'하는 생각 사이에 오락가락하면서 강습장을 노려 보고 있었다. 분명, 나는 따스한 눈빛을 건넸다고 기억하지만, 실외에서 추위를 이겨가며 바라보는 시선은 애처롭기 그지없었을 것 같다. 그러다 첫째와 눈이 마주쳤다. 벽을 잡고 이동하던 중에 서로를 바라보았고, 난 또 이 가벼운 주둥이를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건넸다.


"찬아, 너무 잘한다! 잘하고 있어! 넘어져도 괜찮아!"


아.. 뭐래는 거니. 그런 칭찬은 다 끝나고 나서 해도 되는데... 아이는 내 말을 듣다가 한발 한발 옮기던 패턴이 깨지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의 말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다가, 집중력이 흩어진 것이다. 1시간이 넘게, 애써왔던 것들이 무너져 버렸는지 아이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난 이제 못 할 거 같아요. 그렇게 배웠는데 넘어져 버렸잖아요. 다리도 너무 아프고... 저는 그냥 동생 응원이나 할래요."


오, 마이. 그냥, 잘 하고 있다고 칭찬했는데.... 너를 위해 난 몇 주 전부터 인라인하키를 알아보고, 예약하고 더욱이 오늘 아침부터는 분주히 준비해서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데! 안한다고오....... 그때부터 나의 뇌에서는 '잔머리를 굴려라! 설득하라! 포기하지 않게 하라!'라는 지령이 오고 갔다. 그 사이 둘째는 두 손을 놓고 탈 수 있을 만큼 진도가 휙휙 나갔는데... 이걸 어쩐다.


아...! 기다려 달라고 했지. 난 계단 한 켠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포옥 안아줬다. 다른 사람들이 잘 볼 수 없게, 겉옷을 덮어서 마음껏 울게 두었다. 내 입은 꾸욱 닫고,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 울었는지, '엄마, 콧물 좀 닦아주세요,'하고 나를 바라봤다.


photo by 포로리 님

그리고는 "아까 넘어진 곳에서 한 번만 더 해볼게요." 하고 말했다. 보호 장비를 다시 챙겨 입고, 쩔뚝쩔뚝 벽을 겨우 잡고 하키장으로 들어갔다. '내가 언제 울었는가? 잠시 쉬다 왔네만...'하는 표정으로, 첫째는 한 번 더 시도한 끝에 두 손을 떼고 마지막 코스를 마무리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아직 어린아이였다.


난 참 오랫동안, 아이의 앞길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닦아주려 노력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도 먼저 걱정하고, 해결책까지 생각해 두어야 내 마음이 편했다. 감기가 걸릴까 봐, 다칠까 봐, 속상할까 봐 미리 막아두었던 것들도 많았다. 오로지 내 기준 하나로.


어느덧, 걸음마나 넘어짐을 걱정할 나이를 훌쩍 지나버린 두 아이를 보면서.

난 '충분히 기다려 주겠노라'

'온건한 지지를 보내겠노라'

'그렇게 너를 믿겠노라'


다짐해 본다. 아, 오늘도 정말로 육아에 진심이었다.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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