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처럼,
나무 끝에 겨우 매달려 있던 나뭇잎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늦가을입니다.
지난주에는 아이들이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기도 하듯이, 갑자기 코감기에 걸려들었는데요. ‘고작 계절 감기’에도 학교와 유치원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저도 모든 일정이 멈춤! 상태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감기가 이렇게 무서웠던 건가. 이게 모두 코로나19, 너 때문이라고! 백번 원망해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이들 코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콧물을 ‘흥!’하고 풀어주는 것밖에 없더군요.
아, 정말 내 인생 또 며칠을 내려놔야겠구나. 그렇다면, 코 풀기 말고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스트레칭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겠다고 다짐도 하는데요. 마음을 단디 먹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겠노라! 잠이 들었지만, 알람과 함께 반짝하고 떠야 할 눈꺼풀이 도통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엄청난 의지와 노력으로 겨우 눈을 떠보았지만, ‘엄마!’하고 내 품을 찾는 아이 목소리에 한달음에 달려가 토닥토닥 잠을 재웁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면, 화들짝 깨어나서. ‘아! 오늘도 망했다.....’하고 자책을 해봅니다.
도대체 내 삶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억울함을 껴안고, 그들의 콧물이 쏘옥 들어갈 날만을 기다렸죠. 드디어, 월요일부터는 아이들이 깨발랄하게 각자의 배움터로 향했는데요. 이 기회를 놓칠 세라, 아침 일찍 1시간 정도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이 자유를 언제 빼앗길지 모르니까, 한발 한발.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저는 또, 혼자 있는 시간을 가만 둘 수 없어서 욕심껏 책을 펼쳐보았습니다. 쓸쓸하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가을의 느낌과 참 잘 어울리는 소설인데요. 바로,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에밀 아자르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한 작품에 왜 이름이 두 개일까 하고 살펴보니, 흥미로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로맹 가리는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프랑스 문단에서 인정받는 작가였는데요. 그는 작품이 어느 순간부터 혹평을 받기 시작하자,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다시 작품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사실은 에밀 아자르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유서에 본인이 로맹 가리였음을 밝히면서 알려졌는데요. 이런 사연을 알 리 없었던 문학계에서는,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공쿠르 상을 중복 수상하는 유례없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지요. 훌륭한 작품에는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네요.
<자기 앞의 생>은 열 살 정도로 추정되는, 모모라는 아이와 그를 돌봐주었던 로자 아줌마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놓은 책인데요. 오로지 모모의 시점과 생각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처음에는 제목도 심오한데, 앞부분은 청소년들을 위한 소설인가 하고 갸우뚱하면서 읽기 시작했다가, 책장을 덮는 순간에는 ‘사랑’과 ‘인생’에 대해 깊은 울림을 느끼게 되었는데요.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여운이 남았던 기억이 납니다.
모모가 유대계 여성인 로자 아줌마를 처음 만난 건 세 살 무렵부터였는데요. 로자 아줌마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7층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있었지요. 그곳에는 몸을 파는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이 맡겨지곤 했는데, 로자 아줌마 역시 젊은 시절 그런 일을 했기 때문이었죠. 이곳에 맡겨진 아이들의 엄마는 몇 달에 한 번씩은 자기 아이를 보기 위해 다녀갔지만, 모모는 엄마를 본 적이 없습니다. 배가 아픈 척, 발작도 일으켜봤지만 소용이 없었죠.
급기야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게 관심을 끌어보기 위해, 여러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데요. 어느 날은 애완견을 파는 가게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훔쳐서는 애지중지 키우더니, 우연히 마주친 어느 부인에게 오백 프랑을 받고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그 돈을 접어서 하수구에 처넣어 버리지요. 이 사실을 안 로자 아줌마는 모모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며, 카츠라는 유대계 의사에게 데리고 갑니다. 의사가 보기에 모모는 정상이었고, 오히려 로자 아줌마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지요. 그런 일들을 반복하면서, 그들의 삶은 또 이어집니다.
그러던 중,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서서히 병들어 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로자 아줌마는 심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층계를 오르내리며 장을 보러 다니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그녀에게는 층계가 제일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다. 매일 아침, 나는 로자 아줌마가 눈을 뜨는 것을 보면 행복했다. 나는 밤이 무서웠고, 아줌마 없이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면 너무나 겁이 났다.”
엄마는 누구인 줄도 모르고, 매일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나를 돌보아주던 사람이 약해져 가는 걸 볼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모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밥벌이를 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도둑질도 해보고, 동냥을 하기도 하죠. 그러다 우연히 영화의 목소리를 입히는, 나딘이라는 여성 성우를 만나게 되는데요. 모모는 영화 속에서는 필름만 앞으로 감으면, 무슨 장면이든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거꾸로 된 세상, 이건 정말 나의 빌어먹을 인생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멋진 일이었다. 나는 튼튼한 다리로 서 있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렸다. 나는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줌마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났다.”
그녀는 병이 점점 더 악화되었다가 다시 회복을 반복하면서, 죽음과 더 가까워지고 있었는데요. 불법체류자였던 신분이었던 로자 아줌마는 병원 가기를 거부했고, 집 밖으로의 외출도 쉽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졌죠. 그런데, 참 다행이었던 건 그들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인데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 ‘롤리 아줌마’를 비롯해, 알제리 출신의 무슬림 ‘하밀 할아버지’, 흑인 청소부인 ‘왈룸바 씨’ 등 프랑스 사회에서 소수인으로 살고 있는 이들이었지요. 사회로부터 무시와 외면당해 온 아픔을 알기에, 그들은 서로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로자 아줌마의 집에 한 손님이 찾아옵니다. 우울한 표정의 키가 작은 남자였는데요. 그는 오래전 이곳에 맡겨진 ‘아들’을 찾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회교도이며, 아들 또한 회교도인으로 키워달라는 종이를 남겼다고 주장하는데요.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인 모세가 아들이라고 거짓말로 둘러댑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남자는 그 자리에 쓰러져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요. 모모는 그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조금 울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내게도 누군가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이제 그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게 자신의 나이를 네 살이나 속였는지, 물어봅니다. 그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내 곁을 떠날까 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저는 이 책을 쉬지 않고 읽어오다가, 이 부분에서 한참을 멈춰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가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힘들어서 지칠 때가 많았는데요. 어느 순간 아이들을 보니까, 훌쩍 커버린 게 아까워서 ‘그때 더 사랑한다고 해줄 걸.’하는 후회가 들곤 했거든요. 첫째가 나와 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게 되었을 때, 조금만 더 천천히 커주길 바라기도 했고요. 마냥 아기인 줄 알았던 둘째가 제법 ‘어린이다운’ 말투를 쓰는 걸 보면, 쪼꼬만 게 언제 이렇게 컸지? 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기도 하니까요.
로자 아줌마는 모모에게 엄마였구나. 그들 사이에도 애틋한 사랑이 존재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알아차린 모모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그 결말까지 이야기하는 건, 반칙인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줄거리를 풀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과거의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그리고 현재의 모모는, 스스로 대답을 하지요.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사랑해야 한다.”
저는 책을 읽을 때면 밑줄을 치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놓고는 하는데요. 이 소설은 그런 흔적을 남기는 것이 모모의 이야기를 강제로 끊고 나를 억지로 투입시키는 느낌이라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겨우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생이, 나를 파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별빛서가의 책 에세이는,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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